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가을 소나타'의 리뷰어 신청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잉그리드 버그만에 대한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3,40년 전에 그녀의 영화'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가스등'을 봤다. 나에게 그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기억이 돼 있다.
다른 이유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노천 극장이었던 운동장 자리에 현대식 건물이 지어졌고 그 건물 지하 4층에 극장(아트하우스 모모)이 생겼다는데 가서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영화 '가을 소나타'의 리뷰어로 선정되서 37년 만에 모교인 이화여대 ECC 지하 4층에 친구 명희와 둘이 갔다. 우리는 없어진 이화교 자리를 걸어서 아트하우스 모모 지하 4층에 있는 극장을 찾아갔다. 친구와 나는 아들만 둘이다. 그런 우리가 봄 날에 모녀의 이야기인 '가을 소나타'를 보러 갔다.
1. 연인이 딸들보다 소중한 엄마와 사랑받지 못한 딸의 7년 만에 상봉
어느 가을날 목사의 아내인 딸 에바(리브울만)가 사는 사제관에 피아니스트 엄마 샬롯(잉그리드버그만)이 찾아온다.
나는 화면 속의 나이든 잉그리드버그만의 모습에 좀 많이 놀랐다. 63세의 잉그리드버그만의 모습은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61세인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잉그리드 버그만의 역할에 감정이입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잉그리드버그만도 나이가 드니 친구처럼 다가왔다. (물론 그녀는 32년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7년 만에 만난 딸에게 오랜 연인이었던 남자 친구의 죽음에 대한 슬픔만 쉬지 않고 떠드는 엄마의 이기적인 모습이 무척 낯설게 보였다. 자기 성취와 자기과시에 젖어 있는 이기적이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성공한 피아니스트인 엄마를 보면서 나의 마음은 그녀의 딸의 상처가 전해져서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이 자라면서 받은 상처의 크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2. 요양원에 방치했던 둘째 딸과의 만남을 피하려는 비겁한 엄마
요양원에 있던 지체장애인인 둘째 딸 헬레나를 언니인 에바는 2년 전부터 돌보고 있었다. 목사의 아내로서 당연한 태도로 보였다. 샬롯은 장애인 딸을 만나기 전에 독백처럼 말하는 데, 그 비겁함에 나는 기가 막히고 문화적인 괴리마저 느꼈다.
그런 엄마를 헬레나는 반가워하고 보고 싶어했는데 ..... 언니와 엄마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충격과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엄마의 무책임한 태도와 이기적이며 가식적인 태도는 성장기의 자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계속 준 것을 알게 하였다.
3. 엄마에 대한 열등감과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우울한 딸
목사 사위가 아내의 피아노 연주가 참 좋다고 말하며 에바에게 연주할 것을 권한다. 에바의 피아노 연주는 음악에 대한 문외한인 나의 귀에도 세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정성은 느껴졌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엄마 샬롯은 자기 스타일로 멋지게 연주를 한 후 냉정하게 딸의 연주를 평가한다. 딸 에바는 엄마에게 한번도 인정받지 못하며 자란 것을 회상하며 슬픔에 빠진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딸은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늘 연주여행을 다니거나 집에 오면 피아노 연습만 하는 엄마에게 딸과 남편은 거추장스런 존재였다. 에바는 엄마의 사랑을 늘 목 말라하였고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우울하고 열등감이 많은 여성으로 변화돼 갔다.
영화의 제목은 '가을 소나타'인데 풍경 화면은 거의 없었다. 감독은 인물을 클로즈업 시켜서 관객들을 모녀의 감정연기에 몰두하게 한다. 나는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착각을 여러번 했다.
4. 엄마의 딸의 심도 깊은 대화는 서로를 바로 보게 한다.
이년 전 물에 빠져 죽은 손자를 잊지못하는 딸과의 대화에서 모녀는 서로의 상처가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던 자기중심적인 엄마가 죄책감을 늘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딸 에바는 알게 된다. 신경질적이고 가식적인 자기로 인해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딸을 이해한 엄마는 딸의 말을 처음으로 경청하며 다시 죄책감에 빠진다.
엄마는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 때문에 얼마나 깊은 외로움에 빠져서 살았는지 알게 된다. 모녀는 싸우듯이 대화하며 서로의 상처를 들어내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5. 마치 싸이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영화
잉그리드 버그만은 세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배우이다. '가을 소나타'는 그녀의 유작이라고 한다.
영화를 수도 없이 봐왔던 나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가을 소나타'를 보면서 독특한 연출기법이 마치 싸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싸이코 드라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역할을 바꾸어서 연극을 하면서 자기와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치료법이다.
물론 '가을 소나타" 에서는 역할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딸의 입장이 돼 보기도 하고 엄마의 입장이 돼 보기도 했다. 심정적으로는 둘 다 이해가 됐지만 모성애가 지극히 결여된 엄마가 차라리 결혼을 안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6. 자연스럽게 나이든 잉그리드 버그만의 변함없는 아름다움.
잉그리드 버그만은 1982년에 타계했다. 그당시만 해도 성형 수술(보톡스)이 크게 발달 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나이든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나는 잘 구별할 수 없는 클래식 선률이 감미롭게 흘렀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32년이 지났어도 그녀가 남긴 명화는 영원한 것이 좋다.
나는 세상의 모든 모녀와 영화팬들에게 이화여대 ECC 지하 4층 ,아트하우스 모모영화관에서 '가을 소나타'를 볼 것을 권유한다.
영화를 보면서 '가을소나타'의 모녀의 상처와 자기의 상처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주는 상처가 무엇이며 치유의 방법은 무엇인가 깨닫게 하는 좋은 영화가 '가을 소나타'이다.
아들만 있는 나는 36년 전에 돌아 가신 엄마와 나의 애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딸에게 많이 희생적이었던 어머니에게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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