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내가 받은 가정교육 ,한나라당 박성효 최고위원 인터뷰

모과 2011. 2. 7. 06:33

2010년 9월 내가 다음블로그 '황금펜'으로 선정된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컴맹으로 시작해서 황금펜을 4 년만에 받고 소감을 쓴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해준 것 같았다.

 

 핸드폰 화면에  박성효 시장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그냥  안부전화라고  했다. 낮잠을 자다 일어난 나는 무척 당황해서  제대로 대화를 못했다. 그후  전  대전시장이었던 박성효님이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됐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됐다.

 

 내가 2010 다음 뷰 블로그대상 시사 부문 우수상을 받고 지역신문에서 나를 인터뷰한 기사가   신문 한 면 전체에 나왔었다.  그날  박위원님은 또 축하의 전화를 해주었다.

 

" 아!  언제 한 번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에 "내가 받은 가정교육"을 연재하고 싶어요 .정치가 편으로 박성효  전 대전 시장님을  하고 싶습니다."

 

" 그러지요 뭐"  아주 간단하게  쾌히 승락을 해주었다.

 

60세 보통 아줌마로는 만나기 어려운 정치가 박성효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인연은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2008년  남편의 고향인 대전으로 이사를 한 후   정말 우연히 "  블로거들과  박성효 대전시장의 간담회"에 참석하게 됐다.  나는 인터넷으로  대전시장을 검색하고 그분의 저서 두 권을 구해서 읽고 갔다.

*2009년 8월 대전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대전시는 내겐  30년 이상을 다닌 낯익은 도시이면서 전혀 생소한 도시이기도 했다. 오직 시집인 석교동에만 다녀 갔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오래  살았던 다른 블로거들의  대전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에 비해서 나는 사람  박성효에 대해서 관심이 더 갔다.

 

 *  사람과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박성효

 

간담회를 위해서  읽고 간 두 권의 저서에서 개인사를 알게 됐고   부인과  결혼에 얽힌 일화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담회 후에 인간 박성효에 대해서 보고 느낀대로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글을 본 박성효 당시 대전시장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고맙다고 했다.  세 번의 전화를 받은 나는  정치가로 느껴지기 보다는 친근한 이웃사촌 같이 느껴져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인터뷰는  1월 28일 오전 11시 ,박성효 최고위원 사무실(대전시 서구 만년동 311리더스타운 F동 402호) 에서 있었다. 다음은  대담형식으로 한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 만년동 사무실 안의 모습: 박위원은  일주일에 3번 국회에 올라가고 나머지 시간은 이곳에서 집무를 하고 있다.

 

질문1: 박 성효 최고위원(57세)의 가족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성효 의원: 아내 백기영(52세) ,아들 용현(28세),딸 소영(25세) 입니다.

 

* 왼쪽부터 용현군, 소영양,  부인, 그리고 박성효 최고위원

 

질문 2: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성효의원: 가족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겠지요.

 

질문 3: 박성효 최고위원께서 부모님에게 받은 가정교육 중 제일 중요시 된 점은 무엇인가요?

박성효의원:  부모님은 3남2녀의 장남인 제게 큰기대와 정성을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옳게 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하는 제게 책을 살 용돈을 주시면, 친구 집에서  하는    대전역 앞의 동국서점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곳에 가서 책을 사고 보고 했어요. 저는 집에서 굿을 해도 굿판 한 귀퉁이에서 책을 보던 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중학교 이후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아주 믿어 주셨습니다.

 

 

질문 4: 박성효 최고위원은 자녀 교육 중에서  제일 중요한 점이 무엇을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성효의원: 부모의  생활이 바로 자녀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빠서 집사람이 알아서 했지요. 공무원은 선공후사 (先公後私) 공적인 일이 먼저이고 사적인 일은 나중이지요. 월,화,수,목,금,금,금이었으니까요. 무척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질문5:사모님이 영어교사를 하셨지요?

박성효의원: 교사는 1년했는데요.  아 ! 자원상담 교사를 오래 했는데(사모님에게 전화로 확인 했다) 용현이 중1 때부터  9년 간 했다고 하네요.

 

나도 큰아들이 중3이었던  해에 1회였던 '상담자원봉사"를 부산시 공무원 연수원에서 2주간 교육을 받았다.  전직교사거나 4년제 대학 출신의 어머니를 한 학교에서 한 명씩 선정해서  교육을 받게 하고 "자원상담교사"  위촉장을 주었다.일주일에 한번 씩 중학교와 여상에  가서 "집단 상담'을   2년 간 해서  잘 알고  있다

 

 사모님과 결혼에 대한 사연은 자전적 에세이 '다리를  놓는 사람들" 에서 자세히 읽었다.

 똑같은 아가씨와 두번의 소개팅을 하게 된 후 운명적인 만남으로 생각하고 서로 사랑을 했으나    종교 문제로 양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점쟁이가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자식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했는데    첫 아기인 장남이 자폐아로 태어났다.

 

박성효 의원은 용현군(28세)과 일주일에  2~3번  동네 목욕탕에 함께 간다. 용현군은  사교육비가 안드는 39점 아들이라고 자전적 에세이에 기록했다. 지인의  조립공장에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한시간 씩 꼭 운동을 한다는  아드님에 대한 이야기는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부인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 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했다.

 

*대전대학교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부인 백기영여사와 함께

 

질문6. 자녀교육에 제일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인가요?   여러 개 석사 학위 중에서  사회복지학도 있던데 아드님때문에  공부를 하셨나요?

박성효의원: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행정가로서 앞으로의 행정은 복지 행정이 주류를 이룬다고  생각해서 공부했습니다.복지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교육은 집사람이 다 알아서 했어요. 제가 워낙 바빠서 ...딸 아이에게 고마운 것은  같은 만년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오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점입니다.

 

박위원의 딸 소영양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OO은행에 재직 중이다. 용현군을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 중고고교에 보낸 점이 잘한 선택인 것은  동기 학생들이 도와주며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말했다.

 

 

질문 7: 시장 재직 시 보람 있었던 일과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박성효의원: 어제 경향신문에  계속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됐더군요. 녹색도시로 만든 것, 시내버스환승제도 ( 나는 환승해도 더 돈을 내지 않는 것을 처음 알았다),50여년 만에 시내버스 노선 변경,  홍명상가 35년 만에 철거 ,보수, 대전 천을 공원화 시킨 것 등입니다.아쉬운 점은 하던 사업을 못 마친 것이지요.

 

무지개 프로젝트 사업으로 판암동 영구임대 아파트단지를 살기좋은 동네로  변화 시킨 고마움을 주민들이 감사패로  표시했다.

 

정치가라기 보다는  행정가로   대부분 공무원시절을 보냈고, 성균관 대학 재학시절(행정학과)을 제외하고는 대전에서 일생을 보낸 박성효 최고위원의 대전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군대도 공군으로 갔는데 공군 교육 사령부가 대전에 있어서 군 생활도  대전에서 보냈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지 대전을 위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질문8. 정치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성효의원: 왜 정치가가 되고 싶은지 목적을 세워야합니다. 리더로서 솔선수범,선공후사 ,자질품성, 책을 많이 읽어서 간접경험을 많이 하고 ,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요.

 

질문9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인생관이랄까?  좌우명이 있다면 어디에서 지혜를 얻으셨나요?

박성효의원: 어릴 때부터 대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많이 배웠지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과  슈바이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위인전등에서  사람과 지혜를 배웠지요.

 

 

나는 박성효 최고위원을 4번 만났다. 블로거들과의 간담회에서 , 대전시 블로그기자단 1기로서,  우연히 우리 동네 진잠 도서관 완공식장에서,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권위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이웃 사촌 같은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박위원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할 때는 장손인 아버지의 대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배웠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를 하면서 어려운 생활도 해봤던 어린 시절의 책벌레 박성효 학생은 수재들만 간다는 대전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실패를 연거퍼 하며 좌절도 경험했고 행정고시 공부를 하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경험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군장교로 복무하며 리더쉽을 터득했고  부인과의 사랑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의 반대도 극복했다. 장애 아들을 키우며  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정치를 잘 모르는 평범한 아줌마인 내가 만난 박성효 최고위원은 행정가도 정치가도 아닌 그냥 사람 박성효였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생각하는 대전시민 한 사람을  만나고 온 것이다.

 

나도  사람과의 인연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짫은 인터뷰 시간 이외의 인연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만남이었다.

 

** 교육코너 베스트로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기사를 쓰는데 15시간 걸렸습니다,.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