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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환갑 여행, 미완성과 편함과 흘림에 대해서

모과 2012. 3. 6. 18:54

 

 

 내가  신혼 여행지를 제주도로 정했다가  부산으로 갑자기 바꾼 사연이 있다. 

 

 2월 말이면 퇴직할 학교에서 긴 겨울 방학을  마치고 개학 하자마자 결혼한다는 여선생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시집의 시할아버지께서   꼭 2월 9일에 해야 잘 산다고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개학이 7일인데   9일로 결혼 날짜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2월의 변화무쌍한 제주도의 날씨가 걱정이 됐다.  갑자기 폭설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까 두려워서 부산 해운대로  신혼 여행지를 바꾸었다.  그 후  3년 만에 부산의 해운대가 훤히 보이는 달맞이 고개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27년 이나 긴 부산살이를 할 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결혼 5주 년에 제주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했던  남편은  자주 바뀐 직장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다.  나는 환갑이 될 때까지 사느라고 바뻐서  제주도는 커녕  변변한 여행을 못했다.

 

 지난 2월 5일부터 4박 5일 간  70학번 대학 동기 동창 들과 떠난 환갑 여행은 내겐 아주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남겨주었다.

 

1.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 그러나 저가 항공으로 떠난 제주도

 

* 제주 공항의 진 에어 코너 ,  승무원들도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제주도로 13년 전에 이주 한 대학 동기 선영이가  초청해서 일 인당 40만원을 예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대장은 제주도에 30번 이상 다녀오고 여행 전문가 못지않게   여행을 많이 다닌 민화가 하라고 했다.  민화는 인터넷으로 저가 항공을 조사해서 항공 요금이 왕복 89,000원 이라고 했다.  주 중이라서  더 싸다고 했다.

 

나와  명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가 항공은  좀 위험하지 않을 까? 동시에 생각을 했다. ^^

 

" 나는 지금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이야. 그냥 대한 항공 타고 가자 . 돈이 좀 더 들더라도 "   나는 명희와  그런 말을 주고 받았다. 하하.

 

* 승무원이 사진을 찍지말라고 해서 흐리게 나온 사진을 올렸습니다. 초상권이 문제되면 말씀해주세요. 내리겠습니다.

  

그런데 명희 남편과 나의 장남의 조언으로 그냥 저가 항공을 타고 가기로 했다.   큰아들은 진 에어는 대한 항공에서 개발한 저가항공이라고 말해주었다.

 

" 엄마! 승무원들도 모두 청바지 차림에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어. 나도 타봤는데 걱정말고 가세요"

 

비행기에 좌석은 정해져 있지 않고 A,B,C로 구간만 정해주어서 자유롭게 앉았다. 좌석은 마치 KTX의 의자 같은데 세 명씩  양쪽으로 앉게 돼 있었다. 한 시간 거리의 여행이라서 그냥 저냥 앉아서 갈 만 했다. 승무원들의 복장도 일하기 편해서 보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껴졌다.

 

2. 친구! ..... 두서없이 떠들어도 알아서 듣는 좋은 사람.

 

이 말은 어느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정말 좋은 말이라서 인용한다

 

 

앞 쪽이 명희와 창가의 민화가 이번 여행의 동행이다. 우리는  4박 5일 동안 무수한 대화를 했다.  그냥 두서 없이 이 이야기를 했다가  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끔 뜬금 없는 말을 해도 친구들이 정리해서 듣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서 오랜 친구는 좋은 것 같다.

 

 

명희는 입학식 다음 날  큰 캠퍼스에서 강의실을  못찾고  헤메다 만난 첫 번 째 친구이다. 우리 과에는 진명 여고 출신들이 7/40명이나  입학했다.  70학번 이화여대 입학생 약 2,000명 중에 진명여고 출신들이 200명이나 됐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전에도  블로그에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진명 여중을 졸업하고 후기인 중앙 여고에 입학을 했다. 

 명희가 제일 먼저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라서 나는 자연스럽게 진명여고를 나온 명희,승희와  친하게 됐다.  명희와 나는 대학 4년 간을 함께 다닌 친구라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국립 제주대 캠퍼스

 

제주도에 사는 선영이와 민화는 대학 4년 간 절친이었다. 그들은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만났다. 결혼 후에는 부부동반으로 서로의 집도 오가는 사이다. 

 

선영이와 나는  대학 4년동안  같은  실험 조였으나  친하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끓어졌다. 그런데 마흔 살이 다 돼서  내가 살던  부산의 아파트 경비실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아파트는 한화기업이 지은 아파트라서 동마다  사택이 몇 채 씩 있었다. 선영이의 남편은 한화그룹의 사원이었다.  우리는 2년 간 거의 매일  만났다. 선영이는 맏며느리인데  음식 솜씨가 좋다. 두부도 만들고 콩나물을 집에서 길러서 먹었다. 내게도 가끔 주었다.

 

* 우리가 머물던 선영이가 하는 원 룸의 방, 25일까지 방이 빈다고 해서 갑자기 여행을 갔다.

 

서울로 돌아 간 선영이가 대학 동기 모임에 가서 나를 좋게 말해주었다. 참 고마운 친구이다. 그 후 가끔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다시 20년 만에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학교 친구의 가치와 깊이가 진하게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  학창시절( 1973년 /졸업엘범에서) 서 있는 학생 오른 쪽에서 첫 번 째가 선영이, 앉은 사람 중에서 오른 쪽에서 두 번 째가 나(모과)이다.

  

명희는 민화와 선영이와는 학창시절에 전혀 친하지 않았는데  나와 절친이라서 여행을 함께 갔다.  모두 같은 시절에 같은 대학을 함께 다닌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전혀  낯설지 않은 친구 네 명이 4박5일을  함께 보냈다.  

 

3.  대중 교통을 이용한 제주도 여행...... 흘리는 것을 되풀이한 여행.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국립 제주대학교 앞 버스 종점에는 수 많은 버스들이 주차 돼 있었다.  우리는  선영이의 조언을 참고로  제주도 관광 지도를 보며 시내 버스를 이용해서 여행을 했다.

 

 

함덕 해수욕장 은 잠시 들리고 ,

 

* 명희와 나 (오른 쪽), 지금도 10kg이상 차이가 난다.  잃어버릴까 봐   명희 백에 묶어 논 마후라.^^ 

 

학교 다닐 때 명희는 키 167cm 에 50kg의 아주 날씬한 친구였다. 나는 좀 통통한 편이었데 (165cm/?kg) 지금은 고도 비만으로 남편이 뚱뚱하다고 반성문을 써놓고 다이어트를 하라고 말할 정도이다. ^^ 환갑인 아내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내가 한 마디 했다.

 

" 당신은 키가 작아서 죄송하다고 반성문을 써. 나는 살을 빼면 되지만  당신은 어떻게 할거야?"

 

집에만 있던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숨이 차서 헉헉 소리는 내는 나 자신에게  큰 실망과 함께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내가 뚱뚱해서  평지에서 걷는데도 숨이 찬게 아니고 운동 부족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됐다.

 

 

제주도에 오면 꼭 가봐야 한다고 민화가 데리고 간 성판악은 폭설로 입산 금지 였다.

 

 

 허리가 아파서  오기 전 날 무척 갈등을 했다는 민화는 등산용 지팡이를 가지고 왔다.  저 지팡이를 어느 곳에 놓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갔다.  나는 핸드폰을 숙소에 놓고 그냥 나왔다. 명희는  눈이 너무 와서 극장에 갔을 때 매표소에 장갑을 놓고 와서 다시 찾으러갔다.

 

 민화가 한 살이 더 많아서 그런지 제일 심했다.  시내 버스에   비싼  마후라를 놓고 내려서 종점까지 찾으러 갔다.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쇼핑 백을 잃어버렸는데  추적 끝에 진 에어 항공 코너에서  탑승 수속을 하다가 놓고 온 것을 알아서 찾았다.

 

나는 젊어서도 늘 뭘 하나씩 흘리고 다녀서 아예 외출 전에 모든 준비물을 메모해서 짐을 싸놓는 버릇이 있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꼭 챙기는 버릇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그만 그걸 잊어 버리고 흘리고 말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친구들도 그래서 참 다행이다. 우리는 물건을 찾을 때 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웃기기도하고 허망해서 함께 웃었다. 웃어야지 어떻게 해야 하나?

 

 

4. 환상의  섬 제주도...... 일 년에 네 번 은 가보고 싶은 곳

 

2월의 제주도는  황량한 바람이 수시로 불고 다양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비가 오다가, 진눈개비로 변하고 , 다음 날에는 폭설이 왔다.  첫 날 선영이의  차로  제주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바람에 눈이 내리자마자 왼 쪽으로 쓸려서  모였다.

 

해변가에서 본 바다는 성난 파도가 방파제까지 넘실거렸다. 우리가 탄 차 이외에는  오는 차도 가는 차도 없는   거리를 달리며 나는 내려서 사진을 찍을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길 가의 무 밭에는 무를 뽑아서 그냥 내팽겨쳐 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무 값이 너무 싸서 그냥 버리는게 차라리 더 났기에 그렇다고 했다.

 

민화가  아름답다고 안내한 올레  8코스는 서귀포 특급 호텔이 모여 있는 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보며 네크 위를 걷는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모든 나무들도 아직 잠자고 있는 2월 초의 제주도도 볼 거리는 있다.  그러나   꽃피는 4,5 월, 더운 여름인 7,8월,  하늘까지 아름다운 9,10월에도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 우리는 자주 제주도에 오기로 약속했다. 2월의 제주도만 보고 제주도를 말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5. 친구들의  새로운 면을 알고 익숙해진  제주도 여행  

 

나는 여행을 계획 할 때부터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 나는 목소리가 크니까 너희들이 그럴 때마다 주의를 줘라. 혼자 늘 있고 시집의 어른들이 대부분 가는 귀가 먹어서  큰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내가 목소리가 커서 너희들 까지 망신 당할까 봐 말해 두는 거야 "

 

아이고, 여행 내내 밤 늦게  원룸에서 수다를 떨 때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지적을 받았다.

 

"성희야! 목소리를 좀 줄여라. 옆 방에 들린다"

 

물론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이 참에 나는 목소리 큰 것을 고치고 싶었다. ^^ 친구들은 조용조용 서울여자들 답게 교양있는 표준어를 썼다. 나는 제일 교양이 없는 여자였다.

 

친구들의 다른 면은  눈섭을 문신한 친구,  아침에는 세수를 안하고 썬 크림만 바르는 친구(이는 확실하게 닦는다) , 미술 연필인 4B 연필로 눈섭을 그리면 더 좋다는 친구..... 

 

제주도 선영이는 매일 새벽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하러 간다.   밤 8시 쯤  다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장로님인 남편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는 친구  김선영 권사가 소망하는  간절한 기도가 꼭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여행은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익숙해지기도 한  기간이었다.

 

 

제주도에 간  첫 날은 선영이가 저녁을 샀다.  참 맛이 있는 음식점인데 가는 날부터 디카로 찍기가 뭐해서 참았는데 후회가 된다.  오기 전 날은 우리가 선영이에게 회를 샀다. 선영이 남편도 초대하고 싶었지만  어색한 자리라고 사양을 했다.

 

6. 환갑 파티가 꼭 필요한 이유를 깨달은 여행

 

 

인생을 60년이나  살면서  우리는  기쁨도 고난도  다  겪었다. 단지 모양과 색깔만 다를 뿐이다.

 

명희와 나의 공통점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점이다. 명희는 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서  시부모님들께 대접을  많이 받은 친구이다. 그 분들께   받은 사랑을  명희는  확실하게 갚고 있다. 

 

치매로 고생 중인 어머니를 집에서  3년 간 모시다  요양 병원에 모신지 5년이  넘었다. 매주 토요일 일 주일 분의 죽과 과일, 과자, 요플레를 소풍가는 것 같이  싸가지고 남편과  문병을 가고 있다.  

 

나는 명희에게 배워서 매주 월요일에 시집에 간다 .  좋은 친구는  일상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환갑이라는 나이는  건강과 총명함이 급격히 쇄락 해 가는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새 아들들이 30세를 넘겼다. 이제는  아들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는 숫자에 확실히 비례하고 있는 것을 알게도 됐다. 

 

 나는 60이 넘으면 덤으로 산다는 말을 명심하고 보다 건강하게 보다 즐겁게 사도록 노력할 것이다.

 

7. 알뜰한  제주도 여행, 행복한 마감

 

 공항 커피 숍에서  여행경비를  계산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

 

제주도에 사는 선영이에게 화장품(15만원) 을 선물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민화의 딸이 면세점에서 사 온  좋은 화장품이라고 했다. 숙박비가 제일 비싼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우리는 넉넉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와 두 끼의 저녁식사는  원 룸에서 해결했다.

살림꾼인 명희가 김치 세  포기를 가지고 오고 코펠도 가지고 왔다.  요리는 명희가 다하고 설거지는 내가 했다.  나는 어디를 가도  내 몫의 일은 찾아서 하고 온다.  나는 돌아오는 날 락스를  풀어서 화장실 청소를 깨끗하게 해주고 왔다. 

 

민화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일을 시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민화가   여행 가이드를 무료로 해주어서  실속 있는 여행을  할 수가 있었으니 제일 큰 일을 한 셈이다.

 

 

돌아 오면서 선물로 제주도 보리 빵  네 박스( 각 24,000원)와  제주공항 에서 전통 젓갈세트( 5박스 각 12,000원) 을 사가지고 왔다.  서울에 도착해서 저녁 값 24,000원까지 남았다.  참 알뜰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다녀왔다.

 

 

환갑 여행을 마치며

 

환갑이란 나이는  노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인생을 비교적 잘 살아온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라서 더 즐겁고  좋은 추억이 된다. 나는  환갑이란 나이가 가끔 허망하고  낯설다. 그러나 다시 젊은 날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대규모의 건강 검진을  신청하고 왔다.  아픈 데가 있으면 고칠 것이고 건강하면 노후를 위해서 다이어트를 시작 할 것이다.

 

두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고맙게도  부모의 환갑이라고  축하금을 주었다.  그 돈으로  좋은  정장 한 벌과 등산복 한 벌을 샀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이번 주에 모두 생일이 몰려있다. 모두 음력 1,2월 생이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고급 한정식 집에서 각자 돈을 내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환갑을 축하할 만큼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