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울지마 톤즈, 절망의 땅 수단 사람들에게 꽃이 되어 준 이태석 신부.

모과 2013. 1. 3. 06:30

 

새해 첫번째 영화 리뷰는  고 이태석신부님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로 정했다.   12월에 거의 매일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지 않은 영화가 많지만  천주교인인 내가 쓸 리뷰는 '울지마  톤즈'라고 생각 한다.

 

2009년 2월에 내 발로 성당에  찾아가서 매주 목요일 교리를 배우고  8월에 영세를 받았다. 그후  2010년  부터 성당에 다니지 않게 되고  어느새 2 년이나 지났다.

 

2013년 첫번째 결심이 성당에 잘 다니는 것으로 정했다. 우선 주일을 지키고  교리 공부도 다시 배울 생각이다. 영화관에서는 상영을 거의 안해서 보고 싶어도 못봤던 이태석신부님의 삶을 영화로 보면서 나는 나의 신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다.

 

1.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미래가 없는 암흑의 땅  수단에 지원해서 간 이유 .

 

 이태석 신부님은 부산의 가난한 동네에서 10남매의 9번 째로 태어났다.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녀들을  삯 바느질로 키우셨다.  이신부님은 남부민동의 산동네 에 살면서  성당마당이 놀이터였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신부님은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모습과 어머니께서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신명남 당시 85세)의 신앙과 삶이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이 성경 귀절이 신부님을 수단에 가게 한 이유가 된다.

 

기독교인(개신교와 천주교인 )들이라면 이 귀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천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삶 속에 갇혀서 허덕이며 가까운 형제나 이웃도 제대로 못돌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아들에 대한 기쁨은 대단 했을 것이다.  자녀 10명 중에 이미 성직자로 두 명이나  집을 떠났다.  이태석신부의 둘째 형과 넷째 누나가 수녀가 됐다. 형 이태성신부도 부산의 한센(나병)인 정착촌의 성당에서 시무하고 있다. 이태석신부는 이때 한센인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2.  톤즈의 병원, 그 곳의 유일한 의사 이태석 신부 그리고 학교 설립.

 

영화 '울지마톤즈'는  절망의 땅 수단 사람들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남자의 삶의 이야기이다.

 

이태석신부는 수단에 학교와 병원을  짓는다. 그 나라의 미래가 없는 아이들에게 신앙과 음악과 공부와 사랑을 알게 해 준다. 돈보스코 초중고등학교는 규칙적인 교육으로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지원자가 많았다. 집이 먼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 기숙사를 지어서 숙식하게 해주었다.

 

 

 하루에 200명의 환자를 돌보고 아무리 밤 늦게 찾아오는  환자도 한번의 노크소리에 깨어나서 돌봐주었다.

 

3.한센(나병)인의 아픔을 함께 한 신부.

 

신부님은 한센인촌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치료를 해주었다. 문둥이라고 근처에도 가지 않는 전염병인 데 이웃으로 대하며 친절하게 치료를 해주었다.

 

 

맨발로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환자들을 보고 그들에게 신발을 만들어 신키기도 한다. 모든 환자의 발을 직접 그려서  샌들 모양의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4. 총 대신 악기를 든 수단의  아이들.


이신부님은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서 악단을 만들어 준다. 이신부님 자신도 중학교때 독학으로 피아노와 키타를 배워서 중3 때  성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민족이며 제일 가난한 나라인 수단은 석유가 발견되면서 남과 북이 갈렸다. 동족끼리 총과 칼을 들고 산발적인 전쟁을 자주 하는 위험한 나라이다.

 

신부님은 학생들에게 여러 곳에서 지원 받은 악기를 주고 악단복도 입혔다. 본래 음악성이 뛰어난 아프리카 민족인 수단의 학생들은  음악을 스폰지같이 흡수하며 배웠다.

 

 

5. 휴가 때 받은 정기검진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 받은 이태석신부님.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왜 착하고 베풀기만 한 신부님이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이해가 좀 됐다.

 

 신부님이 절망의 땅 수단에 가서   자기를 희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난을 해결 해주고 싶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속 타는  마음이 몸 안에 쌓여서 암으로 변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연로한 엄마에게 걱정을 주지 않고 싶어서  엄마가 문병을 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며 맞아들였다는 아들 이태석신부님 ! 2010년 1월14일,  양평의 존벨뚜알 푸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선종하셨다. 당시 48세의 젊은 나이의 신부님을 하늘로 데려가셨다.


 

 이태석신부님은 아프리카의 수바이쳐로  어떤 고난이나 상처에도 울지 않는  그곳의 학생들에게 눈물로 그리움을 표현하게 했다.  한 사람의 신부가 척박한 땅 수단에 가서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인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주었다.

 

죽으면서 까지 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 신명남 여사의  삶의 향기가 아들 이태석신부를  수단으로 가게 했다고 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아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생각에 빠졌다.

 

나의 친정엄머니는 개신교인으로 늘 가정 예배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할 때는 어디에 가도 꽃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했었다. 물론 이태석신부님이 수단 사람들에게 꽃이 된 희생과는 다른  사랑 받는 꽃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고단한 삶을 살아내면서 두 아들에게 바위 같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는  어미이고 싶었다.

내 앞에 주어진 두 아들들과 내 삶에만 충실하기도 벅찬 60년이었다.

 

나는 올해 부터 성당에 잘 다니고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려고 결심을 했다. 우선 그렇게 시작하고 내가 가진 달란트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블로그 안에서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무엇인가 할 생각이다. 

 

훌륭한 신부님의 영화를 보고  나의 봉사 활동을  소박하게 계획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큰 은혜라고 생각한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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