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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식구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모과 2009. 11. 24. 12:41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늘 김치를 얻어 먹었습니다.

시고모님들과 시누이 형님들이 기꺼이 해주셨습니다.

물론 나는 공손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말씀은 드렸지요.

이번에는 시증조할아버님 제사와 겹쳐서 저도 남편을 따라서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대전에서는 큰 동서 형님과 둘째 형님 , 막내 동서가 제사 준비를 했습니다.. 

 

 * 동네 산 밑에 있는  시골집 모습, 늦가을이라서 쓸쓸하게 느껴집니다..여기를 봐도 산이고, 저기를 봐도 산입니다.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깡촌에 있습니다.

 * 우리가 할 김장용 배추가 있는 비닐하우스, 옆의 비닐하우스에 있는 배추는 속이 꽉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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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도착하자 마자 막내 고모님과 형님,그리고 나는 비닐 하우스에 들어 가서 배추를 뽑아서 다듬으면서 일했습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다음날 저녁 6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개미같이 일하다 왔습니다..

시댓 식구들은 "축복 받은 건강"을 타고 났습니다..

키는 대부분 작은 편인데 일들을 굉장히 잘하고 속도도 빠릅니다..

나는 ~~ 완전히 시다바리(조수) 보다 못한 쫄병이었습니다..

 

배추를 뽑자 마자 수돗가로 가서 막내 고모님과 시누이 형님이 절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250포기가 넘는다고 합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나는 방에서  잔파와 갓을 다듬었습니다.

아주버님이 방이 따뜻한가 확인하고 보일러를 더 쎄게 틀어주었습니다.

시댁에서 나는 일 못하는게 소문이나서 온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 주십니다.

그리고 광주에 한 달을 출장갔다 와서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고  힘든 일은 시키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주버님은 홍성 시장으로 양념거리를 사러 갔습니다..

 

 왼쪽부터  홍성고모님(74세),남편 박씨아저씨(60세), 오른쪽 시누이형님(62세), 막내 고모님(68세,마스크쓰신분) 그리고 내가 야채를 다듬었다. 4박, 1김씨가 일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이집에서 태어 났고 함께 살았습니다.. 남편은 부산에 오래 살 동안 나와 둘이서 김장을 몇 년해서 일을 잘합니다.( 제가 전업주부일때는 우리가 김장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나는 서점에서 일했고 남편은 나 대신 시골집에 가서 김장을 했습니다.

고모님들이 제 남편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막내 고모님은 제천에서 부부 교사를 하고 있는 아들이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사둔 어른이 아이를 보다 병이나서 막내고모님 부부가 가서 쌍둥이를 보다 주말이라서  고모님만 오셨습니다..

빨간 잠바를 입은 큰 시누이형님은 "노인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치매 노인의 집으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모이면 조용조용 말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는 덕이 있는 장소가 됩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시누이 형님이 어느새 가서 식사 준비를 해놓습니다.

제가 할 일은 설걷이 뿐입니다.  왠지 조금  미안해서  수저를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서 소독을 했습니다.

밤 11시가 되자 나는 견딜 수 없이 온몸이 쑤셨습니다.

시골에 오기 전에 병원에 들려서  왔지만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편과 고모님들이 가서 자라고 진심으로 말씀했습니다.

아버님이 주무시고 계신 방에 와서 누워서 "세바퀴"를 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 시골집 대문 밖에서 본 먼동이 트는 모습입니다.

 

 * 여름에 들깨를 심었던 곳은 추수가 끝났고 사랑방 아래 심어 놓은 연산홍들의 잎새는 단풍으로 물들었습니다.

* 시골집 대문에서 본 풍경,  먼 산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예산군 덕산면이지만 홍성이 더 가까운 곳입니다.

 

아침에 누가 찬장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계속하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아버님이 나 혼자 자고 있으니까 깨우려고 그러신 듯합니다.^^

깨고 보니 나 혼자 이불을 크게 깔아 놓고 편히 잔 것같습니다.

어제 저녁에 아주버님이 사랑방에 불을 지피셔서 모두 사랑방에서 주무실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밥을 해야 하니까 내 다리밑과 아버님 옆자리에서 두 분이 주무셨답니다.남편은 사랑 방에서 아주버님이 코고는 소리 때문에 두 시간도 못잤답니다.

 

전 날 시작한 배추 속에 넣을 재료를 새벽 3시까지 하고 잤답니다.

그리고 3시간 자고 아침 6시에 다시 일어나서 올 때까지 일했습니다.

 

 

* 김장 배추 씻기는 저도 동참했고 남자뿐들은 불편함을 그때 그때 처리해주었습니다. 김장에 적극적인 박씨아저씨(남편) 는 일못하는 아내 대신 자기라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을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참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닐하우스의 배추 크기가 너무 작어서 옆의 비닐하우스 것도 다 절이다 보니 배추 양이 어마 어마하게 많아졌습니다.

배추 속에 얌전히 잠자고 있는 배추 벌레 때문에 여러번 확인을 하고 깨끗이 씻었습니다. 중간 중간 쌍둥이 아가들 이야기도 하고 ,홍성 고모님 손자가 수능 본 이야기도 하고 오손도손 정겹게 일했습니다.

이번 김장은 어머님집, 막내 고모님댁, 큰 시누이 형님댁, 우리집 것까지 네집입니다. 그런데 그만 너무 많이 하게 됐습니다.

위로 두 형님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하고 (며느리들 것까지),막내 동서는 친정에서 해준답니다.

 

큰 시누이는 돼지고기 수육과 점심 식사 준비로 부엌으로 갔습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커피 타임"을 요청했습니다.

남편이 커피 7잔을 타서 돌리고 자기도 담배를 한대 핀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 와~ 이렇게 힘든 김장을 저는 맨날 고맙습니다. 잘먹겠습니다. 하고 먹기만 했네요. 죄송합니다. 내년부터는 꼭 오겠습니다"

 

내가 공손히 말하자 시고모님들이 웃으시며 대답했습니다.

" 우리는 기분좋게 일하면 피곤하지가 않어. 타고난 건강과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인지 몸이 별로 아픈데가 없어"

"그 뿐이 아닙니다. 타고난 넓은 성품과  축복받은 인품이십니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박씨만 )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좋은 습관이있습니다..

시누이들이 며느리보다 모든 면이 월등히 좋습니다..(물론 저를 포함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박씨 집안 며느리들은 모두 하나같이 몸이 약합니다.

그냥 약한 것이 아니라 엄청 큰 수술들을 다 두 세 번씩 한 사람들입니다.

 

 * 김치 냉장고에 넣을 통들이 안채 마루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통이 모자라서 아이스박스, 프라스틱 큰 항아리, 그냥  비니루까지 꽉꽉 채웠습니다.

 

 * 3박씨 (남편, 홍성고모님, 막내고모님)의 김장김치 씼기 대작전입니다.

저도 함께 하다가 사진찍느라고 잠깐 ....^^막내 고모님은 쌍둥이들을 보러 가야 하기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항시하고계셨습니다.

 * 박씨 부자 (아버님 87세, 남편 60세) ,아버님은 총감독이십니다. 남편이 왜 이렇게 처량해 보일까요? 기쁜마음으로 일했는데...^^

 

 * 박남매 ( 큰시누이형님62세, 남편 박씨 아저씨 60세) 서로 생각해 주는 마음의 깊이가 감동적입니다.

* 대전으로 이동해 갈 김치통들, 어머님 집에는 8통 다 드리고  다른 집들 것은 우선 시골집에 보관해두고 조금씩 갖다 먹기로 했습니다. 

 

막내 고모님이 제천행 기차를 8시에 타셔야 하기 때문에 대전 사람들이 먼저 떠나야 했습니다.

안산에 사시는 큰 시누이 형님은 양념묻은 옷들과 수건을 세탁기로 빨고 ,집안을 정리하시고  늦게 갑니다.

 대전 관저동에 도착하니 밤 7시였습니다. 고모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저도 목욕탕앞에 내려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버님을 석교동 큰집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서점으로 갔습니다.

11시까지  책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최종 발주를 하고 ,다시 석교동 큰형님 집으로 제사 지내러 갔습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 온 시간은 새벽 2시였습니다.

 

다음날  9시에 일어 난 남편은 "생각보다 몸이 괜찮네" 하더군요.

 

이렇게 주말마다 4년을 넘게 다닌 남편에게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김장보다 더 힘든 집 고치는 일을 매주 시골집에 들어 가서 함께 일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잡념이 없이 일하고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사랑방에 장작을 때고 푹자서 좋다고 합니다.

홍성에 사시는 고모님은 매주 자원봉사를 하러 시골집에 오십니다.

제게 늘 김치를 보내시는 고모님이십니다. 74세이신데 지금도 초등학교에 급식 도우미로 일하십니다.

아들은 공무원 며느리는 초등학교교사여서 생활비를 다 부담하고 있지만  그냥 일을 해야 한다고 다니십니다.

 

나는 시댁식구들의 인성이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성실하고 강한 분들인 것은 잘 몰랐습니다.

"쉬지 않고 개미처럼 일한다"라는 말이 떠 올랐습니다.

 

저는 시집 식구들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대단한 건강, 대단한 근면성, 대단한  마음의 깊이에 감동받았습니다.

미리  잔 것이 미안해서  화장실 청소를 해놓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