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입학 할때는 대학 간판만 보고 갔다.
고3 때 모의고사 점수를 가지고 담임선생님이 가라는 대학 가라는 학과에 대부분 갔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약학과나 의대를..영문과 가정과를 갔다.
그 당시에는 모든 회사와 학교에서 여자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직장을 그만 두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동창의 반이 결혼을 하였고 나머지 동창들은 결혼 전 까지만 직장 생활을 한다고 했다.
현모 양처가 가장 큰 꿈이기에 가정과가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아야 가던 때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들으면 믿지 않겠지만 분식집이나 중국집,빵집에가서 들키면 3일간 정학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대학 진학시에 이과와 문과 교차지원을 해도 감점도 없었고,집안이 엄한 학생은 서울대학에 갈 실력이 되어도 여자대학을 가야했다. 본고사도 있었다.
예비고사로 대학 정원 이상을 뽑았고, 본고사에서는 국어,영어,수학,은 기본이고 문과계통의 학과는 사회를,이과계통의 학과는 과학(물리,화학,생물)중에 한 과목을 택하여 시험을 보았다.
신촌 쪽에 있던 유명 여자대학에서는 9과목을 보았다.
국어,영어,수학은 100점 나머지 암기과목은 50점씩을 주었다.
여고에서는 남녀 공학대학보다는 이화 여대에 진학을 신경 많이 썼었다.
학과가 그 학생의 적성에 맞느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여대를 나오면 결혼을 잘 한다는 소문이 많았다.
누구도 대학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지 않았다.
학과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부모님들은 대부분 학력이 짧으셔서 자녀들에에 모든 것을 맡기는 형국이었다.
학점도 A+.Ao,A-가 몇 점 씩인지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여자100명중에 1명이 대학에 오니까 너희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는 말을 교양과목인 "여성과 교양"시간에 들었을 뿐이다.
대학 4년간 나는 자부심과 당당함과,책임감과,봉사심을 배웠다.
졸업때 총장님은 "여러 분들이 졸업을 하지만 뒤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살면서 대학에서 배운 것을 평생 이웃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라"하셨다.
학문이외에 대학은 채플시간을 통해서 유명인사나 교목님,총장님께서 정신적인 프라이드를 심어주셨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수학이 좋았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답이 분명있고 풀어 가다보면 여러가지 공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고
답이 간단 명료한 것도 좋았다.
수학은 초등학교 때부터 싫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계속 월등한 성적으로 수학만 전교 일등을 했다.
고3초에 "장티프스"로 학교를 자주 결석하고 공부에 열중할 수 없었던 나는 모의 고사 성적이 겨우 여자대학에 갈 커트라인 이었다.
나를 아는 누구도 내가 "수학과"에 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성적이 부족하여 자연 과학부의 다른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가정과의 인기가 예전보다 많이 하락하고 오히려 자연과학부는 각 학과가 평준화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리학과!
수학을 잘 한다고 절대로 과학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수학을 잘해야만 물리를 잘 한다.
기초물리,현대물리,근대물리,미분방정식,수리물리,양자학,역학,미분적분.....실험 또 실험....
그 당시에 서울대학교의 수석은 물리학과나 공대에서 나왔다
나는 학문으로서의 물리학을 존경하고 천재들만이 물리를 완정히 이해하고 좋아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동기들은 입학은 40명이 하였으나 졸업은 34명이 했다.
휴학을 했거나 자퇴를 한 것 같다.
40명 중에 물리를 좋아하는 친구는 7명정도나 되었을까?
동기중에 교수가 된 친구도 있고 대덕 연구단지에 연구원으로 있는 친구도 있고 15`6명은 중고등학교 과학교사가 되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교사로서 활용하여 좋은 선생님이 많이 되었다.
우리 시대에 공부가 더 힘들었던 것은 2학기 의 8학중에 6학기를 유신 대모로 인하여 학교에 휴업령이 내려서 공부를 자세히 배우지 못하고 레포트로 시험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학과의 특성상 전 학기에 배운 것을 모르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는 데 수업을 하지 않았으니 어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고 1때부터 책을 좋아해 국 내외의 명작과 사회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는 거의 다 읽다가 낙제를 할 뻔도 했었다.
물론 국어 점수도 좋았지만 수학 성적이 월등해서 국문과에 갈 생각은 꿈에도 안 했었다.
그때,누군가 물리학과를 가면 무슨 과목을 배우며,무슨 실험을 하며,졸업후에는 무슨 일을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명도가 낮은 학교라도 수학과를 갔었다면 좋았을 텐데...
국문과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살면서 가끔씩 자신에게 물어 오는 질문들이다.
내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큰아이는 어나운서가되고 싶다고 해서 문과를 선택했고
어나운서는 꼭 신방과를 나오지 않아도 되며 실제 어나운서중에서 신방과 출신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가 고3이 되자 서울의 여러 대학의 입학처와 학과에 전화하여 문의하기 시작하였다.
아들아이는 등교하며 부탁을 하곤 하였다.
"엄마! 오늘은 OO대학 OO학과에 알아 봐 주셔요."
02-114에 전화하여 그 대학에 전화를 하면 상세히 전년도 입학생의 내신 등급,졸업후의 취업 한 회사까지 자세히 설명 해 주었다.
새벽 6시30분에 집을 나가서 밤11시가 다 되서 들어 오니 엄마가 문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신문에서 입학에 대한 기사는 모두 스크랩하여 노트에 붙여 놓았다.
3년동안 모아 놓으니 아들아이가 재수를 하고 입학 할때 0.5%의 오차도 없이 원하던 대학에 특차 장학생으로 합격하였다.
대학에 입학하니 서울아이들은 어나운서 된다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고 방송국에서는 한 해에 한 두 명의 남자 어나운서를 뽑을 뿐이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니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되었다.
아들 아이는 경영,영문을 전공하여 4학년2학기 10월 말에 원하던 회사에 좋은 성적으로 입사하였다.
막내는 초등학교때부터 수학을 월등히 잘 했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학교 수업만으로 수학을 다 이해 했고 늘 100점을 받아왔고 6학년때는 학급대표로 수학 경시대회에도 나가서 최후까지 시험을 보았다.
중 고등학교에다닐 때 집안이 갑자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막내의 뒷바라지를 못 해 준게 늘 미안하다.
자연스럽게 이과를 택했고 고3 어느날, 막내가 내게 생각밖에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 나는 지금까지 내가 수학을 잘 한다고 생각 했는 데 그게 아니예요."
"왜 아니야,너 수학점수 늘 최고 잖아."
"문제가 쉬웠던거예요. 문제가."
막내의 말은 옳았다.
며칠후 신문에 서울 대학의 신입생의 25%가 수학성적이 학업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수학을 등급 별로 학습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전국의 최고의 성적인 학생들이 가는 서울대가 그럴진데 다른 학교 사정은 어떻겠는가?
수능점수가 내신에비해 너무 적게 나와서 막내도 재수를 하였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아르바이트 했던 할인마트가 좋다며 졸업 후에 그 곳에 취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재수는 문과에서 해서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활동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며, 놀기도 좋아하는 막내의 성격은 연구실이나 실험실 ,생산 공장의 작업실에 맞지 않다.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미분이나 통계학은 ...수학에 관계되는 회계학등은 모두 다 잘한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의 경영학과에서 수학을 많이 배운다고 듣고 온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은 너무 강제적인 주입식과,자율학습이라고 정해 놓고 완전히 타율학습 이지 아닌가.
막내가 아파서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리니 외출증을 주면서 병원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들어 오라고 했다. 아픈 아이가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 다시 가야한다니..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을 시간을 주었는가?
자율 학습의 한시간을 독서나 신문읽을 시간을 주면 어떻겠는가?
대학의 결정은 직업의 결정이며 ,직업은 그 사람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고등학교 교육에서 직업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하는 시간을, 담임 선생님이나 학과목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유아 교육과가 인기가 많은데 유치원 선생님의 보수가 너무 적은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유치원은 일 년제이므로 많은 유치원에서 1년에 한번씩 교사를 바꾸는 것을 아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혹시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아닌지.
막내가 지방의 국립대학에 다닌다. 취업율이 서울의 일류대학에 비해서 월등히 낮다.
방학중에 토익학원에 다니는데 3학년2학기까지 스팩을 높여야한다고 강사가 말했단다.
복학이 늦어져서 동기들이 3학년이 많은데 토익을 준비하는 학생이 별로 없고 취업 스타디도 형성이 안되고 4학년이 되서야 토익을 준비 한다니 ...이게 바로 지방대의 취약점이다.
먼저 졸업한 여자 입학 동기는 중소기업이나 은행에 계약직에 취업이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제 지방대의 약점을 인정하고 실력 좋다는 서울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는 그만하기로 했다.
책을 별로 읽지 않아서 말을 세련되게 못하는 막내.
그러나 아직2학년. 늦지 않다. 신문도 보고, 책도 보고...차곡 차곡 너를 채워가라.
엄마는 이제 다시 신문을 매일 스크랩하여 B4용지에 붙여서 보내주마.
취업 모델로 형이 있다.
형과 비교한다는 속 좁은 생각은 말고 역활 모델로서의 형의 과정을 배우자.
어느 모자라는 엄마가 비교 할 게 없어서 두 아들을 비교하겠는가?
이제 내게는 막내 아들의 취업이 가장 큰 인생의 숙제로 남아있다.
열심히 준비하여 온 가족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