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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스님이 머물던 수덕사의 환희대와 만공탑

모과 2011. 2. 9. 06:00

 시동생부부기 아버님의 미수연에 참석 하기위해서 함께 왔다. 그동안 각자 몇 번의 귀국이 있었으나  같이 귀국한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수연이 끝나고 시집 식구들과 5박6일의  단체 여행과  대전 근교로   몇 번  당일 여행을 다녔다.

 

1. 남편 형제들이 내 집 같이 뛰놀던 수덕사  근처 의 들과 산

 

시동생은 5살, 남편은 8살일 때   마을 어귀의 수덕초등학교에 다녔다. 시어머니가 병환으로 오래 아프시다 돌아 가셔서  남편과 시동생,10살인 시누이는 덕산 시골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큰아주버님과 둘째 아주버님은  교직에 계신 아버님과 함께 대부분 함께 살았다.

 

작은 아버님이 수덕초등학교 교사로 부임을 와서 시골 집에 사촌형제들과 함께 살았다. 남편은 사촌형제들과 들과 산으로 뛰어 다니며 놀던 유년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시동생을 학교에 갈 때도 데리고 가서 옆에 앉히고 함께 공부를 하던 사이라 시동생과는 형제애가 각별하다. 

 

 미수연을 마치고 시동생은 수덕사 부터 가고 싶다고 했다. 유년의 추억을 찾아 가고 싶은 것이었다.

 

2 시할머니의 기도가  깃들어 있는  환희대

 

덕산 시골집에서  수덕사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시할머니는 시증조할머니를모시고 살았다.  매달 초 하루나 보름 전 날,초파일  전날에는 밤길을 걸어서 쌀과 나무등을 이고 절에 오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절의 사정이 어려워서  여승들의 생활도 힘들었다고 했다. 수덕사에는  시할머니가 기증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일엽스님의 뒤를 이어  비구니들의  절인  환희대 주지가 된 월송 스님은 할머니를 고마운 분으로 기억했다.

스님이 늘 밤 늦은 시간에 와서 불공을 드리고 가는 시할머니께 여쭤봤다고 했다.[시고모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보살님은  왜 밤 늦게만  절에 오십니까?"

" 제가 낮에는 일을 해야 하고  노모를 모시고 있어서 점심진지를 차려 드려야 해서 낮에는 오기가 힘이 듭니다"

 

 시할머니께서 91세 까지 생존하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자애로운 모습으로 기억이 난다.

 

 

 

 김일엽(金一葉) 스님이  기거하였던 환희대(歡喜臺)는 수덕사 여승들이 수행하는 절이다.  목사의 딸이었던 일엽스님은  어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일엽스님은 이화여전을 나온 신여성 문인이었다. 

 

일엽스님과 친구인  여류화가 나혜석도  수덕사 입구의 수덕여관에 묵으며 여승이되려고 했다. 나혜석은 만공스님이 허락을 안해서 여승이 못되고 파란만장한 삶을  노숙자로 마감했다는 글을  나는 읽은 적이 있다.

 

 

환희대는  새로 개보수를 했는데 그때 시할아버님도 건축기금을 냈다. 나는 그전의 환희대가 더 좋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운데 박자 상자 윤자 (朴商崙) 되시는 분이 시할아버님이시다.

                        * 비구니의 참선도량인 견성암(見性庵)도 새로 증축했다.

 

2.  시조부모님의 장례식을 모두  월송스님의 지휘로 불교식으로 거행했다.

 

 환희대 월송스님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학승이시다.

 

둘째 아주버님의 결혼을  중매한  시집과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외라리 박교장댁의 둘째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수덕사에도 알려졌다.  수덕사의 신도인 둘째 동서의 어머니와의 인연으로 월송 스님이 직접 시골집까지 오셔서 중매를 말씀했다고 한다. 둘째동서는 수덕사의 독실한 불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수덕사 여스님 세 분이 대전 본가 근처의 여관에 머물며  밤을 새고  불경을 낭독(?) 했다. (* 제가 불자가 아니라서 용어를 잘 모릅니다. 지적해주시면 고치겠습니다.) 49제도 모두 월송스님이 진행했다.

 

* 미국 동서의 모습

 

* 미국동서, 큰 동서형님 ,큰시누이 형님이 탑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 있다.

 

만공탑은 수덕사 대웅전에서 약 한 시간을 올라가야 있다.

 수덕사를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대웅전 근처만 구경을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만공탑으로 올라 가는 길에 있는 부처님 상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불자의 모습이 보인다. 

 

 

3.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집필지인 수덕사

 

. 작가 최인호씨가  집을 나와서 수덕사에 3개월 간 머물며 경허스님의 일대기 '길 없는 길 (전4권)'을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천주교 신자인 최인호가 절에 머물며 스님의 일대기를 쓴 것은 상당히  독특한 일이다.

덕숭산 높은 곳에 있는 만공탑은 남편과 시동생,큰시누이형님이 어렸을 때 자주 놀러 갔던 곳이다

 

경허스님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 수월, 만공 선사가 있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만공탑 뒷모습

 

4. 국보 제 49호인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이다.  수덕각시라는 관음 화신이 중생 제도를 위해 창건했다는 전설을 지닌 고찰이다.  백제 15대 침류왕 2년에 (358년)에 창건된 오래 된 사찰이다.대웅전은  국보제 49호이다.[다음위키 백과에서 발췌]

수덕사는 한국불교의 5대 총림( 송광사, 해인사,통도사,백양사,수덕사)중에 한 사찰이다.

 

 

시집의 덕산 본가는 수덕사에서  차로 7분이 걸린다.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 초등학교는 남편의 모교이다. 우리 시골 마을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많은 양이 수덕사에서 사가고 있다. 마을 사람의 고모가 수덕사 여승이 된 분도 있다.

 

남편의 형제들의 수덕사에 대한 추억은 특별하다.  91세 까지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 가신 시할머니와 99세 까지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 가신 시할아버지의 위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등산을 좋아 하시는 분들은 수덕사를 관광 할 때 만공탑까지 올라 가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참고:총림 (불교)  [叢林]

 

특히 선종의 사원을 가리키므로 선림(禪林) 또는 선원(禪苑)이라고도 한다. 많은 수행승들이 한곳에 머무는 것을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루는 모양에 비유했다. 또는 승려들이 화합하여 한곳에 머무는 것이 수목처럼 고요하다고 비유하며, 일반적으로 선승(禪僧)이 좌선을 수행하는 도장을 가리킨다.[다음 백과사전]

 

** 시골집 주변에 유명한 생가와  관광지가 많습니다. 고향을 알리는데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