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일상

내 생애 최고의 추석선물을 받았다.

모과 2010. 9. 11. 13:13

2006년 5월6일 호기심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98% 컴맹이었다.

 12년간 책대여점을 해서 컴퓨터 자판은 익숙하나  그때나 이제나 나는 독수리 타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컴맹에 가까운  내가  2010년 9월 10일 황금펜으로 선정됐다.  학창시절에도 자주 아파서  개근상도  몇 번  못 받았었다. 너무 기쁘니 오히려  마음이 덤덤하고 차분해졌다. 그러나 기쁨은 점점 피어 올라서 마음 속을 꽉 채워주고있다.  블로그 5년차 ,59세인 나는 내 생애 최고의 추석 선물을 받은 것이다.

 

 

 

 ** 학창시절 내내  수학 전교 일등의 총명한 머리였었는데, 에고 아직 캡쳐를 못 익혔다. 저를 위해서 캡쳐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블로거  "티브의 세상구경 "님께 죄송합니다. 아들들이 집에 내려오거나  복지관에 다시 가서 배워야겠습니다.

 ** 5년동안  568개의 글을 썼고 베스트 213개 이니 확륙이 37.5% 이다. 대부분  2009,2010년에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로그에 올인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전체랭킹 28위 채널랭킹 교육1위이다.

 

1. 블로그는 내게 축복의 전주곡으로 왔다.

 

처음에는 글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뭔가 내 생각을 쓰면 누군가 내글을 읽어 주고 댓글도 적어주는게 신기해서 열심히 썼다. 주로 베스트,이슈가 되는 글, 뉴스,연예소식을 주로 봤다.

 

취미도 오래되면 직업을 주었다. 독서,영화를 40년 넘게 계속했다. 그냥  좋아서 꾸준히 했는데  세월이 그렇게 흘렀을 뿐이다.  글의 주제는 주로 일상, 독서평,영화평을 썼다.

 

 남편의 직장은 대형마트안에 입점해 있는  대형서점을  전국에 30개 이상 가진 회사였다. 수도권과 영남권에 대부분있었다. 수도권은 본사에서 관리했고 영남권은 남편이 했다. 본사에서는 2005년부터 봄 ,가을 전국 주요 국,사립대학교에서 " 대학생을 위한 도서 할인전을  2주씩 했다.  정직원만으로는 행사 진행자가 부족했다.

본사 사장님의  권유로 충청,영남, 호남권의 대학은 내가 하게 됐다. 12년간의 책대여점 경력을 인정해 준 것이다.  나는 대학생들과 책과 영화에 대한 수다를 떨면서 놀라운 매출을 냈다.  12년동안 읽은 수많은 베스트셀러., 시사월간지, 신문을 보고 , 두 아들을 먼저 대학을 보내고 졸업시킨  경험은 모두 대학생들과 대화의 소재가 됐다. m-net 방송과 연예 오락프로를 오래동안 본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그 내용을 매일 밤 모텔에서 블로그에 글로 썼다.

 

블로그의 글을 다 읽은 본사 사장님이 새로 생긴 서점에 발령을 내주었다. 블로그로 인해서 받은 놀라운 보너스였다.

 

 

블로그를 만난지 1627일, 방문자 3,054,089( 300만명이 넘었을 때 무척 기뻤다). 성실하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쓰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다.

 

 구독자수 746명, 구독수 389의 차이는 블로그를 만들지 않고 내 글만 읽어주는 분들이 많아서이다. 나는 가능하면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블로그들의 글을 많이 찾아서 읽고 있다. 내 삶의 확장을 위해서이다.

 2005년 11월 다음 블로그가 생기고 지금까지 황금펜(베스트 view 블로거)은 436명이다.  나는 황금펜을 블로거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묵묵히 글을 성실하게 쓰면서 기대도 가끔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노란펜에 대해서 '나도 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보다 훌륭한 글을 많이 쓰고 있는 블로거들 중에 파란펜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2. 나의 인생을 확장시켜주고 열린 사고를 가지게 해 준 블로그

 

2008년 11월 남편의 고향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나는 블로그에 올인하게 됐다. 서점에서  너무 열심히 일해서 발목에 이상이 생겼다. 아킬레스건 염증이 심해서 15개월을 치료를 받았다. 걸을 수가 없고  병원과 목욕탕, 성당의 교리공부가 외출의 전부였다.

 

블로그에 매일 글 하나를 쓰고 남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블로그에 가면 그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글 10개 정도 읽고 오곤했다. 내 블로그의 관리, 스킨, 배경음악, 여기저기 클릭해보며 스스로 습득한 것도 많다.  블로그 카테고리 중에 블로그(지금은 인터넷) 는 매일 자세히 읽었다. 점점  블로그의 비밀을 알아 갔다. 다양한 블로그의 글을 읽으며 시대의 조류 세대간의 사고의 폭을 알아갈 수 있었다.

우연히 지역신문 충청투데이 따블뉴스 기자단이 되고 신문사에서 주체한  블로그 특강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블로그 특강이 내게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해주었다. 그후 베스트가 자주 됐다.

 

블로그 이웃 중에 가까운 친구들도 생겼다. 대부분 나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어린 분들이 많았다. 주로 3,40대 여성들이 내글을 많이 읽어 주었다.  고맙고 책임감도 느끼게 한다.

 8월 한달 동안 내 글을 많이 읽어 준 분들이다. 이창희, 배미경, 사랑이7,주부모델, 아름다운 인생, 들꽃,김정수,굄돌,행여나,걷는말  이분들 중에 이창희님, 사랑이7님, 김정수님은 누구신지 전혀 모르겠다.

 

 

*  8월 한 달 방문자 중에서 10대(3%), 20대(11%),30대(25%),40대(27%),50대(13%),60대(2%),기타(19%)이다 . 여자(49.64%),남자(31.71%) ...여자분 들이 내글을 많이 읽어 주고있다. 역시 인생의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유입경로이다. 요즘들어서 부쩍 "모과향기"로 유입하고 계신분이 많다.  내 블로그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3.   황금펜은 아무에게나 주나?  그렇다.

 

결론 부터 말하면 아무에게나 다 황금펜을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아무에게"에 해당한다.

 

 7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누가 황금펜이 됐을까? 궁금해서 여러 번  살펴보게 했다. 6월말에 두번 째 우수블로그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배려있고 자상한 분이 매주 방명록에 "이번에는 모과님이 황금펜을  타셔야합니다" 써준 후부터는 더 그랬다.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모과 왼쪽에 황금펜촉을 발견하고  바쁘게 전화질을 했다. 남편-시아버님- 큰아들(연수 끝나고 전화가 왔다)-막내 아들- 큰동서 형님, 모두 함께 기뻐 해 줄 사람들이다.  그리고 블로거  한 분에게는 댓글로 한분은 전화로 알려드렸다. 그분은  내 블로그에 여러번 와서 축하,박수 ..마음껏 축하를 해주었다.

하하 전화로 소식을 들은 분이 대화 중에 "황금펜이 뭐여? 그건 아무에게나 주나?. 그렇게 노력을 많이 했으니까 받았겠지"  내 마음이 기뻐서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래서 5년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큰동서 형님은 수 십년 간의 수많은 독서와 영화 감상의 경험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축하 해주었다. 그점이 큰동서 형님의 장점이고 내가 존경하는 이유이다. 내가 8월 말로 전체랭킹 31위로 OO만원을  다음캐쉬로 받게 됐다고 했더니 그랬다.

 

4.   막내아들은 엄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블로그가 내게 준 고마운 것은 아들들에게  늘 친구같은 엄마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이 군대에 다녀 온 후 나는 오히려 아들들에게 배우고 있다.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전화해서 묻고 다른  것들도 많이 배우며 산다. 두 아들 다 엄마를 여동생같이 돌봐주고 있다 참 고마운 아들들이다.

막내 친구들은 내가 책대여점을 하는동안 자주 봐서 다 알고 있다. 막내에게 좋은 엄마를 가진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고 했었다.  부모가 사별을 하거나 이혼한 친구가 생각보다 많아서 일 것이다.

대화를 하며 소통하는엄마라서 특별하다는 것이다.

 

내가 베스트가 되고 , 특종에 선정되고 ,우수블로그가 되고 ,대전시 블로그 기자단이 되고,교과부블로그 기자단이 되는 동안  아들들은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자식에게 집착을 버리고 자기 세계를 가진게 제일  좋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어느기간 동안 올인했다고 희생은 아니다. 책임을 다 했을 뿐이다. 그 아이들이 낳아 달라고 부탁도 안했는데 자기마음대로 낳아놓고 희생이라는 말은 억지라고 생각한다. 제일 치사한 일이 자식을 키우고 공치사 하는일이라고 생각한다.

 

5. 나는 이제 전업 블로거를 꿈꾼다.

 

다음뷰에서는 티스토리에 이어서 다음블로그에도 8월부터 뷰애드를 다는 사람에게   전체 채널 순위 250위 까지 다음캐쉬로 보상을 하고 있다. 나는 현재 28위이다. 본래의 목표는 60위였고 황금펜은 12월까지로 목표했었다.

지금이라도 서점에 나가면 아르바이트 학생대신 일을 할 수 있느나   반 나절만 근무해도 발목이 아프다.

재택근무 10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왕복 출퇴근시간 2시간 포함)  매일 하나의 글을 쓰고 댓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나는 "아무나"인 이름도 없고 나이도 많고 컴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뷰애드이벤트]글에 다음블로그의 자랑이 되고 싶다고 썼었다. 나만의 독특한 영역으로 교육부분의  인터뷰 기사로 승부를 걸겠다. 최대한으로 조사해서 배경지식을 많이 가지고 인터뷰에 응할 것이다.

 

6.  17년간 고락을 같이 한 관음죽도  꽃을 피워 축하해 주었다.

 

블로거들 사이에는교제는 있어도 우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댓글과 사석에서의 반응이 전혀 다른 경우도 허다한 것을 봤다. 

특강에서 들은 내용이다. 대충 읽고 "글 참 잘쓰시네요" 하라고 했다.

솔직한 댓글은 원수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분좋은 댓글만 주고 받는 사이에 우정이 있겠는가?

내가 공식적인 자리 이외의 블로거들의 모임에 참석을 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를 나눈 여동생도 내가 블로거로 발전하는모습을 보며 "샘은 나는데 축하해 주기가 어렵다" 고 했었다. 나는 그여동생이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의  상속녀가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좋아 해주었다. 내 아들에게 "나는 평생 언니에게 말로나 힘으로 이겨본 적이 없다" 고 말했었다.

솔직 담백한 점이 우리 자매의 장점이다.

 

 

1994년 책대여점을 개점할 때 산 관음죽  15년이 되면서 꽃을 피웠다. 대전에 이사를 오고 두 개로 분갈이를 한 후 작년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올해 3송이의 꽃이 피었다. 두송이는 이미 꽃이 졌다. 관음죽 꽃이 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겼다. 8월 말에 새 꽃송이가 올라 왔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을 축하해주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 제 경험담이 88세대 젊은이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55세에 남자도 명예퇴직할 나이에   컴맹에서  시작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제가 되면 누구나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진실되게  꾸준히 노력하면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축하해주신 많은 블로거님들 ,전화로 축하해준 분 모두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글을 쓸 장을 만들어준 다음블로그에 고맙습니다.이제 기쁨 뒤에 강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