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덕산 시골집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동적인 남편의 한마디

모과 2011. 8. 3. 06:00

 

 

 우리는 남편이 28세 내가 27세인  1978년 2월에 중매결혼을 했다.  시대가 보수적인 때이고 ,여대를 다녀서 나는 연애도 못해봤다.  밝고 활발한 나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연애결혼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나를 한 번 보고 적극적으로 대시해 왔다.  남편은  만난지  3번 째 되던 날 청혼을 했고 우리는 3달 후에 결혼을 했다.

 

1.  신혼초,하루에 세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 준 남편

 

이제 생각해 보면 남편도 자기에게 최면을 거느라고 그랬지 싶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은  마음먹고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목소리 좋은 남편이 귀에다 "사랑해'"  말해주면 정말 행복했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남편의 목소리부터 듣고 반했고 ,그의 공손하고  나를  배려하는 태도에 감동해서 청혼에 응했다.

 

결혼 후 두 아들을 낳았고  13년 동안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이는 한 살 많았지만  호적상으로는  동갑으로  돼있고   나와 학교를 같은 해에  다 다녔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이 같다. 남편은 아버지같이 때론 오빠같이 늘 나를 보호하고 사랑해주었다.

 

 

2.  사랑한다는 말을 전혀 안하고 산 40대

 

 40대는 서로 미워하느라고  사랑한다는 말을 안했다. 사이가 좋았다가 나빴다를 반복했다. . 내가 크게 아파서 수술을 했다가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남편은 하는 일마다  안됐고 나는 상점에 갇혀서 하루종일 있어야 했다.

 

나의 40대를  한 단어로 고난이라고 말하고 싶다. 육체적,경제적, 정신적으로 힘이들어서 나는  피폐해졌다. 늘 상냥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 나는  조금씩 거칠어져갔다.  생활은 없고 생존이 문제인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때 각자의 고민과 우울증과  갈등을 이해 못했다. 서로 미워했다. 내가 더 오래 길게 남편을 신뢰못하고 미워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남편은 끓임없이 내게 화해를 요청했고 묵묵히 자기 일을 찾아서 가족을 위해서 일했다.  단지 일방적인 나의 화풀이가 오래 지속된 것이다. 조용히 곁에서 나의 화풀이를 다 받아 준 남편이 정말 고맙다.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을  체험한 기간이 우리들의 40대였다.  

 

지난 금요일  시골집에 남편과 둘이 들어갔다.   남편의 지인들이 집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열쇠를 받으러 가는 길에 동행한 것이다. 나는 갑자기 따라 나선 길이라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갔다. 덕산에서   삼결살 한 근과 덕산 막걸리  두 병과  충청도 소주  린을 2병 사서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 내가 부엌에서 상을 차릴 준비를 하는동안 담배 한 대를 피며 고기를 굽는남편의 모습

 

밤 8시에  시골집에 가보니 라면도 한 개 없었다.  나는  컴컴한  밤에 텃밭에서  고추를 몇 개를 따고 상추도 띁었다.  집에 있는  마늘도 두 통을 까서  마당의 평상에 대충 상을 차렸다.

 

남편에게  두 손으로 막걸리를  따라주고 나도  한 잔 받았다.

 

"사랑해주세요!" 하고  한 잔 따라주었고

"사랑해줄게요!"하고 한 잔 받았다. 

 

물론 두손으로 공손히 받았고 둘이 건배를 하고 마신다. 우리는 잔이 빌 때마다  잔을 채워주고 건배를 하며 마셨다.  평상시 나는 엄청 상냥한 아내라고 생각한다. 하하  남편에게 알랑 방구도 잘 뀌는 기술도 있다.

 

밤 공기는 달았고  남편과 주고받은  대화는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다.   서로의 목소리에는  신뢰와 믿음이 섞여있었다.

 

3. 남편의 뜻밖의 말 한마디 

 

" 여보!  낮에 나하고 콩국수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왜 친구하고 갔어?"

" 아! OOO가  갑자기 찾아와서  그 친구하고 갔지"

'그러면 친구한테  아내하고 점심약속이 있다고 말해야지 내가 먼저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그러냐?  당신같으면 친구에게 그럴 수가 있냐?'

"응 . 나 같으면  당신하고 약속이 있다고 말해. 여자들은 그래. 당신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잖어"

"........ "

남편이 일어서서 마당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당신은 친구가 더 중요하지 ? 친구가 아내보다 좋아?"

'친구는 친구일 뿐이고 아내는 ............"

 

편의 목소리는 본래 작은데 마당으로  내려가니 잘 안들렸다. 담배를 피려고 내 곁을 피해서 가는 것이다.

" 친구는 친구이고 아내는 뭐라구?"

"아내는 내가 섬기는 사람이라구"

 

순간 기가 막혔다.   가슴 한 켠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남편의 행동이 다 이해가 되기도 했다. 

 평상시  뭐든지 "당신 마음대로 해!  나는 당신이 좋으면 좋아! " 그러고 살고 있다.

 

나는 신혼초에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했다. 남편이 거리감을 느낀다고   둘이 있을 때는 반말을 하기를 원했다. 나는  남편의 소원대로 해주었다.

 

 남편은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싫은 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참 고맙고 소중한 남편이다. 나 또한 남편이 불편해 할 말은 안하고 산다. 서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게 무엇인지 터득한 것이다. 그냥 자기하고 싶은대로 놔두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 시골집 황토방에 누워서 본 천정, 막내아들과 남편이 바른 황토방이다.

 

4. 자고 있는 아내가 깰까 봐  운전을 조심하는 남편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남편의 퇴근이 밤 11시가 넘기 때문에  그렇다.  남편은 퇴근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나와 한 시간 가량 대화를 하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남편은  들깨 모종을 옮겨 심었다고 했다. 어느새  텃밭의 풀도 다 뽑았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누룽지를 끓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풋고추와 김치로 상을 봤다.  간단히 먹고  덕산에 가서 '밴댕이찌게'를 먹고 가자고 했다. 남편은 누룽지탕을  아주 좋아한다.

 

 남편이 풀을 뽑은 텃밭에서 고추를 따서 먹었다. 앞에는 상추 몇 포기가 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산의 '추사고택'을 둘러봤다.  나는 어느새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남편소리가 들렸다.

"여보! 공주 휴게소에서 쉰다"

"응 . 나는 차 안에서 그냥 잘래.당신은 커피 한잔 마시고 와."

 

 남편이 차문을 닫는 기척만 느꼈다. 꿈도 안꾸고 달게 얼마를 잤을까?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집에 다왔다. 이제 깨야지"

" 어! 내가 당신이 휴게소에서 쉬고 떠나도 모르고 잔 거야?'

"응 ! 내가 당신 깰까 봐  운전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했는지 알아?  속도도 최고로 낮추고 운전을 했어"

 

**남편은 환갑이고 저는 60입니다. 우리 부부가 사는 방법입니다.  서로에게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기에 우리는 자기 몸보다  상대방을 더 위합니다. 아들들도 다 집을 떠나서 살고 있습니다. 노후에 남편과 다정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평화는  우리부부가 40대를 잘 견딘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에야  우리 부부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제 블로그에 10대미만  네티즌이 136명이나 방문했습니다.  10대미만 어린이들은 댓글 쓰기에 예의를 지키세요.오래 전부터 10대미만  어린이들이 방문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린이들은 IP 다 나오니까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