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직장

간절하게 원하는 직장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모과 2010. 9. 15. 06:30

큰아들이 꿈의 직장을 찾아서 갔던 길을 기록합니다.

 4살에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초,중,고등학교를 그곳에서 졸업을 했습니다. 작은 꼬마가 또랑또랑  표준말을 한다고 가는데 마다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사투리를 쓰지 않고 자란 것을 보면 만3살까지 교육이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1.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재수를 했습니다.

 

큰아들은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로  학창시절은 교사의 사랑을 늘 받고 다녔습니다. 내가 아들에게 해준 일은 준비물 준비확인과 복장을 단정히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성적은 늘 최상위 아니면 상위였습니다. 가정환경 때문에  사교육은 많이  시키지를 못했습니다.

1997년도 수능이 생각보다 많이 못 나왔습니다. 부산대학교 어문학과중에서  지원하고 떨어지고 바로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고3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니 아나운서 조건이 다 되니까 재수를 하라고 권유해 주었습니다.

 

* 배우 이정진 : 큰아들과 나이가 같아서 , 물론 우리 아들의 외모는 평범합니다.
 
아나운서를 하려면 서울소재의 학교를 나오는게 유리합니다. 재수를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담임선생님과 저, 큰아들의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큰아들의 키는 179cm[징병 검사시 측정] ,체중  69kg 선한 인상 의 팔 다리가 길어서 옷맵시가 납니다. 남편도 대학교 재학시 아나운서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답니다. 남편과 아들은 목소리가 참 좋습니다. 부자가 목소리가 똑 같습니다.
 아들은 재수에 성공해서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교 영어영문학부에  특차 장학생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나운서의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1학년 1학기에 포기했습니다. 서울에 가니 영어영문학과의 남학생 중에서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아나운서가 된다고 했습니다.
학과 동기 중에 친한 친구와 함께 신문 방송학과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가 그 학생에게는 꼭 기자가 되라고 하고 우리 큰아들에게는 기자의 자질이 없다고 했습니다.  큰아들 스스로도 깨달았습니다.
 
2. 아나운서 포기후  대기업 입사의 꿈을 막연히 가졌습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를 하고 싶어서 스펙을 만들기에 노력했습니다.

 

 
1) 학점은 기본적으로 좋아야 합니다. 4년동안 한학기 빼고 다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 영문 ,경영을 다전공했습니다...두 학과의 이수 학점이 똑같아서 두 개 학과를 나온 셈입니다.
 
3)  3학년  1학기에 중소기업에서 3개월 인턴 실습, 4학년 1학기 여름 방학 때  가고싶은 대기업의 계열사에서 인턴실습을 한 달 했습니다. 인턴을 하며 그회사에 꼭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게 됐습니다.
 
4)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 관한 책을 11권 찾아 읽었습니다.
 
5) 토익은 어학연수를 못 갔으나  영문과라서 890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을 공채에서 그 회사에 합격했습니다
 
6) 7개월의 연수 그리고 정상근무 : 큰 아들은 두 달만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발령 받은 업무가 평생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잦은 회식, 폭탄주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카맣게 얼굴이 타들어 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우리 부부는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그 회사에 들어 가고 싶어서  최종 면접 전에  급성장염까지 걸렸었습니다. 가보니 계속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노무사나 법학과를나온 사람들에게 맞는 업무였습니다. 아들은 가다가 멈춰 섰습니다.
집안 형편이 회사를그만 두면 안되었만  아들을 믿었습니다.그리고 내가 대형마트 조리제안[튀김코너]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고구마 튀김을 한번도 안해 본 제가 용기를 내서 전혀 다른 삶 속으로 가봤습니다. 두달 후 아들이  재취업을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서점에  발령나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3.  퇴사 그리고 깊은절망 속에서 입사원서 접수.
 
10월 중순에 퇴사를하고 나니 대부분 대기업의 서류전형이 끝났습니다.   5곳에  원서를 냈고  3곳에 서류전형에 합격을 했습니다.  금융권, 물류회사, 항공회사였는데 큰 아들은 항공사에 가고 싶었습니다.  2차에서  항공사에만 떨어졌습니다. 집단 토론에서 떨어질 것을 예상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말하면 어떤 지원자가 죽자로 물고 늘어져서 대답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 생각을 했답니다.
서비스 업종에서 잘 따지는 사람들은 다 떨어 진다고 합니다.
 

 최종면접에서 두 곳 다 합격을 했습니다. 아들은 물류회사에서  송년의 밤 겸 입사 축하파티에 갔습니다. 지금 다니는 은행은 힘들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서 겁부터 냈지요. 그 송년의 밤에 참석하고 물류회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다고 인사과에 전화를 했습니다.

 
 * 이사진 속 어딘가에 우리 큰아들도 있습니다.
 
 4.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자기도  몰랐다.
 
 큰아들은  은행에 근무하면 할수록 적성에 맞다고 말합니다.
먼길을 돌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겁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사람을 대할 때 말을 조리있게 하는 노력을 합니다. 저를 닮아서 사람을 잘 기억합니다. 본가에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할머니들이 많아서 어른들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자기가 내성적이라서 영업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회사에 근무를 해보니 영업이 적성에 딱 맞는다고 자주 말합니다. 첫번 회사를 빨리 그만 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근무하는 은행이 고마워서 더 열심히 일을 한다고 자주 말하지요.
 
 
* 사진의 맨뒤에 서 있는 남직원이 큰아들입니다. 신입사원연수를 마치고 ...
 
5. 직장생활 5:3의 법칙을 수행한다. 
 
며칠 전 직원연수 를 1박2일 다녀온 아들이 들은 특강는 아들의 목표와 같았습니다.
강사로 나온 임원이  5년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렇게 되려고 3년간 노력을했다고 말했답니다.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3년간 공부해서 5년 후에 목표를 달성합니다. 다시 3년을 준비해서 5년후에 목표를 달성한는 일을 되풀이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고  도표를 보여주며 강의를 했답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계획한 것을 모두 이루었다고 합니다. 대기업의 임원은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그 방법은  아들이 하려고 생각했던 길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큰아들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성격이여서 당분간 결혼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저 역시 결혼적령기는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고 믿기에 아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 여러분이 꿈꾸는 직장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이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곳인지 알아봐야 할 겁니다. 자기가 간절히 원하던 직장이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