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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의 중심지였던 홍성의 한 용운 생가

모과 2010. 9. 1. 13:03

대전일보 창간특집( 8월 27일자) 에  "충청의 원류" 의하면 충남을 4대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금강문화권, 백제문화권, 내포문화권, 기호유교 문화권이다.

 

시집의 본가 덕산군 외라리는   지리적으로 홍성(옛 홍주) 에서 가까운 예산에 있다. 시골집에서는 홍성, 덕산, 해미, 갈산까지 사방 20리 거리라고 한다. 예전에는 시골길들이 작은 지름길들이라서  그렇게들 생각했으나 지금은 좀 다르다. 대부분 15분 정도 시간이 걸리고 갈산이 제일 가깝다.

 

 **덕산면 외라2리에 123년된 시골집, 시할아버지,시아버지, 남편이 이집에서 태어났다. 지난주 벌초 하러 들어갔으나  비가 너무 많이 왔다.  천둥 번개가 많이 치는데도 큰아주버님과, 남편,종손인 큰조카가 기까운  곳에 있는 시할머니 산소를 벌초하고 돌아왔다. 내리는 비를 샤워한다고 생각하고 제초기로 벌초를했다면 모두 웃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때문에    종산에  있는  산소는 벌초를 못했다. 이번 주에 다시 들어가서  지난 주에 못한 산소들을 벌초해야 한다.  충효의 고장인 홍성,예산 사람들다운  효심을 보였다.

옛 선비들이 풍수지리를 중요시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지형이 좋아서 나라에 충성하신 분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다.

 

1. 시골집에 가기 전에 다녀온 한용운 생가. 

 

블로그에  고향을 소개해서   블로그 메인에 걸렸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구독하시는 대전일보를 주시며 홍성군 결성면에 있는 한용운 생가에 들렸다 가자고 하셨다.

 

" 이응노 기념관과 수덕사에서 확인한 부부의 정".. http://blog.daum.net/moga2641/17188177

 

 홍성,예산의 가로수는 유난히 무궁화가 많다. 충효의 고장답고 다른 도시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에 심어논   일본의 국화(國花)인 벚꽃을 축제까지 하며 거창하게 소개하는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벌레가 많은 단점이 있다면 연구해서 고치면 될 것이다.

 

 

 * 멀리 보이는 건물은 한용운 사당이고 가까이에 있는 초가집이 생가이다.

 * 전형적으로 가난한 서민의 집이었던 두 칸 방짜리 초가집이었다. 이집에서 서당에 다니던 한용운 소년이 상상됐다.

 * 작은 마루에는 방명록이 있었다. 주로 초등학생들이 삐뚤빼뿔하게 연필로 쓴 글씨가 많았다.

 * 초라한 부엌의 모습, 내가 결혼한 1978년도의 덕산의  시골집 부엌도 이런 모습이였다.

 * 아궁이 반대편의 모습, 물독과  아궁이에 땔 나무가 보인다.

 *  부엌 옆으로 광에는 장작이 쌓여 있고 밖의 우물위에 두레박이 정겹다. 

 

한용운(韓龍雲):  호: 만해 (萬海):다음 위키 백과 참고

 

1919년 3·1 운동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인 1922~23년 민립대학 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했고, 1927년 신간회 결성에 적극 참여해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했으며, 1931년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김법린·최범술·김상호 등이 조직한 청년법려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으며, 1936년 신채호의 묘비건립과 정약용 서세100년기념회 개최에 참여했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심우장)에서 중풍으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 다음 위키백과에서 참조

 

 2. 한용운  체험관에서   애국의 굳은 의지를 배운다.

 

 

 ** 입구에 서 있는  만해 한용운의 동상

 

체험관 입구에 "홍성을 빛낸 위인들"이 소개 돼 있다. 최영, 성삼문, 한원진,깁복한,  한성준, 한용운, 김좌진, 이응로 ....모두 교과서에서 배운 분들이다.

 

 *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발표 현장 : 작은 강의실에는 벽에 버튼만 누르면 한용운의 일대기가 상영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고  몇 커트 똑딱이에 담았다.

 

 

 

 * 만해 한용운 선생의  친필을  표고해서 여러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한용운 생가로 들어 가는 가로수는 모두 무궁화로 돼 있고  덕산과 예산으로 가는 국도변에는 유난히 무궁화가 많았다.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배우며 님은 조국(祖國) 이라고 배운 기억이 생생하다.

고3 때  고문(古文) 시간에 외운 '독립선언문"도 학급 친구들과 복창하던 기억이 어렴푸시 들려오는 듯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충효(忠孝_)는 무엇일까?  생각을 했다.

살아계신 부모님께  잘하고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고 , ...그게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한용운 생가가 있는 홍성은 내포문화의 중심지로서 부족함이 없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내포 문화(內浦文化): 바닷물이 육지 깊숙히 들어온 지역을 말한다. 지역적으로 충남 서해안 지역의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권를  형성해온 지역을 일컫는다.서해안 교류의 관문이자 불교문화와 천주교등 외래 문물의 창구이자 거점이기도 하다.

 

충남도는 내포문화 개발권 사업을 추진하면서 광의의 공간적 범위를 설정했다.

서산, 홍성,예산, 당진, 태안,보령, 서천  전역과 아산 일부인 415363km를 내포문화권으로 봐야한다는 견해이다.  충남 전역의 48.35 %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대전일보 8월 27일자 6면기사에서 발췌)

 

** 시아버님,남편과 함께 한용운 생가를  돌아보고 오며  앞으로 시골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생가를 다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내집 근처의 문화재를 소개하고나서 전국적으로 관광을 떠나볼 예정입니다.  충효의 고장이 시집의 본가라서 자랑스럽습니다.

 

교직에 있으면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재직시 오전 6시에 학교에 도착하는 일을 퇴직까지 하신 아버님이야말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시할아버님은 평생 농사로  아버님을 훌륭한 교육자로 키우셨습니다. 집안 일은 잊고 학교 일에 충실하도록 간접적인  애국을 하셨습니다.

남편의 형제들도 아버님 덕분에 훌륭한 교직자의 자손이라고 받은 혜택이 많습니다.

 

저도 자식들이 잘돼서 나라에 도움이 되고  부모에게도 잘하는 충효인(忠孝人)으로 살아가길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