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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배용준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모과 2011. 8. 19. 06:30

나는 그동안 왜 배용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을까?

한류의 시초이며 일본의 중년여성들의  사춘기 때의 꿈을 추억하게 한 '겨울연가'의 배용준에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었다.

 

1. 겨울연가의 준상은  너무 상류층이어서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2002년 겨울연가의  본방을 안본 건 나의 당시의 생활과 관계가 있었다. IMF 로 인한 사업실패로  먹고 살기 힘든 우리집 사정 때문이었다. 피아니스트인 엄마에  과학고 출신의 잘 생긴 이사님으로 출연한 노랑머리의 멋진 배용준과 최지우의 사랑 놀이를 보고 있기엔 나의 생활이 너무 고달펐다.  

 

더구나 드라마에서 준상이 엄마(송옥숙)은 나와 같은 나이였다. 나는 52년 생이지만 생일이 빨라서 51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드라마 속의 준상(배용준)은 마치 아들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큰아들은 그때 연평도에서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송승헌과 권상우,이정진의 드라마나 영화를 다본 것은  아들보다 두 살이 많거나 같은 나이여서였다. 내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영화나 드라마를  다 찾아 보았다.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 속에서 아들의 모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향기'를 6번이나 본 것은 주인공 민우(송승헌)의  여리고 착한 마음에 동화되서 마치 내 아들이 겪는 일 같아서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물론 전라도 보성,담양의 아름다운 풍경은  나를 수년 후에 결국 찾아 가게 했다. 광주의 조선대학교에 출장을 갔을때 내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송광사와 해남 땅끝마을을 가면서 잠시 들렸었다.

 

 

배용준은 큰 아들보다 6살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겨울연가'는 그,당시에는 미혼이었던  윤석호 피디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그린 것이다. 모든 화면이 다 예술 작품이다. 아 ! 나는 2006년에 '겨울연가'를 다시보기로 다 보았다. 정말 드라마니까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배용준과 최지우는 참 잘 어울렸고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2. 6,70년대식  사랑법인 '겨울연가'

 

'겨울연가'식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우리 시대나 가능한 사랑법이다. 그래서 일본의 내 나이의 중년여성들이 준상과 유진의 사랑에 열렬히 환호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68년도에는   버스에서 남학생이  가방만 들어 주어도 얼굴이 붉어지던 때였다. 나 역시 수학 단과반을 다녔을 때  며칠을 계속 공부도 안하고 쳐다보던 남학생이  어느날  강의가 끝나고 집에 까지 따라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던 수줍은 여학생이었고  그남학생은 준상이 같은 까만 교복을 입었었다.  내 기억으로로는 준상이 못지 않게 이목구비가 잘생겼던 그남학생이 '겨울연가'를 보면서 수없이 떠올랐다.

 

 그남학생이  버스를  같이 타고 따라오는 것에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뛰던 기억도 함께 났다. 다음날 부터 나는 무서워서 (?) 학원에 가지 않았다.  그게 내 기억의 끝이다.

 

 그 시대는 연애를 하면 무조건 결혼을 했던  시대이므로 아무나 하고 사귈 수가 없었다.  나는 고2였고  보통 여고생이어서  연애 자체에 두려움이 더 앞섰던 것이다.

 

 

강미희(송옥숙)  여사의 아들인 준상이는 우리들이 여고에 다닐 때  남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사실  드라마의 배경인 1992년에는 그까만 일본식 교복이 사라지고   서양식 교복이 유행이었다.  드라마는 일본 여성뿐만 아니라 내 또래  우리 나라 아주머니들의 첫사랑을 추억하게 해주었다.

 

나 역시 '겨울연가'의 준상이 같이 멋진 남학생하고 연애를 했다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중년여성들은 아마도 배용준을 통해서 자기의 첫사랑을 추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배용준을 상징적인 존재로 좋아하는 것이다.

 

3. 춘천을 자유롭게 찾아오는 일본의 경제적인 여유가 부러웠다.

 

2007년  3월 춘천으로 출장을 가면서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여자 화장실의 거울마다 '배용준'의 미소짓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배용준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의 인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춘천의 강원대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책을 팔며 2주간을 보냈다. 온몸이 동태같이 뻣뻣하게 얼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 서있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20,000명의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캠퍼스에서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파는 자체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그때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쉬는 일요일에  춘천의 명동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더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명동의 시장 한가운데  배용준과 최지우의  '겨울연가'장면 사진이 죽 전시 돼 있었다.

 

남이섬으로 ,춘천의 준상이집으로  일본관광객들이 몰려든다는 기사는 봤지만  내가 직접 춘천에 가서 느끼니  배용준이 다시 보였다. '겨울연가'는 그렇게 배용준에게 부와 명예와 함께 어깨에  숙명을 얹어 준 것같다.

 

 마음만 먹으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일본 여성들이 부럽기도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중년 여성들이라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같은 생각을 잠시했다.  

 

4.  스캔들,프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영화광인 나는 가능하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있다. 그 배우가 좋아 지면 예전 영화까지 다 찾아서 샅샅이 보는 독특한 영화 관람 습관이 있다.

 

배용준의 '스캔들'은 '정사'의  이재용감독이 만든다고 해서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좋아 하는 전도연이 공동주연이라고 하지 않는가?

 

 

배용준은  바람둥이 조원역을 아주 잘했다.  화면은 아름다웠고 한복은  더 고왔다.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신인 남우상을 받은 배용준은 "스캔들이 어떻게 없느냐?"에 대한 답변을 아주 기가막히게 짧은 말로 했다. 수줍게 웃으며......

 

"프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배용준이 책을 많이 읽은 똑똑한 사람같아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언론 기사를 보니 역시 그는 다독을 하고 있었다.  배용준에게서 나오는 지적인 분위기는 바로 많은 양의 독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 추석에 개봉한 외출은 센스가 없어서 흥행에 실패했다.

 

추석의 영화관은  코미디  영화가 대박을 터트린다. 온 가족이 다같이 볼 수 있는  가볍고 즐거운 영화가 흥행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배용준의 두 번째 불륜 영화'외출'을 추석에 극장에  걸었다. 나는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감독의 작품이라서 기대를 하고 영화관에서 봤다.  완전 실망이었다.  조금 화도 났다.

나중에 배용준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자기도 그 상황에서  바람을 피는 인수를 이해못했다고 말해서 조금 다행이었다.  일본 시장을 겨냥한 작품이고 일본에서는 '사월의 눈'으로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한다.

바람을 피러 가다 교통사고로 남자는  바로 죽었고  인수(배용준)의 아내는  혼수상태인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자(류승수)의 아내(손예진)와 잠자리가 될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나는 영화관을  나오며 짜증이 몰려 온 기억이 있다.

 

6. 배용준을 탐구하게 된 이유

 

 나는 올 봄에 방송아카데미 드라마 작가반에 다니게 됐다.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19살 부터 가지고 살았던 어미의 꿈을 이뤄주려고 두 아들이 등록을 해주어서 대전에서 서울까지 매주 다녔다. 의욕만 가지고 입학을 하고 열심히 다녔으나 곧  소설과 드라마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두꺼운 벽이 가로막히는 것을 느끼게 됐다.

 

집에만 있던 사람이 매주 기차를 타고  서울을 오가다 건강에 무리까지 오게 됐다.  곰곰히 생각하다 나는 휴학을 했다. 복잡한 마음 속과  건강을 정리해야 했다.

 

 작가의 눈이 되서 드라마를 보고  내 마음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첫 번째 배우로 배용준을 정했다.

우선 한류의 원조인 '겨울연가'를 다시 봤다. 내눈에 배용준은  예쁜 얼굴이었으나 남자다운 모습이 여러곳에 나왔다.  늘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다. 형액형도 O 형이다. 강북과 강동구에서 성장했다.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입시에  실패를 하고 영화사 스탭으로 시작했다.  노력형이고 독서를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사람 배용준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겨울연가'20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44부, '호텔리어' 20부 를 며칠 밤을 새고 봤더니 체중이 3kg이 빠졌다.  

여행 다큐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8부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책으로 읽었다.  그 책에서 배용준의 고독과 겸손과  애국심을 발견했다. 태왕사신기를 촬영하다 부상을 당한 것도 그때 알게 됐다. 배용준은  만나는 사람에게 무척 조심스러웠고 겸손하게 대했다.

 

아! 사람이 저렇게 긴장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그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여행이 아니고  국가적인 차원의 여행기를 쓰는 작업이었다.

 

나는 배용준 펜카페 두 곳의 정회원이 됐다. 카페의 그의 모습방에는 늘 화사하게 미소짓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펜카페에서 그는 신적인 존재같았다.   나는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배용준을 무조건 좋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족이란 생경한 단어가 낯설었다. 배용준은 가족이 된 나를 알기나 할까? 나 역시 배용준이 가족같이 느껴지지는 않고 있다.  그냥 펜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배용준이 눈을 감았다 뜨면서 미소를 지으면 마치 광양만 매실농원의 매화꽃이 일시에 만개 하는듯한 화사함이 있다. 그러나  펜카페에서 그가 광고사진을 찍는 과정을 보니  완전 중노동이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늘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야 하는 사람 , 그가 배용준이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용준은 누구 앞에 있을 때  가장 편할까? 부모님을 떠나서 산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웃고 싶지 않았을 때도 웃어야 했다는 기사도 읽은 것 같다.  

 

우리 집 두 아들은 집에 오면 사각 팬티 바람으로 편하게 돌아 다닌다.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 오면 깊은 잠을 잘 수있다고 말한다.  집은 그런 곳이다. 우리는 모이면 오랜 시간 수다를 떤다. 가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들도 대학교에 다니면서 부터  집을 떠나 살았으나 수시로 우리는  전화로 수다를 떤다. 배용준도 그럴까?

 

일본 교과서에 배용준과 소녀시대가 실렸다고 한다. 두 나라가 배용준으로 인해서 사이가 더 가까이 좁아졌다고 소개 됐다고 한다.  젊은 아빠가 되는게 소망인  소박한 꿈을 가졌던 청년 배용준이 이제 40의 중년이 됐다.

 

그가  대한민국에 해준 공로만큼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의 소망대로 후배를 양성하는 학교를 세웠으면 좋겠다.  현실도피 같이 느껴지는...... 하고 싶다는 농사는 성북동집  정원 한 귀퉁이에 채소를 심는 것으로 만족하길 바란다. 인터뷰마다 잃은 것은 자유이고 얻은 것은 고독이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진정한 챔피온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배용준이 그 고독을 깨고 자유로워지길 기원하고 싶다. 배용준만이 자기 안의 틀을 깰 수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