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키작은 위너 ! 남편에게 내가 늘 KO패 당하는 이유

모과 2011. 9. 19. 06:30

남편이 키가 작아서 나는 결혼식에 고무신을 신고 들어갔다. 맞선을 보고  남편의 적극적인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내가 결혼을 결심을 한 이유는 남편이 교육자 집안의 셋째 아들이고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사실 나와 키가 거의 같은 남편과 외출을 할 때 나는  고개를 조금 숙인다거나  보도 블럭 아래 차도로  내려 가서 걸었었다.  신혼 초 , 5년 정도 그런 짓을 한 것을 지금 반성하고 있다. 하하

 

나는 활발하고 솔직담백한 성격이라서 자기표현을 잘 하는 편이다.  남편은 전형적인 A형으로 참는데는  도사이고 감정 표현도 잘하지 않는 전형적인 충청도 남자이다.

 

결혼하고 34년을 살면서 시집 식구들 사이에 큰소리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남편은 부모형제 덕을 참 많이 보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살면 살수록 시집 식구들의 성품에 매료 돼 가고 있다.

 

 

1.  남편의 아버님에 대한 효심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남편에게  아버님의 말씀은  법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받아 들려지고 있다. 이견이나  반대는 있을  수가 없다.   89세 아버님이 올해 2월까지 중소기업을 운영하셨다는 것도 다들 놀라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버님은 자상하고  온화한 성품이다.   남편 스스로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40대에  우리 가족이 너무 어렵게 살아서 아버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늘 불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9월말까지 대학도서관에 도서 납품을 위해서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덕산 시골집에 들어 가신다고 하니 갑자기 나보고 같이 들어 가자고 했다.

 

 

 예산군 덕산면 외라리에 위치한  시골집에 가면 몸과 마음이 다 정화되는 기분이든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보이고 공기 자체가 달아서 코가 다 뻥 뚫리는 것 같다.  남편이 태어난 집이기도 해서 정이 더 가기도 한다. 

 

마당이나 텃밭에 있는 잡초를 뽑으면서 흙 냄새를 맡으면 속세의 모든 일들이 잊혀지고 무념 상태가 돼 간다.  그곳에 가 있으면 온몸의 나쁜 기운이  밖으로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을 늘   느끼고 있다.

 

우리가 시골집에 도착을 하니  이미  시부모님과 홍성고모님 내외분,큰아주버님,큰동서, 큰시누이  형님이 도착해서  화단과 텃밭의 풀을 뽑고 있었다.

 

저녁 6시가 다 돼서  우리 부부는 막내 고모부님을 모시고  시골집에 도착을 했다.  큰동서 형님은  토종닭 3마리를  엄나무와  마늘을 넣고 가마솥에 푹 고았다.

 

2. 열 명의 가족 중에 나는 최연소 60세,귀여운 며느리이다.  

 

시어버님 (89세), 시어머니(77세) , 홍성고모부(79세),홍성고모 (75세), 막내고모부 ( 71세), 큰아주버님 (69세),큰형님 (67세), 큰시누이형님 (64세),  사랑하는 남편(61세) ,나 (60세)

 

텃밭에서 딴 가지와 풋고추는 다음 날 아침 반찬으로 만들었다.  

 

큰아주버님이 만든 평상으로  식탁을  만들었다.   남편에게 덕산 막걸리를 모두 한 잔 씩 받았다.

 

사진을 찍는 나를 빼고 모두 '위하여'를 하고 일 잔 씩 쫙 ~~~ 

 

"어! 우리 마누라만 빨간 옷을 안 입었네!"

 

푼수같은 남편이 한마디 했다. 나는 텃밭에서 딴 풋고추를  남편 앞에 놔주었다.  비타민 A가 많다고 하니까  호호호 . 푼수 남편에는 푼수 마누라가 제격이다.

 

 

나는 이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식구들의 한 사람이 된 게 정말 행복했다.  우리 아들들이 박씨 집안의 자식이라는 게 정말 좋다.

' 서울에 살던 내가  34년 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충청도 예산 깡촌에 와서  현미 찹쌀을 넣은  닭 백숙을 먹고 있는게 불현듯 신기했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는 요리 못하고 막내(이날만 ) 인 내가 하는게 당연한 순서였다. 마음씨 좋은  큰동서는 내가  혼자 하는게 안스러워서 같이 설거지를 하며  도와주었다.

 

새벽 2시까지  큰동서 형님과 큰시누이 형님과 같이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 잤다.

 

 대전에 있는 또다른 본가의 화단에서 옮겨 심은 서광이 만개하고 있었다. 저 황토방에서 남편이 태어났다. 아버님의 지인 중에 지관이 있는데  저 황토방에서 태어난 사람은 잘 된다고 했단다.  아마도 남편은 앞으로 참 잘될 사람인가보다.  장수사회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3. 아침 식사는 웰빙으로 간단히 하다

 

남편과 큰시아주버님은 아침부터 덕산막걸리 를 한 잔씩 하고 , 아침 식사는 웰빙 식단이었다.  

 

황태 콩나물국, 오이지, 가지나물,  광천 김, 갈치 조림, 고구마줄기, 무청김치등등 .... 

 

 나는 아침 밥을 먹고 나서 11시부터 오후 2시반 까지 잤다. 잠이 부족하면 몸이 괴로워서 나는 잠을 자야 한다.  모두 밖으로 나가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아이구 창피해라.~~  그래도 자야 한다 ^^ 남편이 내 몫까지 두 배로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잤다.

남편과 막내 고모부가 만든 텃밭에는 다음 주에 쪽파를 심을 예정이다.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담은  큰아주버님의 작품이다. 남편과 나는 충실한 졸병이다. 우리 부부는 현실감이 부족하고 말만 잘하는 점이 공통점인 환상적인 커플이다.  서로 좀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그냥 저냥 사이좋게 살고 있다. 남편이 나보다 조금 나아서 늘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하고 산다.

 

"마누라 앞에서 잘난 척을 안하면 누구 앞에서 하냐?"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의 말에 늘 맞장구를 쳐준다.  자주 박수도 쳐준다

 

 

 나는 마스크팩은 생전 처음 한다는 홍성고모님(75세)과 어머니(77세)에게  친절하게 얼굴에  붙여드렸다. 이런 것으로라도 점수를 따야지. 하하

돌담 밑의 꽃들은 모두 연산홍이다 아버님이 2,000그루를 사다 집 안과 밖의  곳곳에 심었다.

 

4.  자네는 흉볼 짓을 왜 하나?

 

이번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시집에서 준 현미와  쌀에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겼다.  큰시누이 형님이 처리해 준다고 해서 남편이 차에 싣고 왔다.  

시누이형님이 키로 우리 집 쌀을 잘 정리하고 있다. 너무 벌레가 많아서 가래떡을 해서 나누어 먹기로  했다.  큰아주버님이 다음 주에 쌀을 새로 찌어서 주신다고 했다.

 

"아! 또 우리 올케가 , 우리 동서가 쌀을 다 벌레 먹게 했다고 흉보겠네요. 그러면 안되요?"

" 아! 자네는 왜 흉을 볼 짓을 하나?"

 

나는 속으로 흉을 봐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 창피해~~ 

 

내가 자고 있을 때 큰형님 내외분과 아버님이 갈산 장에서 사온 바지락을 넣고 끓이는 칼국수 . 

 

8도라는 덕산 막걸리는 취하지 않는다고  큰아주버님과  남편은 또 일 잔 씩 , 이 두 분도 환상의 커플이다. 추석때 조상의 묘 10구를 두 분이 거의 다 벌초를  했다.  다른 분들은 무관심하거나 사람을 사서 하자고 했다.  남편은 홈쇼핑을 보고  예초기의 기계를 사 가지고 갔다.

 

 

덕산 고향마을의 이산,저산의 높은 곳에 모셔진 조상님들의 묘를 찾아서 숲을 헤치며 가다가 남편은 넘어져서 발톱이 다 빠지려고 한다.(남편이 곤히 잘 때 몰래 찍었음)   이 미련한  남자에게   내가 이겨서 뭐하겠는가?

 

사실 돌아 가신 시할아버지나  시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분들과 시아버님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족 중에 인생의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참 큰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두 아들들도 본가의 어른들이 참 좋은 인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서  다행이다.  큰아주버님을 따라서 고생이 되는 벌초를 하러  다니는 남편을  나는 복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두 아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는 남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남편은 현실적으로 약삭 빠르지도 못하고  돈도 참 힘들게 땀을 흘리며 벌고 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히 나를 책임을 진다고 한다.  죽은 후에도  화장한 뼈가루를 서로 섞어서  고향마을의 저수지가 보이는 언덕에 나무를 심고 수목장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내가  우직한 환갑의 할아버지에게 지고 사는 이유이다. 나는 효자인 남편이  참 좋다.

 

집에 돌아 와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아까 당신 방에서 잤어?"

"응 ! 아파서 잤지. 왜?"

" 아니 안보여서 잘 했어"

"다른 사람들은 뭐했는데?"

" 풀들을 뽑았지"

" 나 못자게 하면 다음부터 시골에 안 간다. 나도 현관 앞에 있는 풀을 다 뽑았거든 "

"아 ! 누가 뭐래. 자자 "

 

** 60대의 우리 부부는 참 평화롭게 삽니다. 저는 지금 제 나이가 참 좋습니다. 좋은 부부상을 보여주는 시집 어른들이 제 곁에 많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심정적으로는 시아버님을 친정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편하게 잘 수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혼도 나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요.하하 . 키 작고 성품이 좋은  남자와 결혼해보니 참 행복합니다. 남편은 키작은 위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