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덕산 시골집

꽃 대궐 차린 충청도 깡촌의 시골집

모과 2010. 5. 17. 20:41

  주말에만 들어가는  시골집이 충청도 깡촌에 있다.

7대 째 내려오는 시댁의 본래 본가이다. 대전에도 시댁이 있지만 본래 본가에서 아버님과 남편의 형제들이 태어났다. 엣날에는 첩첩산중이었지만 지금은 발달된 도로로 대전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을 한다.

 

 작년에 아버님이 시골집 돌담 아래에 영산홍 2,000그루를 심어 놓으셨고 올해  돌담도 새로 쌓으셨다.

영산홍은 5월  첫 주 (8일)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였다고 한다. 친정 식구들과 지난 주말을 시골집에서 보낸 큰동서 형님과  같이 들어간 시누이 형님이 그렇게 말했다.

 

시골집을 고치는데 든 돈은 모두 아버님이 부담하셨다. 아직 회사를 운영하고 계셔서 가능하신 일이지만 88세의 고령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 켠이 애잔해 진다.

 

지난 토요일이 증조할머니의 제사라서 시골에 못갔다. 남편과 나는 일요일 오후 시골집에 들어 갔다.

아버님은 월요일에 출근을 해서  함께 못 가셨다.사진을 잘 찍어서 보여드리기로 약속을 했다.

 

 

 * 연녹색 잎파리를 아름답게 보이고 있는 시골집 입구의 좁은 길

 * 보리밭 사이 길을 정말 오랫만에 걸어 봤다. 남편을  차로 먼저 보내고 나는 수덕 초등학교 입구부터 걸어서 시골집까지 갔다. 사진을 찍으며 ...^^

 ** 작은 도랑물 곁에 노란 야생화가 한들한들 거리며 연두색 잎새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 모내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갈아 놓은 논의 모습, 누군가의 수고한 손길이 느껴졌다.

 ** 시골집이 보이는 보리밭 길을 걸으며  코로 청정공기가  마음 속까지 가득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 큰아주버님과 큰시누이 형님이 심어 논 강낭 콩 밭,콩잎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남편이 나를 집 뒤의 언덕에 데리고 가서 시골집 모습을 보라고 했다, 마을 앞의 소나무 방품림은 왼쪽으로 기역자 같은 모양으로 둘러쌓여 있다. 어디를 바라봐도 산이 보이는 완전 깡촌이다.

 ** 대문 앞 작은 화단에 피어있는 영산홍 , 산 속이라서 꽃들이 더디 피고 진다.

 

 ** 15평 강당 (사당) 앞에 피어 있는 영상홍의 모습, 아기 자기 예쁘다.

 ** 돌담 밑에 피어있는 영상홍 꽃무리, 장독대가 운치를 더해 준다.

 

 

 

 

 ** 하루 밤 자고 태양이 밝을 때 찍은 영상홍의 밝은 모습들,어제 5시가 다 되서 도착해서 사진들이 좀 그늘이 있었다.

 ** 집 뒤의 야산이 정겹게 느껴진다. 산과 방풍림이 지켜주어서 겨울에도 바람이 거칠지 않아서 좋다.

 ** 시골의 밭은 보리로  가득하다. 집 담 옆의 보리밭, 머리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주는 연녹색의 씩씩함을 보여주는 보리 줄기들의 모습이 경쾌하다.

** 이집에서 태어난 내 사랑이며 웬수인 박씨 아저씨가 런닝셔츠 바람으로 물을 주고 있다. 

** 집 안에서 내다 본 먼 산의 모습, 중간의 방품림도 가깝다. 

 

 ** 아침 10시의 시골집 풍경, 사랑채 아래의 영산홍은 반은 지고 있었다.

 

 

 ** 광주 조선대에서 사온 장미를 옮겨 심고 열심히 물을 주는 박씨 아저씨

 ** 시골집은 어데 서서 봐도 산이 보이는 특징이 있다.

 

 ** 비만 오면 질척거리던 대문 밖의 마당에 작은 돌 30여만원 어치를 깔았다.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 집 앞에 나와서 바라본 동네 입구의 모습, 멀리 신작로까지 다 보인다.

 

  시할아버지는 독자이셨다. 2남 5녀를 주셨는데 그 후손이 모두 163명이다.

아버님은 시골집을 멋지게 고치시며 163명 모두의 집이라고 하셨다.

누구라도 미리 말만 하면 집을 사용할 수 있다.

 

올해 88세인신 아버님은 당신의 생신을 시골집으로 이사를 가서 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이 깊어서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지 34년이 된 시동생 가족도 모두 같이 오기로 했다.

시동생이나, 동서, 아니면 시동생과 아이들이 어릴때 함께 온 적이 있다. 온 가족이 다오기는 처음이다.

 

시동생은 2년에 한번 씩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셔서 두 달 씩 모시며 미국의 여러 곳을 관광 시켜드렸다.

동서의  친정 식구들은  모두 이민을 갔다. 유타주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데 동양인은 시동생 가족밖에 없다고 했다. 시동생가족은  미국에서 좀 외로운 편이다.

 

가을 쯤 날짜를 정해서  시댁의 식구들이 모두 시골집에 모여서 아버님의 생신파티를 해드리기로 했다.5년전 부터 형제들이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서 적금을 들어 두었다.

이날을 위한 준비였다. 아버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대가족의 한 사람인게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