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가난한 조카의 등록금 부탁을 거절한 이유

모과 2011. 5. 19. 06:45

 나는 40대를 아주 짙은 잿빛으로  보냈다. 경제적,육체적, 정신적 고난이 다 함게 몰려왔다. 말이 좋아서 장사지 사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장사라고 해야 하는 책대여점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혼자  아침 11시부터 밤 12시 30분까지 가게에 앉아서  혼자 장사를 했다. 내가 가장 힘이 들었을 때 시아버님과 시누이 형님이 자주 전화를 해주었다. 친정동생들이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남편의  매우 가까운 인척 중에 전화 한 통도 안한 분들도 있다. 사는게 너무 벅차고 힘들어서  섭섭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큰아들이 서울의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시집에 갈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립됐던  몇 년 간 우리 아이들과 나는 하나로 똘똘뭉쳤다.

 

책 방에 앉아서 혼자 책을 보다, 신문을 보다, 드라마를 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내 아들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었다. 나의 간절함이 돌아서 우리 아들들에게 돌아 가길 바라면서 그랬다.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하늘이  나의 소원을 들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해 두 아이가 다 대학을 다니니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서 부자 친척에게 전화를 했다.

늘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사는 분이어서  도와줄 줄 알았다.국립대학교 기숙사에 있는 막내의 등록금은 당시 100만원이었다. 단 칼에 거절이었다.  자기 아들의 대학원 등록금과 유학 자금 때문에 돈의 여유가 없다고 했다. 대학교수가 되기엔 너무 공부가 부족한 자녀들이었다.

 

그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집이면 모교에라도 장학금을 낼 정도라고 생각해서 여러번 망설이다 전화를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분이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그일을 통해서 세상이 무섭다는 것도 알게 됐다. 먹고 사는 것을 도와 달라는 것도 아닌데 등록금을  왜 거절했을까?

 

 가까운 동네 친구에게 물어 보니 자기는 이해가 된다고 했다.

"자기 자식는 돈을 쳐드려도 공부를 못하는데 자기가 보기에  형편없이 못사는 집 아이가  사교육도 안하는데 공부를 잘하니 진심으로 축하를 못하겠지요. 대부분  그래요 "

아! 세상이 그런 거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못 사는 우리가 부족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 아이들은 대학 졸업 전에 다 취업을 했다. 그리고 성실하게 겸손하게 살고 있다.그집  자녀는  학창시절에   계속 고액과외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외국유학을  갔다가 적응을 못하고 돌아왔고 지금도 변변한 직업이 없다.

 

명품하나 덜 사면  어려운 집조카 등록금 한 번 내줄 수가 있는데 ......그때는 이해가 안됐었다.

 

삶의 방법은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가장 힘들 때 밥 한끼 사준 사람이 평생은인으로 남는 것을 그분은 알고 있을까?

어려운 조카의 등록금 한 번  내주는 것이 자기 자녀에게 복이 몇 배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 아들이 자기 모교에 장학금을 낼 정도로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자기집  큰 것 사고 ,자기 식구들만 위해서 사는 인생은 너무 허무하고 쓸쓸한 인생같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 복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고 싶다. 돈을 많이 벌은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벌을 받은 게 아니다.  극복할  수 있는 고난이고  그냥 일상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나는 매일 복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을 뿐이다.

 

*명품을 사러 가기 전에 어려운 인척의 등록금 한번 내주면 어떨까해서 이글을 썼습니다. 어려운 친척의 등록금을 내주시면 자기 자녀에게 꼭 복이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은 저는 이제 다 해결되고 원망도 없어졌습니다. 혹시  가난한 조카가 등록금을  못내고 있을 때 등록금만은 도와주면 좋겠다는 말을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