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덕산 시골집

충남 덕산 나바시 박씨 문중 추석모임

모과 2013. 10. 5. 07:00

 

시집의 추석은 늘 덕산 시골집에서 지낸다. 아침에 제사를 지낸후 성묘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조촐하게 보냈다.

 

나는 추석전날 아침에 남편과 함께 시아버님(91세)을 모시고 시골집에 들어갔다. 큰형님댁과  장손 부부가 미리 들어 간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추석날  아침에 도착한다.

 

 

 

 

큰집의 둘째며느리가  임신으로 오기 힘들게 돼서 손자인 중건이만 할머니와 함께 시골집에 왔다.

 

 

맏동서형님과 큰며느리는 늘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일을 잘못하는 나는 먼지 묻은 실내화 20 켤레를 주방세제로 깨끗하게 닦았다. 음식물쓰레기가 나오는데로 빨리 가지고 가서 집 밖에 파놓은 구덩이에 갔다버렸다. 어떻게든지 내 몫의 일은 찾아서 하고 온다.

 

 

 

형님은 일년 분의  쑥을  봄에 미리 띁어서 데쳐 냉동해 두곤 한다. 추석날은  쑥 송편을 올리므로 손녀딸들이 송편을 만들고 있다. 추석날  조상에 대한 예의와  추석 음식에 대한  산교육을 익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큰집의 큰며느리는  말없이 자기 할일을  찾아서 하는 착한 여성이다. 나는 서연이 어미가 참 좋다. 맏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어서이다.

 

 

올해는 방사능  피해가 걱정돼서  동태전을  안하고  진미 오징어전(오른쪽에 있는 전)으로 대신했다.

 

 

 

남편은  돌담 사이에 난  길로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자기가 심은 콩과 들깨가 얼마나 잘자랐는지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돌밭에서 나온 돌을 쌓아 둔 곳이다.  이렇게 많은 돌이 나와서 그동안  농사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생애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콩밭이다. 나에게 까만콩은  서리가 날 때 추수를 한다고 서리태라고 한다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밭에서 나온  큰돌로 은행나무 밑에 쉼터를 만들은  사람은 남편이다. 온동네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도록  잘 만들어놓았다.

 

 

 

자기가  농사지은 밭에서 만족한 모습으로 둘러보는 남편의 모습이다.

 

 

 

 

남편이 찍어 준 나의 모습이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농사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다.  아버님은  이밭에다 우리 집을 지어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언젠가 작은 집을 지어서 귀향을 할 계획이다.

 

 

남편과 시아버님이 태어난 시골집의 모습이다.  8년 째 매주 주말에 들어가서 고치고 있는 집이다.

 

 

큰집의 손녀 서연이 ,도연이, 해연이와  사촌인 중건이가 자주  만나서 아주 친하다.  

 

 

남편과 큰아주버님이 사랑방 창문의  창호지를 새로 붙이고 있다. 장손 서연애비(43세)도 함께 하고 있다.

 

 

 

종손녀 서연이는  감독을 하고 ^^

 

 

 

큰동서형님의  큰며느리가  형님 손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있다.

 

 

시아버님은 컴퓨터로  바둑을 두고 계신다. 스토쿠와  장기도  컴퓨터로 하신다..

 

 

큰형님이 가마솥에 소고기 무우국을 끓이는 모습. 제사를 모신 후 식사를 할 것이다.

 

 

백두산 미송으로 만든 15평 강당 모양의 사당에서 추석 차례를 드리는  모습.

 

 

다른 추석날은  34명정도 모였는데 올해 추석은  인원이 적어서 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마당에 평상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아버님을 모시고    아드님들이 집안 이야기를 하며  방안에서 식사를 한다.

 

 

 

성묘를 마치고 점심 식사는 성묘 후  마당에서 돼지고기  구이를  먹었다. 젊은 사람들이 굽고 어른 들은 마당에 준비된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대전으로 돌아 갈 사람들은 가고  아버님과 큰집 식구들, 남편과 나는   하루 더 자고 가기로 했다.

 

 

나는 친정 부모가 6.25 때  이북에서 월남을 한 분이시기에  결혼 전에는 명절에 가야할 고향이 없었다.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결혼을 하고 부터는  자주 찾아갈  시골집이 있어서 행복하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시집식구들의 일원이 된 것이 자랑스럽고  좋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며 살고 싶다.

 

* 제목에 나바시는 '나박소'의 충청도 사투리로  시골동네가  나씨와 박씨의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나바시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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