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자녀에게 아버지의 고마움을 가르쳐야 하는이유

모과 2011. 1. 10. 06:00

미국에서 30년만에 아버님 미수연에 참석을 하려고  온 동서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 오빠도 미국 유학을 갈 때 딱 1,500불 가지고  가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알고 보니 그때가 우리 아버지가 돈이 많았을 때예요. 저는 우리 아버지에게 서운한게 많아요"

 

미국동서의 아버지는 고아원을 하셨다. 6.25전쟁 고아들을  키우며 당신의 자식들도 똑같이 키워서 동서의 절약정신은 대단하다. 시어머니가  신혼초에 동서의 집에 갔더니  오징어 한 마리를  반은 국을  끓이고 반은 데쳐서  초고추장과 내놓았다고 두고두고 칭찬을 했다.

 

미국 이민을 가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이제는 정착해서 살고 3남매도 잘 키운 성공한 한인이다.  큰오빠가 연세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가서  안정되자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서 동서네 친정식구들은 모두 이민가서 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왜 물려받은 게 없어?  좋은 머리를 물려받아서 동서형제들도 다 머리가 좋고  자네 자식들도 모두 공부를 잘하잖아? 친정 어머니에게는 알뜰함을 물려받아서 절약정신이 습관이 됐고 ,꼭 경제적인 유산만 유산인가?  고아원생들과 똑같이 키워준 것이 훌륭한 것이지.동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어"

 

나는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고아원 원장 딸의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다.  고아원에 들어 오는  수많은 구제품과 물건을 원장 딸이 먼저 다 고른 후에 원생들에게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기 딸은 과외를 시키며 특별 대우를 하는게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경험을 말해주니 동서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

 

* 미수연 날 아침에 시어버님과 시고모부님

 

1. 무능한 친정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

 

나는  고1까지는 친정아버지를  아주 좋아 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고 나의 말을 다 믿어 주었고  술을 드시면 조용히 잤고 나를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늘 잔소리가 심한 어머니가 싫었다

 

그러나 고1때  경기도에 살던 집과 외할머니와  살던 서울집이 합치고 부터 아버지를 아주 싫어 하게 됐다. 아버지는 정이 많고 유머어도 있는 분이시나  생활력이 없고  마작을 좋아해서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분이었다.아버지는 일년정도는 성실하게 일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마작을 하러 사라지곤 했다. 부모님은 아버지가 원인 제공을 해서  늘 싸웠다. 나는 그런 부모가 참 싫었다. 집을 나가고 싶었는데 막상 나가면 갈 곳이 없어서 참고 살았다.

 

결정적으로 나의 대학 등록금을 가지고 마작을 하러 갔을 때는 미움을 넘어서 증오를 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가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어머니가 45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돌아 가시고 그후에 아버지 때문에 한 마음 고생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아버지가 65세에 신장암으로 돌아 가신 후에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로 냉정했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24년이 됐다. 나도 60이 되고 보니 아버지가 한 사람의 남자로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나의 외모가 ,큰 키가 ,따뜻한 마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 아이들을 좋아 하는 것과  수학을 잘하는 머리도 모두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의 장남에 대한 편애로 아버지도 희생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의지력이 약해서 그랬던 것이지 내게만은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돌아 가시기 전 맏딸인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딸년에게 미안하다고만 한 아버지! 그래서 나는 많이  미워한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2. 아들아 ! 아버지에게 감사해라 !

 

우리 집 아들들은  부모의 장점을 많이 닮았다고 들 한다. 나를  닮아서 두 아이가  다 키가 큰 편이다. 남편의 좋은 머리를 닮아서  큰아들은 암기에 능하고 작은아들은  나를 닮아서 수학을 잘 한다.

 

남편의 사업실패가 계속되는  10여년을 내가 생계를 책임진  기간이 있었다. 시집식구들은 나를  늘 칭찬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가족을 도와주려고 한다. 대부분 시고모님들과 시누이들이다. 지금까지 김치와 김장을 다 담궈주셨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칭찬을 하는 것은 좋은데 남편이 무능력해 보여서 걱정이었는데 남편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아이들도 자연스레 엄마를 아빠보다 좋아하게 됐다. 뭐든지 엄마를 우선으로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들들과 남편이 가까워 질수가 있나  고심하게 됐다.

 

 7년 전 남편이 중소기업에 취업을 한 후 변함없이 시부모님과 나와 아이들에게 잘 하고 있다. 시아버님과 시고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끓임없이 잘 해 주었다. 그 한 없고 깊은 사랑이  나와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남편은  2년 전부터 고향으로 아주 이사와서 근무하던 서점 체인점을   형제들과 프렌차이즈로 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 한 후 자녀교육까지 실패 하면 내 인생에는 남는게 없다고 깨닫고 자식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이  노후에 자식들 까지 형편없으면 정말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의 교육 방법대로 아들 둘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게 자랐다. 어디를 가도 궂은 일에 앞장서서 하라고 가르쳤다.

 

** 나의 샐프교육의 실천을 보여주는 큰아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

 

회사에서 보는 시험에 대부분 첫 번 시험에 합격을 하는 큰아들이  어떤  시험은 어려워서 주말이면 모교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했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르친 결과이다.

"  엄마 ! 우리 지점에서 저혼자 합격해서 좋은 표시도 못했어요."

" O용아! 너 아빠에게 고맙다고 전화 드려라 아빠가 좋은 머리를  물려줘서 네가 암기를 잘하잖아.엄마 닮았으면  너 그시험에 합격을 못했다."

" 어!... 아 ! ......."

전화기 너머로  큰아들이 당황했다가 혼자 미소를  짓는게  다 보이는 것 같았다. 

"O 용이 봐라 . 엄마 닮아서 수학은 잘해도 암기를  못해서 교양과목 B 이상이 없잖아."

" 네. 알았어요. 아빠에게 전화 할게요"

 

그것은 사실이다. 남편은 형제 중에서 제일 머리가 좋다고  시아버님이 늘 말씀하셨다. 시할아버지는 나에게 시아버님을 4년제 대학인 경성대학교에 못보내고  연희전문학교에 보내서  미안하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시아버님은  큰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지도를 못해서 네 에비가 잘 풀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단다.네 에비는 머리가 아주 좋다고 하시면서 ...참 고마운 시아버님이시다.

 

아들들이 집에 오면 삽겹살을 구우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남편은 주로 자기의 실패담을 말해주고 있다. 너희들이 잘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면서 ...

나는 그자리에서 빠지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남편에게 친구같은 두 아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서 정말 고맙다.

 

* 교육코너 베스트로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한 일 주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