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 어버이날' 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미국 시동생집으로 두 달의 여행을 떠나셔서 쓸쓸한 하루를 보내게 됐다.
미국으로 이민간 시동생의 손녀딸의 돌이라서 부모님과 시누이형님이 함께 여행을 갔다.형제들이 모아서 해준 반지 몇개와 팔지, 목거리 세트를 가지고 몸이 많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시누이형님이 보살피면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버님 미수연 떄 부모님 모습
1. 재미교포가 된지 30년이 된 시동생
시동생이 5살 때 생모가 병환으로 돌아 가셨다. 3 살위의 형인 남편을 따라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시골학교라서 동생을 데리고 와서 옆자리에 앉혀 둘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동생과 남편 바로 위의 누나는 서로를 생각하는 정이 각별하다.
시동생 이 8살때 새어머니가 오셨다. 그리고 50년이 지났다. 위로 형들은 결혼하거나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미국이민 간 시동생은 대전의 대학을 다니며 어머니와 가장 오래 살았다.
*아버님 미수연때 시동생부부와 부모님
캠퍼스 커플이었던 동서 네 친정 식구가 모두 이민을 갔다. 공군장교였던 시동생은 제대 후에 배우자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갔다.
시동생은 이민 초기에는 무척 고생을 했으나 2남 1녀를 잘 교육시킨 성공한 한인이 됐다.
2. 생활이 안정이 되자 2년에 한번 씩 부모님을 초청하는 시동생부부
미수연에 부부가 함께 입국하기 전에는 시동생이 두 번 혼자 귀국했고 한 번은 세 아이들을 데리고 귀국을 했었다. 동서는 한 번 친정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귀국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동서는 새벽에 출근을 하고 오후에 퇴근을 했다. 시동생은 출근할 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동서가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고단한 생활을 했다.
*미수연이 끝나고 가족 여행 중인 부모님과 시고모,동서,미국시동생, 큰시누이형님
**뒷줄부터 시고모부님, 나, 큰아주버님, 큰동서,막내고모님, 미국동서, 아버님, 큰시누이형님, 남편.앞줄은 왼쪽이 미국시동생, 팔에 붕대를 한 어머니 ,모두 11명 대가족들이 5박6일 여행을 했다.
시동생은 큰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물론 가실 때마다 왕복 비행기표는 모두 시동생이 사서 보냈다.
교육자였던 아버님에게 미국대학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2달간 모시며 미국의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등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관광시켜 드렸다.
2년 간격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 대학원을 졸업할 때마다 미국여행을 가신 부모님들은 이제 증손녀 돌 잔치에 참석하러 가셨다. LA에 살고 있는 손자 집에서 돌 잔치를 하고 관광을 하면서 시동생집이 있는 유타주로 돌아갔다.
*여행지에서 주로 미국시동생이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나라에서 무료로 휠체어를 빌려주었다.
3. 큰 화합 속에 작은 갈등은 속으로 삭혀 버리는 시집 식구들
남편은 생모에 대한 기억이 많지가 않다 늘 아프고 무서웠던 엄마가 가끔 영화의 몇 장면처럼 기억이 날 뿐이라고 했다. 새어머니도 40년 이상을 아프셨다. 남에 대한 배려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척 오래 점점 더 아프시다.
나는 우리 시집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우리 시집식구들도 작은 갈등들은 수 없이 일어 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할 뿐 모두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
* 휠체어를 밀고 있는 큰 시누이 형님은 10살에 생모가 돌아 가시고 집안에서 크게 희생을 하신 분이다. 이번에 미국여행도 어머니의 간병을 하며 동생집도 보러 가셨다. 위로 오빠 둘,아래로 남동생 둘 ,새어머니가 오셔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를 낳으셨다.
큰 시누이형님이 동생들을 낳은 새어머니 산후 바라지도 했다. 그런 시누이 형님의 효도는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는 시누이형님에게 고난이 오면 참고 견디면 지나간다는 것을 배웠다.
여행지에서 남편, 미국시동생, 시누이형님이 번갈아 가며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었다. 며느리들은 당연히 남편들이 하겠지 하고 할 생각을 안 했다. 휠체어를 빌릴 때는 내가 늘 빌렸다. 주민등록증을 맡겨야 빌릴 수가 있는데 미국 시동생부부 다음으로 내가 제일 나이가 적어서 그렇게 했다.
4. 가족의 다른 이름은 이해와 배려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집에도 모임에 참석만 하고 가급적이면 빨리 돌아 가려는 사람도 있다. 친정식구를 우선으로 치는 며느리도 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가족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누구의 마음의 크기가 어느 모양인지 비슷하게들 느끼고 있다.
5남 2녀의 자녀 중에 넷째 시동생만 미국에 있고 3남 1녀는 대전에 살고 있고 시누이 형님도 가까운 안산에 살고 있다. 부모님에게 모두 순종하려고 한다.
각자 생각과 계산이 있는 것이 보일 때가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표현을 하지 않고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협력을 하며 살고 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똑 같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넷째 시동생부부가 제일 잘 한다고 부모님은 종종 말하지만 큰동서 형님이 40년이 넘게 곁에서 한 효도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미국 시동생 부부가 잘하는 것은 모든 친척들이 칭송하고 있다. 아들이 착하면 부모님이 자주 미국으로 관광을 가신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이글을 쓴다.
**친정에만 잘하는 며느리나 그런 딸을 가진 부모는 따님교육에 실패 입니다. 딸 자랑 하기 전에 사돈에게 미안함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양가 부모님에게 똑같이 잘 합시다. 미국에서 여행 사진이 아직 안 와서 작년 미수연 여행 때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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