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사감 수녀님과 김치 찌개

모과 2009. 2. 14. 14:07

큰 아들은 졸업을 할 때까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다.

신입생이 50% 입주하므로 각 학년의 남학생들은 30명 정도만 입주 할 수 있었다.

성적, 통학 거리, 가정 형편을 보고 입주생을 선발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었다.

 

아들이 다닌 학교는 예수회, 가톨릭 제단의 대학교여서 기숙사의 규칙이 무척 엄격했다. 밤 11시까지는 기숙사에 돌아 와야 한다.기숙사 학사장, 부학사장은 신부인 교수님이, 사감 선생님은 수녀인 교수님이었다.

 

아들이 2학년 때 교양 과목으로 [종교와 사회]를 들었는데 사감 수녀님의 강의였다..

수업 과제로 [내가 본 나]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제출했었다.

이 때 아들의 글을  인상적으로 기억한 수녀님은 늘 따뜻한 미소로 사랑으로 아들을 대해 주었다.

교수님이라도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봉급의 대부분을  예수회에 기부하시고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녀님은 우연히 기숙사 매점에서 만나면 [과일 통조림]을 사 주신 적도 있다

  "OO에게는 꼭 사주고 싶다" 하시며.....

우리 집 가정 형편은 그 때 무척 어려웠는데 아들은 특차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고 ,8학기중에 7학기를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워서 아들의 대학생활은 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험 기간중에  내가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서울역에 마중을 나온 아들의 모습은 초최하고 초라하고 배고파 보였다.

시험 때에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옷도 아무거니 걸치고 시험을 보러 가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못하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방학 때 집에 내려 오면 아들은 사감 수녀님이 엄마와 목소리도 성격도 많이 닮았다고 하면서 웃었다.

내 목소리는 보통 사람 보다 한 톤이 높고 명랑한 편이고 혈액형도 O형이여서 명랑하고 밝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들이 4학년 1학기 때 고3 학생 과외를  3개월 한 적이 있었다.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장학금을 타는게 모든 면에 좋다는 판단으로 하지 않았었다.

그 기간중에는 내가 돈을 적게 송금을 하니 좀 편했다.

 

 그 때 쯤인가 아들 아이가 사감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서 신촌의 유명한 설렁탕을 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 이 이야기는 나중에 아들에게 들은 내용이다.)

수 중에 15,000원이 있었다.설렁탕 값은 당시에 6,000원이었다.

나는 월요일마다 100,000원을 송금해 주었었다.

 

사감 수녀님은 기숙사의 남자 후배도 함께 가자고 하셨다.

그 학생도 어려운 것이 우리 집과 비슷한 것 같으나 서로 사생활은 묻지 않고 지낸 사이였다. 남 후배는 아들을 잘 따르는 밝은 학생이었다.

아들의 고민이 시작 됐다.

* 설렁탕을 사드리자니 돈이 모자라고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하며 걷는데 어느 음식점에 [특선요리 김치찌게 4,5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 엄마! 특선 요리니까 맛이 있는 거 잖아요. 그래서 그리 모시고 갔어요"

사감 교수님, 큰 아들, 과 후배 학생, 셋이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면서 [다음에는 설렁탕을 사드려야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큰 아들은  여름 방학 때 대기업 인턴을 하고, 가을에 최종 면접을 앞두었을 때였다.

영문,경영을 전공 했으나 어학연수를 다녀 오지 않아서 회화에 약했다.

시험 전날 전화를 했더니 잔뜩 쫄아서 기가 죽어 있었다.

" 엄마! 나는 너무 내세울 게 없어요. 꼭 됐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도 많이 아프며 걱정이 되어서 고심한 끝에 사감 수녀님에게 전화를 했다.

조교가 누군지 묻고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 여보세요" 하니 수녀님은

"누구지?"  학생인지 알고 계셨다.

  나는 전화 목소리가 어리게 들려서 종종 오해를 받고 있다.

" 안녕하세요? 저는 OO이 엄마입니다."

" 아!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학생 같아서 호호호"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 교수님!우리  OO이를 사랑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OO이가 내일 최종 면접인데 지금 기가 많이 죽어 있어요. 자기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구요. OO이를 위해서 기도 좀 부탁드립니다"

" 너무 겸손해서 그래요. 최종까지 간 학생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침착하게 보면 될텐데..."

" 지금 교수님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 OO이는 제가 교수님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날 밤 교수님은 아들아이를 불러서 국화차를 타 주시며 위로를 해주셨다.

" 최종 까지 간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최종 면접은 인성면접을 주로 보니까 너는 잘 볼거다. 특별히 OO이 에게 국화차를 주는 거다 . 내가 좋아 하는 사람에만 주는 거야.

국화차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 질거야. 내일 시험 잘 볼 거야"

 

아들은 최종으로 수석 합격을 했다.

문,이과 합해서 쟁쟁한 아이들을 제끼고.....인턴을 하는 동안 상사들에게 인성을 좋게 보여서인 것 같고 ,아들이 4년간을 성실하고 독하게 공부를 한 노력과 사감 수녀님의격려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졸업식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 명동 성당에 큰 일이 있어서 졸업식에 참석을 못하셨다.

부학사장이신 신부님께만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연수를 마치고 아들이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기숙사에 전화를 하니 사감을 그만 두셨고 ,안식년이라서 로마로 떠나셨다는 소식만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