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평생 농부였던 시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모과 2014. 8. 30. 15:28

덕산 시골집은  130년 전에  소금장수였던  5대조 할아버지께서 옆동네 복당리에 살다가 집을 지어 이사온  곳입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시골집에서 태어나셨고  농사를 주업으로 살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옆마을  서당으로 공부를 하러 매일 다녔습니다. 서당 훈장님은 총명한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따님인 할머니를 시집보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3살 연상입니다. 할머니는 3남 6녀를 낳으셨는게 지금 생존해 있는 분은  아버님의 누님인 큰시고모님(94세/복당리) 아버님(92세)  시고모님( 78세/홍성) 시고모님(73세/대전)  네 분 입니다.

아버님은 2004년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시골집을 대대적으로 고쳤습니다. 매주 남편의 형제들이 고향에 들어가서 분담해서 고쳤습니다. 사당은 15평으로 작은 강당같이 새로 지었습니다.

2014년,집이 어느 정도  정돈되자 이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용하던 농기구와  유품을 전시하는 작은  가족 박물관을 만드셨어요.  집을 고치는 비용과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비용은 모두 아버님께서 부담하셨습니다.



 

지난 일요일 벌초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 후에 외가를 방문한 서울고모님의 두아드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아버님의 모습입니다.



 

병풍 위에는 가족행사 때 마다  찍은 기념사진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아버님은 5남2녀를 두셨는데 시동생 한 명이 36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고 있습니다. 



 

 가훈은 근검정직[勤儉正直 ] 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진입니다.

 


농은(農隱) 박상윤 할아버님(99세 별세)은  교육열이 대단해서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을 홍성국민학교에 6년간 통학을 시켰습니다. 아버님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재 중학교와 연희 전문상과를 졸업했습니다.
 


 

덕산(德山) 박민순 아버님은  교직에 있을 때 평생 6시에 출근해서 충남의 17개 시도 의 중고등학교 자료를 다 읽어보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버님은 교육청 사회체육과장으로 21년 근무하고 대전여고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전에는 충남 육상연맹의 고문이었는데, 지금은 대전시 육상연맹고문입니다. 

 자식들이 아버님이 재직시에 받은 상패와 감사패들을   전시했습니다.

 오른 쪽의 두꺼운 책들이 밀양박씨 족보와  밀양박씨 연안공파 족보입니다.



 

아버님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제 1회  한밭 교육상입니다.  당시 충남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에게  준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자 대상입니다.

훈장

1946년 연희 전문학교에서 받은 졸업증서입니다.
 

연세대학교 상과 43학번, 동문들이 주는 감사패입니다.
 

 

할머니(김종례/ 93세에 별세)께서 시집올 때 해오신 고리짝입니다.
 

할머니께서 쓰시던 부엌 살림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여름에 입으시던 등나무로 만든 조끼입니다.
 

                           놋그릇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쓰고 다니시던 갓과  모자입니다.  

밀양박씨 연보

 몇 년전에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가을에 추수한 쌀을 팔아 모아서 마을 땅을 사모았습니다. 한 때는 시골마을의 대부분의 논과 밭이 할아버지 소유였습니다.

지금은 내포시가 가까이  생겨서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충청도 예산 깡촌의 한농부가  이룬 업적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돈도 없으면서 자식 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비웃었다지만  할아버지의 확고한 교육관이 자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생전에 할아버님은  손자들에게 일년분의 쌀을 보내주셨습니다. 명절에 가면  자가용이 없는  손자들에게는 봉투에 차비를 넣어서 주셨습니다. 차비가 없어서 못온다고 하지 말라는 의도라고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손부들에게  농번기에 시골집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농사는   사람을 사서 해도 되고 망치면 일년 분이 손해지만  자식농사가 더 중요하므로 자녀교육에 열중하라고 했습니다.

전 물질적인 유산보다도 정신적인 유산이 더 큰 시집 어른들의  가르침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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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입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카페와  대전 &충청 카페에도 올렸습니다. 그곳의 댓글을 아버님께서 보시도록 캡쳐해 올립니다.

 

 

 

 

 

 

 

 

 

 

 

 

* 대전 &충청 학습체험카페에  특별한 댓글이 올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