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토요일에도 남편은 아버님을 모시고 덕산 시골집으로 갔다. 지난 주에 심은 상추 치커리 호박 고추 케일의 싹이 났는지 궁금해서이다. 남편의 마음은 당장 고향집 옆에 우리의 작은 집을 짓고 가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 농사가 안정적일 때까지의 경제력이 문제다.
시골에 넉넉한 밭과 집을 지을 땅도 있는데도 가서 정착 할 동안의 경제력과 여유자금이 없어서이다. 퇴직한 공무원 같으면 그런 걱정이 없겠으나 남편의 대도시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서점운영으로는 빚을 지지 않고 우리 부부가 그냥저냥 살아 갈 정도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도시생활을 해야 남편의 소원인 고향으로 가서 살게 될 것이다. 그때면 우리는 70대가 되는데 참 딱한 일이다. 감사한 것은 시골집이 우리 집에서 한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남편은 거의 매주 덕산 외라2리에 주말농장을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다니고 있다.
2. 농촌문화에 적응 못할 아내가 걱정이다.
나는 서울에서 성장했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부산에서 근 30년을 살다가 남편의 제2의 고향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계속 대도시에만 살았다. 농촌 생활은 전혀 모르고 자기 표현이 솔직하고 활발한 성격이다. 이런 내가 20가구가 안되는 시골에 가서 주민들과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
남편은 그집에서 태어났고 마을입구의 수덕초등학교 5,6학년과 예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녀서 친구들도 많다.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다 알고 홍성이나 예산 덕산 갈산 서산 지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는 오랜 투병생활을 했던 적이 있어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 주일에 한 두번 꼭 필요한 외출만 하고 늘 집에 있는 편이다. 도시에 사나 시골에 사나 집에 있는 것은 같으니까 남편을 따라서 시골집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기관지가 약한 나를 위해서라도 공기좋은 시골집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모두 상대방을 위해서 시골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정착할 농촌을 선정하는 문제가 제일 고심하겠으나 우리는 할아버지께서 논과 밭, 큰 시골집까지 공동으로 물려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0년 동안 시골집을 고치는 데 약 1억원가량 들었다는데 모두 아버님이 건축비와 경비를 내셨다. 나는 아들들에게 본가의 좋은 어른들을 갖은 것은 큰 축복이라고 말해주곤 한다.
남편이 매주 고향집에만 다녀오면 행복해 하니 나도 좋다. 땅을 파고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며 검게 그을은 얼굴로 덕산 막걸리로 모두 건배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어쩌면 남편은 행복을 만들러 매주 고향집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남편에게 점점 전염이 돼서 고향집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남편의 귀농 준비 기간은 안전하고 행복한 귀농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덕산 시골동네에 서서히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해서 당분간 도시 생활을 해야하는 여건이 좋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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