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일상

쓸쓸하고 슬펐던 잿빛 색깔의 하루

모과 2010. 7. 14. 18:06

 남편과 어머니를 모시고 충남대학교 부속 노인  병원에 갔다.

지난 주에  중구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했다. 30문제 중에서 20문제를 맞춘 어머니. 기억력이 없어져서 평소에  같은 소리를  10번 이상 되풀이 한다. 소소한 물건을  자꾸 누가 훔쳐 갔다고 하고 커피도 장농에 두고 4~5개씩 부엌에 내 놓으신다. 당신의 나이도 모르고 볼펜의 이름을 잊어 버렸다.

 

 중구  보건소 측에서 충남대학교 병원에 예약을 해주어서  남편과 시아버님, 큰 시누이 형님과 함께 갔다.

큰동서 형님이 병원에는 늘 모시고 갔었는데   친정 큰오빠가 돌아 가셔서 예산에 갔다.  그분은 노환으로 79세에  돌아가셨다.

 

 

 

 

 

시누이형님은 요양사로 나가는 집의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아서 휴가를 받아서 내려왔다.돌보던 돌보던 할머니는  작은 딸내 집으로 일주일간 모셔가서 대전에 내려 왔다.  그 할머니는 아주 중증 치매로 자녀들 얼굴도 못 알아 보신다. 똥을 눠서 손으로 만지고 장판 밑에 숨겨 두기도 한다고 했다.  남편인 할아버지가  오전중에 노인대학에 가실때 4시간을 돌봐 드린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당신이 돌보며 살고 있다.

 

"노인 요양원'에  가 계신 노인들은 대부분 배우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눈에는 버림받은 슬픔을 가득 담고 처량한 모습으로 있다고 들었다.언제가 끝인지 모르는  기약 없는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 가신 것이다.

 

시누이 형님이  '노인요양사" 자격증을 딴 것은 친정부모님과 시어머니가 모두 연세가 많아서  자격증을 따면 도움이 될 것같아서 공부를 했다. 시누이 형님도 63세 노인이다.  형님  집에도 시어머니께서 치매 중증이어서  형님의 시누이가 돌보고 있다.

 

어머니께서 목욕을 하기 싫어 해서 안산에 사는 시누이 형님이 2주에 한번 내려와서 목욕을 시키고  미용실에도 같이 간다. 내가 목욕권을 열장 사서 2번 모시고 목욕을 갔었으나  광주로 출장을 가게 된 후 부터 내 스스로 몸이 많이 아파서 계속하지 못했다. 시집에 갈 때마다  더운물에 수건을 빨아서 얼굴과 손,발을 닦으시게 해드렸을 뿐이다. 그후 아버님이 목욕권을 10장씩 사서 서랍에 넣어 두고 계신다.

김치는 매주 시골집에 모여서 함께 담그고  내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간다. 큰형님과 아주버님은 수시로 다니신다. 막내 시누이는 매주 주말에 간다.  

 

 아버님은 일주일에  3번씩  새벽에 목욕을 가시고 매일 밤 8시부터 9시까지 집근처 하상 도로를 걷고 있다. 88세까지 건강을 지키는 이유는  전화번호는 모두 암기하고 계시고 아직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마다 "노인전문 병원"이 생기도 "노인 요양센타'가 생겼다.  노인요양사들의 교육기관도 많이 생겨 났다. 그만큼 집집마다  치매 노인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신분 증명을 하고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치매예방"을 위한 검사를 받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키를 재는데 139cm라고 해서 놀랐다. 156cm의 키가 골다공증으로 17cm나 줄어 든 것이다.  40년 가까이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손과 발목이 다 틀어졌다. 엉덩이에 금이 가서 인공 뼈를 넣은 수술, 오른 쪽 무릎에 인공 관절 수술, 평생을 병마와 싸운 분이다.

 "인지 기능 검사실'에 어머니 혼자 20분 정도 검사를 받았다. 보호자는 따라 들어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보호자가 모두 따라 들어 가서 다시 한번 더 검사를 문진으로 받았다.  젊은 여의사는 예뻤고 다정했다.  검사 결과 "정밀검사" 가 필요 하다고 말했다. 보건소에서 연락을 보내면 뇌촬영과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의 시어머니도 오랜 치매 끝에 이제는 자녀의 얼굴도 못알아 보고 상태가 심해서 "노인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 .경기도인데  3인 1실로 입원비가 한달에 120만원이라고 했다.

 병원에 가시기 전에는 그동안은 친구가 맏며느리라서 함께 살았다.아들,사위가 서울대의대, 연대의대를 나온 개업의사이고 며느리와 딸이 서울대 간호학과,연대 간호학과를 나왔는데  한달에 한번도 문병을 안가고 있다. 입원비는 시어머니께서 본래  노후 대책을 잘해 놓으셔서 자식들이 경제적인 부담은 지지 않고 있다.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 가서 목욕도 시키고  끓여간 일주일분 죽을 냉장고에 넣어 드리고 온다.

 

병원에서  시집으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 왔다.

 

저녁에 남편과 함께 예산의  큰동서 형님의  오빠가 계신 병원의 영안실로 갔다.

20년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20년을 고향에서 살다 죽음을 맞이 했다. 모두 맞벌이인 자식들이 그래도 모시려고 여러번 했으나 단호히 거절을 하고  고향인 예산에 혼자 사시다가 노환으로 돌아 가셨다.

노환으로 돌아 가셔서인지  자식들이고 형제들이고 우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 노년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 친정아버지도 그랬다.  자식에게 한만 남겨 두고 가셨는줄  알았는데 내게 따뜻함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때문이다..

 

요즘은 아들이고 딸이고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노인들 스스로 건강도  관리하고 외로움도 극복하고 살아야 한다. 치매가 아니면 암이고 아니면 노환이 노인들에게 다가 오고 있다.

 

**우리 어머니도 친구의 어머니도 모두 고학력입니다.  지방의 명문 여고를 졸업했거나 사범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노년의 십여년을 혼자 집에서 있다가 치매가 찾아 온 것입니다.  노인대학을 다니고 단체 관광을 다니는 시고모님들이 아직도 정정하고  초등학교 급식장에서 일주일에 세번씩 일하고 용돈을 벌고 계시는 것과 많이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미래도 그렇지 않을 것을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어제 하루는 참 고단하고 쓸쓸하며 슬픈 하루였습니다.

 

이글을 쓰는이유는 제 글을 읽고 우리 가족들을  아주 모범적이고 행복한 줄만 아시는데 ,제가 글로 안쓰는 그리고 글속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갈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00% 행복한 가족들은 없고 각가의 갈등의 요소가 어쩌면 살아 가야 할 이유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