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폐경 이후에 필수적으로 해야할 것들

모과 2011. 7. 30. 06:12

요즈음 나의 몸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듯하다.  온몸이  성한 데가 별로 없고  골병이든 것 같다.

그동안 사는데 급해서 , 어디가  특별히 아프지도 않아서 나 자신의 건강 문제에 소홀하고 살았다.  나는  내년이면 덤으로 살기 시작한다는 환갑이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이가 60인데 , 그동안  나를  위해서 한게 거의 없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우선 내 몸을   건강 검진을 해 보기로 했다.  몸의 여기 저기에서 보수공사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52세 폐경 이후에 몸의 변화를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날   이빨사이와 사이가 벌어진 것을 발견했다.    치과 의사에서 들어보니 잇몸이 내려앉아서 그런 것이 었다.  잇몸의 치료를 진작 했어야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너무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서 ...... .

 

막내까지 취업을 하고  서울의 형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 나는  내 자신을 자주 돌아보게 됐다.  40대까지는 길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것을  자주 느꼈고 나 자신도 외모나 차림에 늘 신경을 쓰고 살았었다.   그러나   한동안 나 자신을 잊고 살아 왔다.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고혈압 약을  먹은지가 10년이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성피로로 갑상선이  다시 부어 올랐다. 6개월 전에 초음파 검사와 조직검사를 했을 때는 이상은 없었다.

 

 1. 우선 몸부터 리모델링 하고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족과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햇다.  노년을  아프면서 보내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 고생이면 내 인생의 고통의 할당량은 다 채웠다고 믿고 싶다.

 

 1). 이빨의 보수공사를 시작하다.

 

하루에 세 번을 열심히 이를 닦아서 충치 하나 없던 이빨이었다.  어느새 잇몸이 파여서 18개를 떼우는 치료를 했다.  잇몸 치료도 함께 했다.  어금니 중에서 세월이 오래돼서 삭은이 6개를 씌우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치과에 가면  한 시간 이상을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게 된다.  기관지가 약한 나는 치료가 끝나면 온몸에 한기를 느끼곤 한다.  병원에 다닐 때 의사의 말은 잘 듣는게 나의 철칙이므로  규칙적으로 다니고 있다.

 

2). 감상선 암,초음파 검사

 1월에  조사했던 갑상선 초음파와 조직검사에는 이상이 없으나  6개월 후에 다시 오라고 했었다.  6개월이 되기 전에 목의 한 가운데가   조금 부어 올랐다.  병원을 다시 찾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진을 하는 의사선생님은 상당히 친절하고 밝은 분이었다.   그분은 나의  목에서  주사기 한 가득 물을 빼냈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결과를 보고 조직검사를 결정하자고 했다.

 

 

다행히  갑상선의 혹들은  1월에 조사 했던 것보다 더 자라지는 않았다. '갑상선 저하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제   나는 매일 갑상선 약을  먹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 왼쪽다리 정형외과  물리 치료

 

 나는 4월부터  서울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못 느꼈으나  한 두 달이 지나자  방송아카데미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면  왼쪽 다리가  심하게 아팠다. 마치 내 다리를 누가 반대 편에서 쎄게 잡아 당기는 듯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여의사는 나의 몸을 여기저기 눌러 보더니 양쪽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박였다고  주사를 5대 이상 양쪽 엉덩이에 놔 주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지난 2년 간 블로그에 글을  쓰느라고 매일 15시간 이상씩 좋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어서  생긴 병이었다.

 

 

나는  치과를 거쳐서 정형외과에 가서  매일 물리 치료를  한 시간씩 받고 있다.   이더운 여름 날에 몸에 한기를 느껴서 수건을 덮고 치료를 받고 있다. 허리와  왼쪽 다리에는  뜨거운 찜질을 받고 있다. 다리는  일주일정도 치료를 받으니 아프지가 않다,.  그러나 나는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다.

 

몇 년 안에 며느리들을 볼 텐데  아픈 몸으로 인해서 그 아가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가 않다.  몸을 건강하게 해서  나에게 손자,손녀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면 기꺼이 그리 해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 한다.  하물며 내 아들의 자식들이면 오죽하겠는가?

 

2. 여자의 폐경 이후의  제2의 인생 , 절친이 필요해

 

얼마 전에 막내 아들이 내게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 아빠는 무슨 재미로 살아?"

"왜 그렇게 물어?  엄마는 60인 지금이 제일 좋아.  아빠도 그렇다고 했어. 아빠하고 사이좋게 잘 살지 매일 밤 퇴근한 아빠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

"아빠가  엄마에게 정치,경제,사회, 국사, 교육에 대해서 말하는 거"

'응 . 아빠가 밖에서는 거의 말을 안하니까 집에 오면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해주어서 좋아. 엄마는  경청을 하지. 누가 보면 내가 말하는 거를 좋아 하니까 내가  더 많이 말하는 줄 알겠지만 "

"엄마! 아빠하고는 사이가 좋은 거지?"

"응  . 이젠 전혀 싸우지 않아.  나는 아빠가  엄마 곁에 있어서 참 좋아"

 

아들들이 중,고등학교 때 다른 부모들은 사교육을 시키고 있을 때 우리 부부는 열심히 싸웠다. 정말 심각하면 아이들 모르게 싸을 수가 없다.  공원에 가서 조용히 토론을  할 정도라면 나는 그냥  봐주는 스타일이다.   그 상처가 남아서 막내가 그리 물어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남편이 내게 사랑을 얼마나 해주나를 가지고  척도를 삼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살면서 자연의 섭리의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여자들은 대부분 폐경 후에는  성적 욕구가 전혀 없게 되는 것같다.  

나는  자다가 문득 깨어 보면  곁에서  편하게 코를 골고 자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하루종일 고단하게 일해서 달게 자는  그 얼굴을 다정하게 손으로 쓰다듬어 주곤 한다.  남편에게 확실한 자기 편이 나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가끔은 자는 얼굴에 뽀뽀도 해준다. 

남편도 자다가 문득 깨어서 나를 살펴보고 손을 잡아 주고 다시 잔다.  나의 등을 두두려 주고 자기도 한다.

 

살림도 잘못하고 요리 솜씨도 별로 없는 아내, 평생을 살면서 큰 수술을 여러번 해서 그때마다 남편을  수술실 밖에서 울게 한 아내가 바로 나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평생을 변함없이  조용하고 자상하게 나를 돌봐준 남편이 고맙다.  비록 몸매는 투박해졌지만 마음은  한없이 싹싹한 아내가 되고 싶다.  남편이 병든 아내 때문에 힘든 노년을 보내지 않도록  내 몸을 잘 관리해야겠다.  서로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의 샘을 길어 올리는  노년의 사랑이 나는 정말 좋다.  남편을  최고의 절친으로 만드는데  34년이 걸렸다.  남편과 나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이 나는 정말 행복하다.

 

** 그동안 몸이 아파서 병원을 다니느라고 글을 못썼습니다.  컴퓨터까지 고장이 나서 또 며칠을 글을 못썼습니다.   이제 제대로 방문하고  댓글도 쓰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많이 좋아 졌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