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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잘라 가발 만들어 준 내 친구 성실이

모과 2006. 5. 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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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이 와의 만남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이다.

 

성실이는 이름 처럼 성실한 모범생처럼 생겼고 ,성격 또한 조용하고 크게 웃는 적도 별로 없는

얌전한 여학생이었다.

 

우리는 키가 같아서 60명중에 57,58번을 하면서 짝이 되었다.

나는 그 애를 처음 보았는 데 성실이 는 나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1학년 때 6반, 7반으로 옆 반 이었다.

성실이 반 옆에는 중앙 현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커다란 전신 거울이 있었다.

 

쉬는 시간 만 되면 어떤 아이가 거울 앞에서 여러 가지 표정을 짓고, 혼자 미소도 지어 보고 해서,

그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킥 킥 대며 그 여학생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이 바로 나였다.

 

그 때 나는 중3말에 심하게 독감 몸살을 앓은 후 굵게 생긴 쌍커풀이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집에서도 거울을 자주 보다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곤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 날 거울만 끼고 있냐"

 

정말 1학년 때는 공부가 엄청 하기 싫었다.

일 차 시험에서  다니던 일류 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고등 학교에 떨어지고 원하지 않았던 2차 고등 학교에 진학한 것이 너무 싫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국 내외 명작 소설만 읽었다.

 

학교 숙제는 해가지 않고,친구들 것도 베끼지 않아서 자주 복도에 나가서 벌도 섰다.

 

더군다나  몸도 약해서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다.

 

그 학교는 독립 운동을 하신 분이 설립 한 학교로 아드님이 교장으로 새로 오셨다.

교장 선생님은 젊으신 편이었고 경기 고등학교와 서울 대를 나오 신후 영국 유학을 다녀 오신 분이라  학교를 발전 시키려는 의지가 많은 분이었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전 과목 0점 처리를 했고 7학급이 입학을 했는 데 2학년에 진급은 6학급만 했다.

엄격하게 낙제를 시키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전공한 분이셨는 데 나의 중학교 때의 성적과 I Q를 보시고 안타까워서 십 여 과목의 선생님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점수를 받아서 겨우 진급 시켜주셨다.

2학년에가서는 열심히 공부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훗 날 내가 교직에 몸 담고 있을 때 내 반에는 문제아가 없었다.

학기 초에  문제아도   시간이 지날 수록 착한 학생이 되었다.

고등 학교 때 담임 선생님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나를 편애 하지 않는 다정한 교사로 만들었던 것

이다.

 

나는 성실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 는 데 그 아이는 나를 "참 이상한 아이"로 알고 첫 만남을 갖은 셈이다.

 

성실이는 정말 성실히 공부 했고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처음 시험에 20등을 하더니 다음 시험에는 5등을 하였다.

 

성실이는 전교에서 5등 안에 드는 뛰어 난 학생이었다.

내가 성실이 보다 잘 하는 것은 수학과 체육이었다.

수학은 초등 학교 부터 좋아 하는 과목이라서 고1때를 제외하고는 늘 전교 1등을 했다.

 

나는  성격이 솔직하고 잘 웃고 무슨 일이든 먼저 하자는 전형적인 o형 성격이다.

성실이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이 조용히 웃는 전형적인 A형 성격이다.

 

서로 상대적인 성격이라 좋아했고 서서히 우정이 쌓여 갔다.

 

2차 학교라서 일류 대학 진학률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와 성실이는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  문리대학 이과에 (현재의 자연 과학부)   서로 다른 학과에 합격했다.

그 당시 이학관에는 4개의 과가 있었고 과 사무실도 같은 건물에 있고 대부분의 전공  강의는 한 건물에서 있었다.

 

과가 틀려도 우리는 매일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었고 강의가 끝나면 강의가 끝나지 않은  친구의 강의실 앞에서 기다려서 서로의 학과 학생들은 우리를 모두 알았다.

 

대학 입학 초 성실이는 자기 과에 나와 같은 이름의 아이가 있어서 호감이 가서 친해졌다고 하였다.

 

 

성실이가 4년동안 화장을 했을 때는 메이 데이 에 과 퀸으로 뽑혔을 때 딱 한번이다.

얼굴이 뛰어 나게 예쁘지는 않았으나 성격이 무난하고  키도 크고 무엇보다도 성적이 좋았던게

주변 사람 들이 성실이를 좋아 하는 이유이다.

 

나는 3,4학년때는 엶게 화장을 하고 다녔다.

학점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 어려운 학과였든 게 큰 이유였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인지도가 낮은 학교라도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가 되는 점이다.

그 시대에는 대학을 먼저 정하고 학과는 모의고사 성적에 맞추어서 선택을 하였다.

 

성실이 아버지는 직업 군인으로 중령이었다.

일본 출장을 다녀  오면서 성실이 에게 주려고 사온 화장품을  성실이는   내게 모두 주었다.

 

성실이는 고등 학교 졸업후에 머리를 한 번도 짜르지 않아서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다.

나는 곱슬머리라서 늘 커트를 하고 다녔다. 곱슬머리를 길게 기르면 지저분 한 모양이 되기 쉬어서 길게 기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성실이는 머리를 좀 짧게 잘라보고 싶다고 하였다.

긴 머리가 아까우니 내게 긴 가발을 만들어 줄테니  너도 가발로 긴 머리를 해보라고 권했다.

 

나의 대학   졸업 앨범에는 성실이가 준 가발을 쓰고 학사모를 쓴 사진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중학교 과학 교사로 성실이는 시중 큰 은행 본점 은행장 비서로 입사했다.경기도 소 도시에서 하숙을 하며 교사를 했던 나는 주말이면 성실이를 만나곤 했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온지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성실이는 비서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홍보실로 옮겼다.

새로 생긴 중견행원 시험에도 합격하고 대리가 되었다.

 

대리 시험에서 성실이는 전국에서 모인 유능한 남자 행원들 속 에서  수석을 하였다.

 

대리가 된 성실이 를 다른 학교 약학과를 졸업한 친한 혜성이와 찾아 갔었다.

 

그때 점심을 함께 먹은 후 지금까지 만나지를 못 했다.

 

2-3년에 한 번 씩 전화로 안부만 물었다.

 

친정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장녀인 나는 대가족인 시댁 일에도 충실히 참석  할 수 없는

고달픈 생활을 했기에 성실이의 결혼식에도 참석 하지 못했다.

 

42세때  일간 신문 마다 난 성실이의 기사를 보았다.

 

"최초! 여성 지점장. 성의 벽을 깨다."

 

2명의 여성 지점장 중  한 명으로  ㅇㅇ 은행에서  발령을 받은 것이다

.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지점으로 찾아 가서 전화 번호를 알아서 축하 전화를 했다.

 

년  초가 되면   성실이에게서 전화가  옸다.        혜성이와 비행기 타고 한 번 갈께...라고.

 

 

그 후 사업에 실패하고 이자를 카드로 돌려 막기를 하다  막다른 벽에 부딪쳤다.

한 달에 두 번 카드를 결제 하는 날이면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때 마침 성실이에게서 명예 퇴직을 한다며  퇴직 후 부산에 한 번 보러 가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이 틀을 고민 하다 성실이에게 전화를 했다.

"성실이니?"

"어!ㅇㅇ니? 혜성이와 부산에 한 번 갈께."

"그래 보고 싶다.그런데,  성실아! 내가 많이 깊이 생각 하고 말 하는 건데 부탁 하나 들어 줄래?'

"응? 무슨 부탁?'

"내가 요즈음 카드때문에 무척 힘들거든. 너 혜성이에게 연락 해서 500만원씩 1000만원만 빌려 줄래? 너희 들 내가 살아 온 것 들으면 아마 울거야.이자는 은행이자로 줄테니 꼭 좀 부탁한다."

 

"어...ㅇㅇ야! 내가 지금 조금 당황되거든. ...내게 좀 생각 할 시간을 줘. 내가 오래 생각을 하지는 않을거야. 혜성이에게도 연락하고, 혜성이 만난지도 오래 되었다. 내가 연락을 해 줄께."

 

그후 하루 동안 연락이 없었다.

무척 부끄럽고 비참한 시간이 흘렀다.

 

동생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

"언니! 성실이 언니가  안 되면 안 된다고 연락을 할 언니지.그냥 있을 언니가 아니냐. 언니가 먼저 전화를 해봐."

 

전화를 하니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전화 번호가 뜨니까 피하는 것 같아서 더욱 비참 해 졌다.

마음 속으로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포기하고 있는 데 저녁에 성실이에게 전화가 왔다.

"ㅇㅇ야! 기다렸지? 오늘 혜성이 만나서 점심 먹으면서 의논 했는데 많이는 못 해주고 300만원씩

600만원 보내 줄께.계좌 번호 불러라. 다 해 주지 못 해서 미안 하다.그리고 이자는

그만 두고 형편 되는 대로 갚어도 돼."

"고맙다."

갑자기 눈물이 확 쏟아졌다.

 

그 후 또 연락이 없다.

 

아들아이가 취직을 하고 전화를 하니

"ㅇㅇ야1 네에게 많이 배워야 하겠다.서울 오면 연락 해 한번 밥이나 같이 먹자.

 

15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안은 친구에게 큰 돈을 선뜻 빌려 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족한 내게 늘 웃으며" 그래 맞아!"하며 내 말을 찬성 해 주든 내 친구 성실이!

 

 그 당시 유행이더 미팅을 하고 내가 잘 난 척을 하면서 이야기 하면,

"그래 너를 싫어 하는 남자는 그 남자가 이상 한 거야."하며 웃는 성실이!

 

메이데이에 파트너가 없어서 축제에 참가 하지 않는 내게 멋진 파트너를 소개 해 준 성실이!

 

내가 성실이에게 해 준 것은 무엇인가?

 

친구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식으로든 성실이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데.....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합리화를  해 본다.

사랑한다. 친구야!

박 성 실.  김 혜성.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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