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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인 남편과 살아가는 방법

모과 2013. 7. 26. 14:22

 

 

거의 매주 아버님을 모시고 덕산 시골집으로 가는 남편의 효도는 우직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간절함이 있다. 64세의남편이 91세인 아버님을 모시고 자기가 태어난 시골집에 가서 집안과 밖의 잡초를 뽑고, 밭에 검은 콩과 들깨를 심고 온다.

남편이 너무 효자라서 가끔은 갑갑할 때도 있지만 그가 효자라서 다행이다. 자기 부모에게 못하는 남편과 나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의 부모님에 대한 태도는  늘 옳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이 미처 생각을 못한 것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사실 아내로서 다행이기도 하다.

시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올 때 갑자기 장마 소식이 들렸다.  어머니의 기일은  일요일이었다.  남편은 시누이 형님과   아버님을 모시고 토요일에 시골집으로 갔다.  나는 발목을 치료 중이라서 함께 가지 못했다.

남편은  막내 시동생과 막내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 산소에 가자고 했다. 갑자기 많이 내린 비로 인해서 산소의 상태가 걱정이 되서라고 했다. 아버님은 시골집에 계시게 하고   모두 어머니의 산소로  갔다.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홍성군 갈산면 가곡리에 있는  종산(삼준산)은  나무와 풀이 우거져서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야 했다.
 


앞서 가는 남편과  막내 서방님이  잡초를  베면서 길을 만들며 올라가고 있다.
 


가방을 맨 사람은 막내시누이 남편인 서방님(50세)이다.

 


남편의 생모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병환으로 4남1녀를 두고 돌아가셨다.  남편이 8살 때였다. 3년 후 오신 새어머니는 막내 서방님(53세)과 막내 시누이(50세)를 낳으셨다. 그분도 작년에 78세로  50년의 긴 투병생활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위의 산소는 두 분의 어머니를 합장한 산소이다. 아버님은  당신이 돌아가시면 화장을 해서  두 어머니 사이에 합장을 하라고 하셨다.
 


산소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매우 아름답고 시원하다.  명당이라는 산소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할아버지께서 목숨을  걸고 지키셨다고 했다. 남편과 나도 죽으면  부모님 산소 바로 아래 자리로 갈 것이다.

 


남편과 막내시동생(53세) 이 예초기로 산소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어머니 산소의 벌초를 하고 내려가는 남편과 시누이형님. 시골집에 가서 아버님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려고 대전의 큰집으로  왔다.
 


시집의 제사는  정확하게 밤 12시에  지낸다. 나는 병풍이 너무 낡아서 바꿨으면 좋겠어서 큰아주버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우리 시집은 제사 비용은   자기 형편에 따라서 큰 형님에게 봉투를 드린다.  아버님도 제사 때 마다  늘 10만원을  큰동서 형님에게 주신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아버님 제사에 두 분 어머니의 제사도 같이 지내라고 미리 말씀하신 분이다. 당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도 할아버지 제사날에 함께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번의 큰수술로   건강도 좋지 않고  특히  폐기능이 약한 나를 위해서라도 시골집 근처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남편, 나는 그가 가는 곳에 함께 늘 있을 것이다. 남편은 귀농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매주 노력하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동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

남편의 효도는  가끔은 내겐 힘도 들고  갑갑하기도 하다.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의 태도가 최선이고 옳기 때문에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늘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