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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세상을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모과 2006. 5. 18. 00:30
LONG
부모에게 효도 해서 잘못된 사람을  못 보았고 ,자식은 사랑으로 키운 부모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ARTICLE

 막내 아들이 고3 때의 일이다.

 

어릴 때 부터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는 아이라서  대화로서 아이를 이해시켜왔다

자기가 잘못 했을 때는 순순히  인정을 했고  벌도 공손히 받았다.

 

늘 대화를 많이  하면서  생활했기에  사소한 일이라도  엄마와 대화가 많았다.

 

입시 때문에  부모도 자기 자신도  긴장된 가운데 ,늘 불안 하기도 한 고3  어느 날. 이런 저런  학교 이야기중에,아들 아이 다리에 여기 저기 멍이 들어 있고  피부가 까진 곳도 보여서  이유를 물었다 ,

 

점심 시간이면  반 친구들과  11명씩 2팀으로 나뉘어 축구를 한다고 했다. 진 팀 아이들이 이긴 팀 아이 들에게 아이스케키나 음료수를  하나씩 사준다고 했다. 아들 아이는 골키퍼라고 했다.

 

"그럼 너희 팀이 자주 이기니?"

"아니요. 제가 가는 팀은  늘 져요,"

"그럼 아이 들이 네가 자기 팀에 오는 것을 싫어 하겠구나."

"서로 데려 가려고 하는 데요."

"응? 왜? 싫어 할 것 같은 데.."

" 내가 굉장히 열심히 하거든요. 그 모습이 굉장히 웃긴데요."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지니?"

"내가 열심히는 하는데 들어오는 골은 하나도 못 막고 ,실수해서 자살 골을 넣고 막 그래서

제가 가는 팀은 10;0이나 12:2 정도로  늘 져요."

 

열심히 슬라이딩을 해서 피부가 넓게 벗겨지고  여기 저기 멍이 시퍼렇게 들었던 것이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고  웃고 스트레스 푸는 게 목적이거든요."

"그런데,점심 시간에  그렇게 뛰고 나면 오후 수업은 어떻게 하니? 졸려서."

"공부 잘 하는 애 들은 하나도  안 해요."

"야! 대학교에 가야 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축구를 매일 하면 어떻 하니?'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새끼들은  쉬는 시간에도 오줌만 누고 와서  공부만 해요.점심 시간 에도

밥만 먹고 계속 공부하고.."

"그 애들이 정상이지.'

"엄마 우리 반에 48명이 있는데 38명은 다 축구도 하고 야자 시간에(야간 자율 학습)에 도망 갔다가  오락실에도 가끔 가고 해요."

"그렇게 해서 대학은 어떻게 가?"

 

"엄마! 하루 종일 어떻게 공부만 해요. 그 10등안에 드는 새끼들은  지들끼리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해요. 나는 인생을 그 새끼들 같이 살기 싫어요. 38명들 같이 살고 싶어요."

"너도 10등안에 들잖니? 조금만 더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지?"

"엄마는 내가 그 새끼들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진짜 이기주의예요, 나는 크게 성공하고 싶지가 않아요.평범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막내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서 웃고 말았다. 아들 아이는 수학과 과학을 늘 수를 받았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었다.

 

"엄마! 나는 지금까지 내가 수학을 잘 하는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예요."

"왜? 너는 초등 학교 때부터 수학을 잘 해서 경시 대회에 반 대표로도 나가고 했잖아?'

"요즈음에 깨달았는 데  문제가 쉬운 거지 내가 잘 하는 게 아니 더라구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능 시험을 보고 발표가 나기 전까지 대형 할인 마트의 식품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000여명의 직원이  북적이는 활기 찬 그 곳이 막내의 적성에 딱 맞는 듯 했다. 앞으로 그 곳의 정직원이 되겠다고 했다.

수능 점수가 발표 되고 며칠을  우울하게   집에 있었다.

 

"엄마! 저도 형 같이 재수를 하겠어요. 문과로 바꿔서 경영학과를 가겠어요.할인마트에 취직하려면 경영학을 해야지요?'

 

 막내는 입시 원서를 한 장도 안쓰고 2월부터 바로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하더니 열심히 공부를 했다.

 

1년 후, 많이 오른 성적에 맞게 친가가 있는 대전의 국립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했다. 특차로 아슬 아슬 하게 합격을 했다. 학부 성적순인 기숙사도 겨우 되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장학금도  경계선에 있어서  성적이 같은 20명중에 2명만 줄 수 있으니 집안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어야하니 관계 서류를 제출 하라고 했다. 국립 대학이라 장학금의 종류가 많았다. 등록금의 일부를 주는  장학금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  전공학과를 정해야 하는데 학부 560명중 경영학과는 160명이었다. 1지망에서149명,2지망에서11명이었는데 막내는 1지망 학생 중에서 147등이었다.하도 기도 막히고 아슬 아슬 하였기에  막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막둥아! 조금 더 하지. 큰 일 날뻔 했잖아."

"엄마! 나는 꼴찌로 들어 가도 들어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 해요, 들어 가서 잘 하면 되잖아요."

"그건 그런데, 이제 부터 좀 잘 해보지."

 

집안 형편상 군대에 가기 전과 제대 후 복학 하기전까지 1년 7개월을  할인마트에서 일했다. 125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100만원을 주었다. 큰 아이가 4학년이라서  막내의 복학이 늦어 진 것이다.

 

"막둥아! 미안하다. 엄마가 나중에 다 갚아 줄께"

"부모 자식 간에 미안 한게 어디 있어요. 이 다음에 더 많이 벌어다 줄께요."

"고맙다. 효자네. 엄마가 잘 쓸께."

"엄마! 제발 사람들 앞에서 효자라고 하지 마세요. 내가 무슨 효자라고 ..."

 

엄마에게 미안해서 먼저 용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 속 깊은 아이.

용돈이 없을 것 같아서 물어 보면 돈이 조금 있다고 하는 아이.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편하게 쉬게 해 주겠다는 막내.

 

어디를 가든  누구든 그 아이의 인간미에 반한다.

 

올 해 졸업을 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형에게 막내는 짐심으로 말했다.

 

"형이 형이어서 너무 다행이야. 만약 내가 형이라면 어쩔 뻔 했어"

 

라고 심각하게 말 하는 막내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 해 보았다.

 

내게 이제 소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내가 이 다음에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두 아들이

 

"나는 참 좋은 엄마를 갖었었다"고 회상 해 주는 것이라고 말 하겠노라고....

 

사람사이에 제일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식에게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자기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부모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두 아이에게 바위같이 꿋꿋한  에미이고 싶었다.

혼자 있을 때는  수없이 약한 눈물을  흘렸으면서도....

 

이제 훌쩍 커서  에미를 걱정해 주는 아이들 ,건강하게 밝게 살면서 그 아이들의 마음의 큰 재산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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