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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 안전사고 염려 되는 석굴암 가는길

모과 2010. 10. 29. 06:30

 결혼 33 년만에 시집식구들 11명과 함께 5박6일 가족여행 중에 2일을 경주에 머물렀다. 첫날은 안동하회마을을 관광하고 경주에서 일박했다. 다음날  아침 석굴암으로 갔다.  경로 6명이고 5명중 1명은 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밀어서 무료였다.

 

 

마침 수학여행 철이라서 가는 곳마다  중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선생님의 지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수학여행은 학생들에게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교사들에게는 무사히 돌아 올때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예전에 교사로서 중2남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에 왔던  추억이 있다. 우리 반 남학생이 급성 맹장염에 걸려서 여행지에서 수술을 한 기억이 난다. 처녀교사로서 무척 당황했었다.

 

 

 석굴암으로 올라갈 때 나는 전혀 의식을 못하고 걸어갔다. 오른쪽 끝이 깊은 계곡인데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은 아버님이 말씀하셔서 알게 됐다. 자세히 보니 안전사고가 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아래 비탈에는 가파른 경사가 져있고 숲과 나무가 우거져있었다. 일반 고속도로 에도 양쪽 길가에 안전장치가 돼 있는게 생각이 났다.

 

 왼쪽 건물이 부처님이 계신 석굴암이다. 나는 어머니와 들이서 일행들이 관람하고 나오기를기다렸다.

 

* 석굴암 의 내부

 

국보 제24호.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부속암자이다.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石佛寺)라고 했다. 〈삼국유사〉 권5 대성효이세부모조(大城孝二世父母條)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를,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774년 김대성이 죽자 신라 왕실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석굴암은 김대성 개인이 창건했다기보다는 신라 왕실의 염원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석굴암은 여러 개의 판석과 다듬은 돌로 궁륭천장 석실의 비례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역학적으로 축조한 인공석굴이라는 점에서 인도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다음 위키백과에서 발췌]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주중이라서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돌아 오는길에 자세히 보니 상당히 위험한 상태로 보였다. 석굴암을 관람하고 내려가고 있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다.

 길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의 모습이다. 상당히 가파르고 지난번 폭우로  쓰러지려고 하는 나무도 있었다.

 

 앞에 가시는분이 시아버님, 뒤에 반팔 티를 입은 시누이형님과 막내 고모님의 모습이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가 느껴졌다.

 

 

 지난 번 폭우로 꺽어 넘어져서 죽은 나무도 많이 보였다.

 

 

 출구를 나와서   안내하는 분에게 물었다.

" 석굴암으로 올라 가는 길가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혹시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떡합니까? 공사 계획은 없나요?"

" 곧 할 겁니다. 유네스코의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 우리 나라 보물인데 유네스코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아! 세계유산으로 지정돼선가요?"

"네 "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경주시청에 문의했다.  상담원은 처음에 "도시과'를 바꾸어주었다. 도시과에서는 문화제과로 문화제과에서는 문화제청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경주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관리 한다고 알려주었다.

 

경주는  언제가도 아름다운 도시이다.. 도시전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조경을 한 것도 느껴진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보물이 많은 경주의 석굴암을  근 20년만에  갔다. 아름다움 속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안전사고 예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