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일상

처가집에서 사돈에게 제일 섭섭할 때

모과 2010. 8. 27. 13:08

남편 바로 아래  남동생인 시동생은 미국으로 이민간지 33년이나 됐다.

동서와 시동생은 대전의  사립대학의  합창단 멤버로  캠퍼스 커플이었다. 시동생은 테너 파트장이었고 동서는 엘토 파트장이었다. 합창단을 하며 자연스레 서로의 인성과  가정환경을 알게 됐다.

동서는 화학을 시동생은 물리학을 전공했다.

 

동서 친정 식구들은  동서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시동생은 대학을 졸업을 하고 공군장교로 입대를 했다.  사병은 국제 결혼을 (시민권을 얻은 배우자는 미국시민이니까) 하면 제대가 바로 되지만  장교는 제대를 할 때까지 복무를해야 한다.

군제대를  할 때까지  김해에서 군복무를 하는 시동생 과 동서는 구포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동서집에 다녀온 시어머니는 혀를 내두르며 동서가 지독하게 알뜰하다고 칭찬을 했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고아원을  했던  장로님이 친정아버지였다. 자녀들을 고아원생들과 똑같이 가르쳐서 동서의 알뜰한 절약 정신은 친정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다.

오징어 한 마리로 반은 국을 끓이고 반은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상을 봐 왔다고 했다.

 

1. 이민 초기에 고생을 많이한  시동생가족은  자녀 교육을  제일 중요시 했다.

 

신던 구두를 고치는 신기료부터 시작해서 슈퍼등을 하다 이제는 회사에 다니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서가 새벽 3시에 집을 나가서 오후에 퇴근을 하는 공장에 들어갔다.

시동생은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동서가 근무하던 공장은  인공 심장을 만드는 공장인데 너무 성실하니 메니저가 불러서 한국에서는   전공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화학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정직원으로 채용해 주었다. 56세인 동서는 지금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시동생(58세)은 보험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 어제 보내온 시동생 가족사진, 오른쪽 끝이 며느리 ,아가는 백일이 지난 큰조카(뒷줄 오른쪽끝) 의 딸 소연이,2남1녀의 자녀가 잘 자랐다. 동서의 머리는 집에서 서방님이 잘라주어서 단발이다.

 ** 큰아들은 워싱톤 대학교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L.A살고 있는데 경영컨설턴트를 하고 있다. 조카 며느리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서 결혼한 교포 2세이며 무남독녀이다. 역시 경영 컨설턴트일을 하고 있다.

차남은  이번 학기에  시카고에 있는  의학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집에서 자동차로 꼬박 2일을 가야 한다고 시동생에게  전화가 왔었다. 막내인 고명딸은 유타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대학에 다시 입학을 했다.   

 

2. 며느리 중에 최고라는 말을 듣는  미국에 사는   넷째 동서

 

 시동생 부부는 생활이 안정되자 2년에 한 번씩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2달 씩 모셨다.

 부모님들은 조카들의 입학식, 졸업식을 다 참석하셨다. 미국의 유명 관광지는  대부분 관광하셨다.

친정 식구들이 모두 이민을 와서 동서는 외롭지 않은데  남편에게 미안해서인지 동서는 시집 일에 늘 잘했다. 큰집의 종손,둘째 집의 장남인 조카들이 모두 다녀왔다. 

셋째인 우리집  큰 아들도 대학재학 중에  방학 때 가서 한 달 반 있다가 왔고, 작년  휴가때 10박 11일을 갔다 왔다.

 

 * 미국 작은 엄마,아빠와 함께 간 그랜드캐년에서  큰아들 : 아이를 공항에서 바로 차에 태워서 국립공원을 다 데리고 다니며 관광시켰다. 동서는 요리도 빠르게 잘 한다.

 * 큰아들과 함께 관광 중인 시동생 부부는 아이들 대학 입학식마다 입학금의 1/2을 보내주었다. 대학 재학 중에 미국에 한 달 반 머물동안 매일 대화를 했고 돌아 올때 왕복 비행기 값의 2/3를 들려 보냈다.우리는그때 경제적으로 참 어려울 때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도그렇게 하기  어려운 일이다.

*LA에 있는 큰조카의 집이다. 우리집 큰아들과  6개월 차이인데  미국에서 태어나서 서로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아! 조카들이 9.7,5살때 한국에  와서 그 때 한 번 봤을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미국에 갔을 때 조카는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 주었다.

 

3. 시아버님 말씀에 큰 섭섭함을 나타낸   시동생의 사돈 어른

 

큰조카 결혼식에 시부모님이 참석을 했다. 사돈의 따님인 조카 며느리는  무남독녀이다.

 사돈 어른들은 이민을 가서 딸 교육에 올인하고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낙이었다. 그런 사둔 양반들에게  아버님이 말씀을 한 말은 ...

 

"  사브리나 (미국명) 까지 합하면   할아버지 후손인 우리 가족은  165명입니다"

 

" 아 ! 사돈 어르신 섭섭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브리나 자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살았는데 사브리나를 빼았기면 우리는 무슨 낙으로 살아갑니까?  우리 둘도 한 가족으로 생각해 주십시요"

 

* 큰 조카 며느리의 친정가족들이다. 아가 소연이의 모습이 너무 불편해 보인다. 

** 우리는모두 한가족. 단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지금 시동생은 유타주에 살고 있고 큰 조카는  L A에 살고 있다. 처가집 근처에 살고 있다. 사브리나의 아버지 말대로 사돈간은 서로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서로 자식들을 가족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양성평등이고 인간평등이라고 생각한다.

 

** 흔히 보는 일 중에 딸들이 친정에 잘하는 것은 자랑하면서 며느리들도 어느 가정의 딸임을 잊고 오직 며느리 일에만 충실하기를 바라는 것을  종종 봅니다.

딸들이 친정에 하는2/3만 시집에 해도 행복해지는 가정이 많을 겁니다.

얼마나 딸 교육을 잘못시켰으면 친정에만 잘하는 사람으로 가르쳤을까요?.

자랑만 하지말고 이 시점에서 모두 함께 생각을 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돈도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  비난보다는 장점이 보일 겁니다.

 

 

** 일상다반사 [해외생활] 코너 베스트로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성실하게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