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를 지을 때 떠오르는 단어가 "모과"였다.
지어놓고 보니 정말 좋은 이름 같았다.
다른 사람이 이미 지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잘 지은 것 같다.
과일중에 제일 못 생긴 과일,그러나 은은한 향이 여운을 좋게 주는 모과.
아이디를 보고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우연히라도 만나면 빙그레 웃음을 주지 않을까?
아이디와 이미지가 같아서,아니면 조금 나아서....
내가 이 삼십대 였다면 아이디를 "칸나"라고 지었을 것이다.
칸나의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정열적인 빨간 꽃을 닮고 싶었다.
젊은 날의 나는 맑고 밝았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이 있었고 열정적이었다.
옷도 빨간 색을 좋아 했고 목소리도 한 톤이 높은 낭낭한 쏘프라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생의 여정이 나를 한 가지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삶의 힘을 주는 것도 자식이고 ,자식 때문에 힘이 더 드는 것도 삶이다.
모든것을 포기하고 한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책임인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아이들은 훌쩍 커서 엄마의 보호자로 자세가 바뀌었다.
나를 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살펴 보니 "모과"같은 내가 있다.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평범하고 뚱뚱한 아줌마.
문득,신문사 "문학 기행"에서 만난 작가 "강석경"씨가 떠 올랐다.
그 날의 주제가 "능으로 가는 길"이므로 작가인 강석경씨를 모시고
경주의 왕능을 돌며 그의 책 이야기를 듣는 여행이었다.
큰 아들과 동행을 했는데 아들아이는 엄마와 나이가 같은 강석경씨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나와 같은 대학을 같은 학번으로 나온듯 하였다.
"엄마! 같은 나이에 저 선생님은 어쩌면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어요?
엄마도 살을 빼셔야겠어요.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군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아들 보기가 좀 부끄러웠다.
마음으로는 "나도 살을 빼면 저 분 보다 멋있을 수 있다."생각을 하며....
그녀가 공공 장소에서 담배를 피는 것 까지 좋아 보였다.
작가니까,....독신이니까 ....날씬한 몸매와 지적인 얼굴은 세련된 옷과함께 정말 멋있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글 "숲속의 방"을 젊은 날에 읽고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물이 더 멋진 여성이었다.
이제 자기 관리에 들어 갔다.
생활로 황폐해진 마음을 비우고 평온함을 채우고,
생활이기 보다는 생존하기 위한 치열함을 벗어 버리고 자기 실현의 길로 들어 섰다.
밝은 햇살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한시간씩 걸으며 느끼는 행복함은 그동안 가게에 갖혀 있었던 구속감 때문에 더 크다.
남편과 한 달에 한번 삼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 중에 한 곳을 가기로 했다.
남편 출장 길에 동행하니(동행해도 좋은 대학들이었다.)봄날의 신록이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40대를 혹독한 시련으로 격고 나니 "모과"같은 내가 서 있다.
외모는 그러하나 겸손과 배려와 따뜻함을 배웠으니 그것이 더 귀하지 아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