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류 대학교를 나온 부모의 자식들
나의 대학 동창의 자녀 이야기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실험조였으나 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을 했고 나는 중학교 교사가 됐다.
결혼하고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 살아서 동창들과 한 동안 연락이 끓어졌다. 그 친구 소식은 국립 S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그런데 내가 살던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정말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십여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친구의 남편의 회사 계열사에서 지은 아파트였다.
그 회사 직원아파트가 몇 채 있었는데 지방 발령을 받은 그녀가 회사 사택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대학 때는 3~4명이 각각 친할 뿐 사실 학과 친구들을 잘 모르고 졸업을 한다.
그친구와 2년을 가깝게 지나면서 나는 내가 전에 알던 그 친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에 많이 놀랐다.맏며느리였고 맏딸인었던 그녀는 살림을 너무 잘했고 요리도 잘했다. 두부,콩나물을 집에서 만들거나 길러서 먹었다. 물론 나에게 늘 주었다 심지어 나중에 이사를 가면서 김치를 두 통 담궈서 한통은 나를 주고 한통은 자기가 가지고 갔다.
친구는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서 큰아들보다 한 살 많은 딸과 막내 아들보다 한살 많은 아들이 있었다.
친구의 집은 부유해서 대학때 아르바이트를 안했다. 나는 4년 동안 가정교사를 했고 중학교 수학, 과학교사를 했다. 은행에 다니다 결혼한 친구는 자기 자식은 자기가 못 가르치겠다며 내게 6학년이었던 하섬(가명) 이를 부탁했다. 아파트의 다른 친구의 아들과 딸 모두 세 명의 중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가르쳤다. 세 아이들 모두 공부는 최상위권이었다.
겨울방학 2달 동안 일주일에 3번 1시간 30분씩 하고 중1수학 교사 1/2를 가르쳤다.문제집 두 권과 함께 풀었다. 하섬이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전교 1,2등을 했다. 하섬이는 부모의 좋은 머리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았고 지고는 못사는 승부근성이 강했다.
중1말에 하섬이 아빠가 강원도의 대도시로 발령이 났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많이 했는데 청렴했던 하섬이 아빠는 발령만 났다고 들었다. 강원도에 가서 일시적으로 왕따를 당한 이유는 하섬이가 서울 말씨를 쓰는 얼굴이 하얗고 예쁜 전교 1등 전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문제는 선생님들의 표가 나는 편애 때문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다시 서울로 발령난 아빠를 따라서 서울로 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2년동안 , 미국에 이민간 고모가 암말기 판정을 받고 귀국해서 투병하다 세상을 떴고 이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암으로 돌아 가셨거나 노환으로 돌아 가셨다. 맏며느리였던 친구는 자식들에게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하섬이는 고등학교때 4등급을 했고 서울소재 OO여대에 진학을 했다. 학구적이었던 하섬이는 화학을 전공했다. 4년간 장학금을 받았고 학교에 남으라고 교수도 조언을 했으나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취업을 했다.
** 사진 출처: 다음 통합검색,뉴스에서 했습니다.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스튜디어스 이미지가 필요해서 사용했습니다.
하섬이는 어학연수를 다녀 오지 않았고 키는 162.5cm 이다 . 평소에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던 여대생이었는데 항공사 연수를 받고 아주 예쁘고 세련된 스튜어디스가 됐다. 27세에 두살 연상의 대기업 회사원과 결혼도 했다.
며칠 전 하섬이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동기 중에 제일 빨리 승진하고 있다고 했다.
2. 일류대학 나온 아버지과 하위권 대학에 합격을 한 아들의 갈등
하섬이의 남동생은 어려서 부터 상당히 개구장이었다. 보통 아이들같이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을했다. 역시 하석(가명 )이가 중3 때 누나와 똑같은 가정환경이어서 공부에 전념하기가 어려웠다. 수능 결과는 수도권대학에 진학을 할 수 없는 점수가 나왔다. OO도의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넣어서 합격을 했다.
이때부터 부자의 갈등이 생겼다.
아빠는 "머리가 아깝다 재수해라."! 아들은 "공부하기 싫은데 어떻게 재수를 합니까? 재수하기 싫어!"
아빠가 거실에 나오면 아들이 방에 들어 가서 문을 닫고 아들이 나오면 아빠가 안방으로 들어 가는 생활이 됐다.
입학 합격증을 받으러 갔던 하석이는 집에 오더니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1차 합격증을 받으러 가보니 성적이 낮아서 OO도로 역유학을 간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 집 큰아이가 재수를 해서 대박 성적이 나온 것도 한몫을 했다.
하석이는 재수를 해서 수능성적 백분률 8%였다.서울소재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겨우 합격을 할 성적이었다. 친구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새벽기도의 힘으로 유명한 대형교회에 장로와 권사가 됐다. 친구는 대학다닐때 독실한 불교 신자였었다.
가족회의 결과 하석이는 OO도에 있는 기독교 재단의 대학에 입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전교생 기숙사 생활을 하고 술,담배 금지 였다.
하석이는 졸업 전에 전자 회사에 취업이 됐다.
* 사진 출처 : 다음 뉴스: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전자 이미지가 필요해서 사용했습니다.
하석이의 대학 학과 동기중에 그 회사에 2명 최종 합격했다. 지금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친구 부부는 지금 제주도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시아버지께서 수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제주도에 OOOO평의 땅을 사놓았었다.
수의사 자격증으로 농가 가축을 돌봐주며 ,교회의 장로와 권사로서 봉사를 하며 살고 있다.
** 제가 이글을 쓴 이유는 일류 대학을 나온 부모의 자녀도 머리는 좋게 태어났어도
변화되는 가정환경에 따라서 능력대비 최하의 성적이 나온 경우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청념한 직장생활과 올바른 신앙 생활을 통해서 자녀는 바르게 자랐습니다.
대기업을 명예 퇴직을 하고 새로 시작한 사업을 크게 실패한 후, 제주도로 떠났던 친구 부부는 이제 넉넉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꼭 일등이 아니어도 성공한 학생들의 모습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친하지 않은 친구도 십여 년 후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만나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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