시사/인터뷰

60년 전의 제자를 만나러 병천에 간 아버님.

모과 2014. 9. 25. 07:30

큰아들이 늦은 휴가를 얻어서 집으로 내려왔다.  2주간의 휴가 여행을 가기전에 집에 와서 부모와 함께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기로했었다. 남편은 갑자기 아버님을 모시고 어릴 때 살던 병천에 가자고 했다.

아버님이 병천 중고등학교에서 5년간 근무했기 때문에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 까지 병천의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아버님은 병천에 살고 있는 제자가 몸이 불편해서 아버님을 보고 싶어도 만나러 오지못한다며 당신께서 가시겠다고 했다.



 

병천은 충남 천안시에 편입이 된 아우네 라는  정겨운 지명이 있는 곳이었다. 아버님과 남편, 큰아들과 나는 병천 중고등학교를 둘러보고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아버님의 노제자 김기준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60년도 전에  병천 고등학교에서  수학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스승과 제자는 담담하게  지난 세월을 이야기 했다. 주로 누가 죽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나의 마음까지 쓸쓸해졌다.아버님은 늙으니까 사람이 그립다고 말씀하셨다.

휠체어를 탄 선생님을   수발하고 병원에 다니는 사모님은  허리가 불편해서 잘 걷지 못했다.  제자 김기준 선생님은 83세 우리 아버님은 92세이다. 김기준 선생님은  학교를 늦게 입학을 했던 것 같았다.



 

다른 제자가 아버님을 기다리다가 약속 때문에 가시면서 편지와 햇밤을 선물로 두고 갔다.  곽노련 선생님과 김기준선생님은 모두 육상선수였다. 아버님은 한때 충남 육상의 대부로 불렸었다.
 


 

곽노련 선생님이 선물로 준 햇밤.



 

김기준 선생님은  충남 덕산 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직을 한 수학선생님이다.
벽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받은 훈장증이 걸려있었다. 사모님은 사택에 살면서 교장선생님과  제자들의 밥을 해주는 내조를 잘하셨다.

김기준선생님의 1남2녀는 모두 외지에 살고 있고 집에는 선생님 부부만 살고 있었다.



아버님이 병천중학교에 근무할 때 처음에는  김기준 선생님 댁에서 하숙을 했다. 나중에   가족들이 이사를 와서 남편도 병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버님은 선물로  준비해 간 대한 육상연맹의 기년품을 몇개 주셨다. 나는  미리 선물을 준비 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미처 생각조차 못하고  아버님을 따라서 간 것은  상당히 죄송한 일이었다.

다음에 부여의 임천 중학교나 서산중학교에 갈 때는 꼭  선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갈 생각이다. 그곳도 아버님의 옛  근무지였고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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