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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병천] 이제서야 가 본 유관순 열사기념관

모과 2014. 10. 2. 07:30

남편이  어렸을 때 살았던 병천에 가보자고  했을 때부터 유관순열사 기념관에 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까지 병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데,   생모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남편에게 병천은 특별한 고장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남편(65세)은   같이 늙어가고 있는 아내(63세)와 휴가 중인   큰아들(36세)을 데리고 56년 만에 간 병천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의 머리 속에  순하고 착한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아들 모습을 한 남편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버님이 근무하셨던 병천중고등학교에 가서 교정을 둘러보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으로 갔다.   


오후 4시경  기념관에는 인적이 뜸했다. 
 


유관순 기념관 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기념관의 사방 도로가에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앞서가는 남편과 뒤에 가시는 아버님의 모습이다.
 

 


 유관순열사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가운데 있는 타임캡슐을 거쳐서  기념사진과 동영상을 전시한 건물로 갔다.
 


 


유관순열사의 생애가  큰 도표에 써 있었다. 
 


유관순열사의 생가 모습.
 


1902년 출생해서  1920년 감옥에서 순국, 18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어도 큰 그림자를 남기고 떠났다.
 


이화 학당시절의 유관순 학생.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
 


 

3.1 독립운동 시위현황  지도이다.


옥중투쟁과 순국.
 


 


벽관체험은  문을 열어보니  아주 협소한  바닥에 벽을 보고 계속 서있는 형벌인데 나 같이 뚱뚱하고 큰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어디로 끌려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독립운동 할 때 쓰던 태극기.
 


대한독립선언서
 


 

유관순 열사가 공부하던 유품과  기록물들.

 


 


천안의 독립운동을 나타낸 기념비가 있는  도표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3.1절 마다 부르던 '유관순누나' 로 기억되는 노래의 원래 제목이 유관순인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2002년 천안 시민들이 묻은 타임캡슐.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 3대 (할아버지-아버지-아들) , 큰아들은 묵묵히  동행하며  할아버지와 우리 부부를 지켜주었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간 후 40년의 방황을 끝내고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후 6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평소에 잊지 않고 살았던 병천에 가게 됐다.  승용차로  두시간 거리인데  찾아가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

유관순열사 기념관에 3대가 함께 갔던 기억도 큰아들에겐  먼 훗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2주간 휴가의 첫날을  보람있게 보낸  큰아들에게 고맙다.  
 

아버님이 건강하셔서  함께 갈 수 있어서 좋았고, 너무 늦게 모시고 가서 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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