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두꺼비같은 엄마와 몸짱 아들

모과 2006. 5. 23. 16:58
LONG
아들아! 엄마가 꼭 살 빼서 고혈압도 고치고, 예쁜 옷도 어울리는 멋진 엄마가 될께.
ARTICLE

큰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집에 내려 오면 아버지와는  삽겹 살 집에서   소주를 먹으며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는  극장까지  한 시간 정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남편은 영화를 좋아 하지 않는다.

 

영화 이야기,친구 이야기. 인생이야기....자기의 꿈도 이야기 한다.

나의 학창시절이야기도 하고 가게 이야기도하고...

 

어느 날 큰 애와 극장에 가는 길이 었다.

 

"엄마! 살 좀 빼세요. 꼭 두꺼비 같아요."

"그래, 살이 너무 많이 쪘지?"

"내가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 드릴게요.

신촌에는 멋쟁이 할매가 많은 데 엄마도 살빼세요. 멋쟁이로  만들어 드릴께."

 

가게를 시작 하기전에는 66사이즈나 77까지 입넜는데  12년동안 체중이 15Kg이나 증가하여

88사이즈나 99를 입어야 한다.

거울을 자주 보지 않아서 나의 몸매에 대해서 잊고 있다가 어쩌다 시내에 갈때, 쇼윈도에 비친

낯설고 뚱뚱한 아줌마가 나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설마 저 정도까지 이려구."하고 외면을 하곤 한다.

 

아들 아이는 군에서 제대를 하고 집에 왔는데,요즈음 트래이너를 두고 몸을 만든 몸짱 연예인 같이 몸이 변해 있었다. 

 서해 해전이 있었던 작은 섬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군에는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는 청년들이

많으므로  헬스 클럽의 트래이너로 있던 사람이 있어서 배웠단다.

 

공군으로 입대를 했는 데 국방부에 속하게 되었고 "해병대"에 파견 나가서 제대 할 때 까지

서해 5도 중 제일 작은 섬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 했다.

 

훈련이 없는 부대였는데,아들 아이는 체중이 75kg이 되자 매일 같이 해변가를 10Km씩 뛰기 시작했다.

몸은 근육이 만들어 졌고, 체중은 67-70Kg을 유지 했다.179cm의  큰 키에 유난히 긴 팔과 다리가

멋진 몸매를 만들어 주었다.

제대 후 매일 헬스 클럽에 다녔고 복학을 해서는 학교 운동장을 매일 달렸다.

기숙사에서 주말이면 이모 집에 갔는데 거기에서는 뚝방길을 뛴다.

외출 후 늦게 들어 오면 밤 12시라도 학교 운동장에 가서 뛰고 온다.

 

 

아들들과 나는 영화광이라고 할 수 있다.

왠만한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빠트린 영화는 비디오로 빌려다 본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 가면 나는 동네 비디오 숍에 가서

"18세 불가래도  아이들이 볼만 한 영화는 빌려 주셔요."

부탁을 하고 온다.

"가을의 전설 이나, "꽃잎"같은 영화는 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난 날은 영화 한편 값과 햄버거, 오락실 값을 꼭 주었다.

영화는 스트레스 푸는 데 가장 저렴한 비용이 들면서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들 아이는  엄마를 좋아해서 유명 외국 여배우가 입는 옷을 보고

"엄마도 살 빼서 이렇게 옷을 입어요."

"야야! 내가 먹고 치장만 하는 여배우와 비교 할 수 있나?"

"왜요? 엄마도 살을 빼면 멋질 거예요.'

 

 내 아이디는 모과이다.

키크고 뚱뚱 해져서 스스로 모과로 정했는데 부를 수록 정이드는 이름이다.

 

젊은 날의 나는 꽃으로 비교 한다면 "칸나"같았었다.

 

내가 제일 좋아 하는 꽃이기도 하다.

 

키가 크고 씩씩하고 푸른 잎과 줄기,화려하고 붉은  꽃이 마음에 든다.

 

젊은 시절에는 키가 크고 보통 체격에 가까웠다.

목소리도 보통 사람 보다 한 톤이 높아서  명랑한 성격과 함께 자신 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조용한 성격이고 고상한 모습이어서 상대적인 나를 좋아 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재미있게 웃어 주었고, 무엇을 하자면 대부분 따라 주었다.

나는 솔직하고 잘난척을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의 마음의 밭이 나보다 많이 넓었던 것 같다.

 

가게를 하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 나고 밤마다 야식을 하는  나쁜 습관이 뚱뚱이 아지매로 만들었다.

아들과 매일 한 시간씩 걷기로 약속 했다.

운동화도 사고  운동복도 마련 하고 이제 실천 시작이다.

 

막둥이도 35Kg을 감량 했는 데  엄마의 저력을 보여 주어야지.

 

큰 아이는 집에 오면 엄마의 머리에 염색도 해주고, 화장대 위에 다 쓴 화장품의 빈병은 모두 버리고,부족한 화장품을 사다 놓고 간다.

엄마의 다 헤어진 지갑을 보고 예쁜 가죽 지갑도 사다 주었다.

 

자신을 돌보지 못 하는 엄마의 삶이 무척 안스러워 보이나 보다.

 가게에서 돌아 와 늦은 저녁을 먹는 내게

"엄마 티 셔츠 돌려 입었다.엄마 밥 먹는 모습이 왜 눈물이 나지."

하며,눈가를 비볐다.

"엄마! 내가 효도 할 테니 건강 관리 잘 하세요. 우리 친가는 장수 집안 이니까 아버지는 오래 사실거예요.엄마도 건강관리 해서 오래 사셔야 해요,"

 

외할머니가 45세로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고 68세에 가신지 17년이 지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외가가 없는 셈이다. 내가 친정에서 장녀이므로.,...

 

친정 어머니는 별나고 성격이 급한 나에게 종종 말씀하셨다."시집 가서 너와 똑 같은 딸년을 나아봐야 에미 심정을 알게다."

 

그런데 나는 나보다 심성이 착하고 똑똑하고  성실하고 온순한 아들 들만 둘이다.

 

나의 주변에는 내가 어려움에 쳐했을 때,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아마도 열심히 살려는 나의 의지를 곱게 보신 하늘의  축복인 듯 하다.

 

두 아들들에게도 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