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자녀는 부모의 삶을 보며 정체성이 완성된다.

모과 2010. 10. 28. 14:38

미국에 이민가서 30년만에 부부가 함께 온 시동생 부부의  자녀 교육이야기이다. 5박6일 함께 여행을 다니며 미국생활과 자녀교육,직장생활에  대해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시동생은 남편 바로 아래  동생으로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 함께 수덕초등학교를 다녔다

 

 

. 동서와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시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공군에서 제대한 후 바로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동서네 친정 형제 자매는 모두 이민을 갔고 부모님만 대전에서 고아원을 하고 있었다.

 

 

 

1. 성실하고 진실된  생활로 인정받는 부모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시동생은 유타주의  Salt Lake city 근교에 살고 있다. 그 동네에 동양인은 시동생 가족밖에 없다고 한다.30분 거리에  동서의 큰오빠(의사) 와 올케(감리교 목사로 은퇴) 가 살고 있어서 그곳에 정착하게 됐다.

 

이민 초기에는 무척 고생을 했다. 신기료, 슈퍼들을 하다가 동서가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공장에  계약직으로 취업 했다. 시동생은  보험회사에 근무 했다.  

 

아이들(2남1녀)은  동서의 친정 어머니가  다 키워주셨다. 동서가 너무 성실하게 일하니  회사의 관계자가 물었다.

"한국에 있을 때 대학에서 전공과목이 무엇입니까?"

"화학과를 나왔습니다"

" 당신이 나온 대학에서 당신을 보증서 줄 교수가 누구입니까?:

동서의 직장 상사는 한남대학 교수에게 전화로 인터뷰하고  대전의 한남 대학의 졸업장을  인정해주었다.  57세인 동서는 현재 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의 구내 식당의 밥을 사먹은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고 있다.

 

 * 시어버님 미수연에 참석하려고  귀국한 시동생 부부와 부모님의 모습

 

2.  자녀를 위해서 새벽 3시에 출근을 하던 동서

 

동서의 회사는 3교대로 근무하는 회사이다. 자녀교육을 위해서 새벽3시에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오후 1시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시동생은 아침밥을 준비해서 자녀들에게 먹이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출근을 했다.

 

세 아이 모두 영재 초등학교를 다녔다. 유타주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 중에서 담임의 추천으로 영재초등학교 3학년에  입학하는 원서를 낸다고 했다. 영재 학교는 3학년부터 있다.  특히 둘째 진용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 불러서 갔더니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고 했다. 진용이는 한 학년 월반을 했다.

 

 

* 23년전 세자녀를 데리고 혼자 귀국했을 때의  서방님 (맨앞에  앉아 있는 사람) ,무릎에는 둘째 진용,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여자 어린이는 딸 선영, 그 옆이 큰아들 건용 ,우리  큰아들(빨간티), 시동생 오른쪽이 우리 막내 아들의 어릴 때 모습이다. 

 

 3.  영재 초등학교 진학의 비결은 끓임없는  독서 지도

 

1) 일주일에 한번  자녀를 도서관에 데리고 가야한다.

 

동서는 세 아이를 데리고 30분 거리의 도서관에 가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보게 해주었다.자기도 보고 싶은 책을 보고 왔다. 부부가 책을 좋아 하는 것도 같은 점이다. 집으로 돌아 올 때는 각자 5권을 책을 대여해 왔다.  책을 다 읽으면 또 도서관에 가고 ..사교육은 전혀 없었다.

 

 둘째 진용이가 2학년때 담임이 진용이에게 학급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 주라고 시켰을 정도였다.

 

2) 일 주일에 한 번 부모가 학교에 가서 봉사를 해야한다.

 

영재 학교에서는  부모가 일 주일에 한번   학교에 가서 봉사를 해야한다.   봉사의 방법으로는  방과후 지도로 직접 가르치거나  동서같은 경우는   평소에 본 시험지를 받아다 채점을 해서 담임에게 주는 일을 했다.

 

3) 자녀의  악기 교육은 부모도 함께 해야 한다.

 

 일 주일에 한번  학교에 가서 자녀와 똑같은 악기를 배우고 집에 와서 함께 연습하게 했다. 큰 아들 건용이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동서는  한국에서 바이올린을 배워서 함께 배우지는 않았다. 집에서 연습할 때 돌봐주기만 했다.둘째 진용이는 첼로를 배웠는데  서방님이 첼로를 함께 배웠다. 선영이는 피아노를 배웠다.

 

* 미국 시동생 가족, 아래줄 왼쪽이 딸선영(유타 대학원재학), 시동생 동서 며느리,뒷줄 왼쪽 진용, 건용 동서 무릎에 건영이의 딸 소연이다.

 

4) 실천하는 효도를 보여주는 시동생부부

 

다른 글에도 몇 번  썼지만 미국에서 생활이 안정되자 시동생 부부는 부모님을 2년에 한 번 씩 미국으로 초대해서  2달씩 모셨다. 큰 아들  건용이의  워싱턴 대학 졸업식.진용이의 M I T 대학 졸업식, 그외에 한 번 더 ,모두 세 번을 다녀오셨다. 미국의 유명한 관광지는모두  관광시켜 드렸다. 우리 큰아들,큰집 큰아들, 둘째 아주버님의 큰 아들이 모두 시동생 집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 미수연 다음날이 어머니의 생신이여서 생신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동생 부부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시동생이 8살때 오신 새어머니시다.

 

5) 매주 토요일이면 부모님에게  국제 전화를 하는 시동생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시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세 자녀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고 하고 있다.    어쩌다 일이 있어서 몇 번 전화를 못했고 매주 전화가 온다. 손녀 소연이의 사진을  남편의 메일로 보내주어서  시아버님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 자기도 시골집에서 일을 해보겠다며 연상홍 나무의 크기를 다듬고 있는 시동생(58세)

 

6. 세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시동생 부부

 

한국인은 전혀 없는 동네에 살면서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게 했다. 자녀가 모두 대학에 진학하면 한국어를 부전공하게 시켰다.

큰아들이  휴가 때 미국을 방문했을 때  LA에 살고 있는 건용이는  생전 두 번 째 보는 사촌형을 위해서 파티를 열어 주었다.   부부가 일부러 휴가를 내서 2박 3일간 함께 지냈다. 여행에서 돌아온 큰 아들이  늘 자기에게 배려를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 시골집 주방에서 설걷이를하고 있는 미국동서 , 시집에서 나만 빼고 다 요리 솜씨가 좋다.

 

** 시골집에  마구 헝클어져있던 신발을 단정하게 정리해 논 미국동서,나는 바로 놓으면 또 헝클어질텐데 생각하고 안했던 점을 반성했다

7) 자녀의 생활교육을 철저하게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못하게 철저히 교육을 시켰다. 한국교회에 가보면 마구돌아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의 어린이라고 했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 중  중요한 한부분이다.

 

얼마 전에  둘째 진용이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나온 시카고 대학의 의학전문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시동생 부부는 자기들의 자녀를 칭찬하는 것도 좋아 하지 않았다.  공부 못하는 아이의 부모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오늘 시동생부부가 21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갑니다. 남편과 큰아주버님 내외가 같이 인천공항에 갔습니다.동서는  결혼식 이후에 처음 만났고  시동생은  세번 째 만났습니다. 5박6일의 가족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됐습니다. 다음에는 미국으로 단체 여행을 오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교육 코너  베스트로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고민하며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