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새며느리, 시집에서 보낸 첫 설날

모과 2014. 2. 6. 07:30

 

 작년가을에  결혼한  우리 집 며느리 동글이가  첫번 째 설을 지내러  대전에 내려왔다. 시집은   추석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외라리에 있는 본가의 사당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가까운 선산과 종산으로 성묘를 하러 간다. 그러나   설날은 늘 대전의 큰형님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동글이는 대기업에서 하는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로  직원 16명이 근무하는 큰 점포의 점장이다. 직업의 특성상  명절에도 근무해야 한다.  설날 전날  새벽 5시30분에 집에서 나가서  오후 4시에 돌아와  5시에 막내아들과 함께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다행히  우리 집까지  2시간 반 만에 왔다.

 

나는  미리 밥상을  차려놓았다.  반찬은 다 차려놓고   아들부부가 도착 하자마자   밥과 국을 떠서 방으로 들여갔다.  남편은 고향 덕산에서 사다논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단골정육점에 부탁해서  한우 채끝살을  두근 사서  미리 불고기 양념을 해두었다.

 

나는   동글이가 오기  한달 전부터 집안을 청소하고 장농도 다 다시 정리했다. 이불을 다  빨아두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입으라고 잠옷도 준비해서 빨아두었다.  밥이 맛이 있다고 조금 더 먹은 동글이는 큰눈이 감기며 졸려했다. 

 

 아침에  7시 30분 까지  큰집에 가기위해서  빨리 자라고 했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동글이에게 그냥 두고 빨리 자라고 했다. 설거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새벽부터 출근해서 하루종일 일하고  내려 온 며느리가 안스러워서였다.   다행히  동글이는  피곤해서였는지 잘잤다고 했다.

 

 

설날 아침에  동글이는 한복을 곱게 입었고 나는 평상복으로 입었다.  결혼식에 입었던  한복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입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큰형님 집에 도착 하자마자  차례상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글이는 자연스럽게   차례 음식을  상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친정에서 하던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며느리의 모습이 진작부터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병풍에는  남편의 증조부모와 조부모, 두 분의 어머니의 지방이 붙어있었다.

 

 

아버님과 큰아주버님에 이어서 종손(44세)이 절을  하고 있다.

 

 

큰집 손자와 손녀들의 재롱이 귀엽다. 사촌끼리 가까운데 살아서 친 남매같이 다정하다.

 

 

시아버님(92세)께 세배를 하는 남편의 형제 부부들의 모습.

 

 

남편의 4형제 부부가 세배를 받고 있다.  미국의 시동생은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평소에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시아버님께 전화를 하는 효자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작은집에서  따로 차례를 지내서 아버님의 직계 후손 22명만 모였다.

 

 

아버님은 세배를 한 모두에게  신권으로  2만원 씩 세배돈을 주셨다. 남편도 92세까지 건강해서  자손들에게 넉넉한 세배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부부는 큰집에 오기 전에 아들부부에게  미리 세배를 받았고 신권으로  5만원씩 세배돈을  봉투에 넣어서주었다.

 

동글이는  생일이 음력 12월 29일(양력 1월 29일)이었던  남편을 위해서 생일 케익을 사왔고 봉투 두 개를 준비해서 남편과 나에게 주었다.  정성이 담긴 액수여서 고마웠다.

 

 

세배가 끝나고  떡국을 먹기 위해서  상을 차렸다.   

 

 

 큰동서형님의  시키는 대로 모두  질서있게 움직였다.

 

 

큰집 식구들은 모두 한복을 입어서 설날의 분위기가 화사해서 좋았다. 나도 내년에는  한복을 입어야겠다.

 

 

 동글이는  오후 3시까지 출근해야해서 빨리 서울로 보내야했다.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근무해야 하므로  상당히 피곤 할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10시 이전에 출발하면 차가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한복을 곱게 입고 흰 앞치마를 두른 새댁이 동글이다.  자연스럽게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자기 몫을  열심히 하는 동글이가  믿음직스럽고 예뻤다.

 

 

 나는 동글이를 막내아들 옆에 앉으라고 하고 떡국을 먹게 했다.  시어미가 빨리 챙겨서 서울로 보내야  집 근처에 있는 친정에 가서 점심을 먹고  출근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아들부부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집으로 한라봉 한 상자를 사서들고 갔다.  작은 어머니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셔서  동글이를 못보셨기 때문이다.  작은 집도  사촌 형제들과 자녀들이 모여서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우리는 작은 어머니께 세배를 하고  바로  왔다. 작은집 형제들도  우리 아버님께 세배를 하러 와야했기 때문이다.

 

올해 설날은  며느리와 함께  보내게 돼서 뜻 깊은 해가 됐다.   아들 부부에게  고맙고  기쁜 명절이었다. 나는 동글이를 보며 자주  나의 신혼 때가  생각났다.  친정어머니는 결혼전에 돌아가셨다.  남편의 생모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새어머니는  평생 몸이   아파서  멀리 떨어져살았던 우리를 배려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들을 사랑하기에 선택한 시집에 도리를 다하려고  새벽부터 일을 하고 내려와 함께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다시 올라가 자정까지 근무 할 며느리가 고맙고  미안했다. 

 

 미리 청소하고 정리하고 며느리를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는 정성으로  이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며느리에게 좋은 시부모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동글이는  우리집의 귀한 손님 중에 한사람이 됐다.  동글이와 나는 서로 예우하며 좋아하면서 인생을 함께 갈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