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다정다감한 절친같은 큰 아들과의 특별한 데이트 .

모과 2011. 9. 16. 06:00

  첫 아기를 임신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늘 기도를  하며 다녔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니까  기도도 중립적으로 했다.  나쁜 생각이나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착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을 하며 살았다.

 

"이 아기가  착하고 성실하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지혜롭고  총명하고 어느 일이나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겸손하게 그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고 밝고 맑은 사람으로  키우도록 부모에게 지혜를 주십시요"

 

우리 부부는 1978년 2월 9일에 결혼을 하고 ,3월에 임신을 했고 큰아들을  12월 19일에 낳았다.  시할아버지께서 돌림자로 이름을  지으시느라고 고심하시다가 한 달이나 늦게 지어주셨다. 호적에는 1979년생으로 돼 있다.  큰아들의 나이가 34세가 됐다 33세가 됐다 하는 이유이다. 

 

 

3년 후 막내아들이 태어났다.  두 아들 모두 온순하고 착해서 키우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결혼생활 34년  동안  부모가 아들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나는  몸이 많이 아파서 아들들에게 걱정을 하게 했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를 해서 아들들에게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다.

 

생각해 보니  두 아들 모두 우리 부부에게 기쁘고 행복하게만 해주었다. 참 고마운 아들들이다.

 

두 아들 모두  집에 오면 엄마와  영화를  함께 보고 ,아빠와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형제가 둘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므로 집에는 일 년에  6번쯤 온다.  내가 서울로 공부를 하러 다니게 되면서 매주  이틀 정도  아들 집에서 자고 오곤 했다.

 

 

추석 전에 대전에 내려온 큰 아들과  서대전 네거리에 있는 대전 cgv에서 만났다.   아들은 영화 '푸른 소금'을 보기 전에  '베트남 쌀국수와 월남 쌈밥'을 사주었다.  친절하게 소스를 다 넣어주며 담백해서 엄마 입맛에 맞을 거라고 했다.

 

 

 큰아들은 세이백화점 일층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비싼 커피도 사주고  영화 상영시간이 될 때까지  아기자기 ,다정 다감하게 대화를 했다.  나는 아들들을  밖에서 만나면  크게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곤 한다.

* 큰아들이 5살 ,막내아들이 2살 때 가족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

 

 

 큰 아들은 늘 혼자 집에만 있는 엄마에 대한 배려로   자주 전화를 해주고  기쁜 소식만 전해 준다. 막내는 걱정거리도 모두 말해 준다. 그래야 부모가 자식의 상태를 알 수있다고 늘 말해주어서 그렇다.

 

나는 아들들을 키울 때 내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교육을 했다. 아들로  키우는게 아니고 좋은 사람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남자답게 라는 말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았다.  집에서 나 혼자  여자이므로  양성평등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두 아들 모두  직장의 멘토 중에 여성이 있었다.  나의 양성평등교육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왔다.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듯 직장의 여자 상사와도 조화롭게 잘 지내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사람들을 좋아하고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

 

우리 가족들이 만나면  계속 대화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아들들은 말이 없다거나 대화를 안 한다는 것은 어려서 부터 남자답게를 강조하고 키워서 그런 것 같다.  키우기에 따라서 아들들도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친구같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엄마와 친하면 '마마보이'라고 들 말하곤 한다.  두 아들이 모두 군에서 제대를 하면서 엄마를 여동생같이 돌봐주는데 마마보이가 될 수가 없다.  그냥  친구같은 엄마일 뿐이다.

* 인도에 파견 근무가서 배우고 온 요가자세, 큰아들은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고 있다.

 

영화'푸른소금'을 보는데  모자가 온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모두 젊은 커플들이었다. 물론 큰아들도 서울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 부산에 살 때부터 집에 내려오면 역에서 바로 극장으로 와서  엄마를 만나고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영화를  본 후  큰아들은  본가 어른들에게 저녁식사 대접을 했다.  할아버지,할머니, 큰엄마,큰아빠,큰고모, 막내 고모할머니,막내 고모할아버지, 우리 부부 ,큰아들모두 10명이 함께 식당에서 돼지갈비를 먹었다.

 

그 날 큰아들은 밤 10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갔다. 나는 아들들이 집에 내려온다고 하면 마음이 셀렌다. 그냥 그렇게 심장이 반응을 하곤 한다. 두 아들은 내 인생의 제일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