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럼에도 행복한 아버지들

모과 2010. 4. 10. 16:16

봄이 되니 동네 텃밭자리에 여기 저기 빌라가 지어지고 있다.

참 열심히 일하는 아빠들의 모습이 때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한다.

 

남편은 45세에  갑자기 실직을 하고 자식들과 살길이 막막해서 아침마다 집을 나서서 돌아 다녔다

*(세월이 몇 년 흐른 후에 내게 한말을 적어봅니다)

지방 노동청에 가서 상담을 하니 대학원졸의 학력과 45세의 나이가 다 걸림돌이 되었다.

아침마다 돈 10,000원을 들고 나가서 차비와 담배 한갑 그리고 점심을 간단히 하고 ,때로는 굶고 거리를 한없이 걸어 다녔던 적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돈 100만원만 집에 가져왔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던 적이 있었다.

"안되면 노가다나 하지뭐" 쉽게 말을 내밷는데 그세계도 다 인맥으로 유지 된다.

큰동생이 노가다 팀장으로 대형교회 ,대형마트, 우체국등을 지어서 알게 됐다.

 

내가 하던 "책대여점"도 사양길에 접어 들어서  겨우가족의 생계나 유지 할 정도였다..

아들들은 방학마다 알바를 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장학금 을 제외한 적은 돈이지만 이자가 싸니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남편은 간절히 일자리를 원했지만  한동안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건축현장의 아버지들이 예사로 보이지가 않았다.

 

 

* 공중에 매달린 아버지 포대에 흙을 담아서 지고 나르는 아버지들  

 

작업을 하는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표정이 무표정이나 평온다. 이 건물을 지을 동안에는 수입이 보장이 되는 거니까.  모두 열심히 일을 한다. 내가 오며가며 하루에 한번씩 지나가며 사진을 찍으니까 내가 물어 본다.

"왜 사진을 찍으세요?"

'인터넷에 올릴라구요. 엄마,아빠는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구요. 요즘 아이들 제 맘에 맞지 않으면 쉽게 직장을 그만두잖아요. 우리들에게는 좋고 싫고가 없다. 일을 한다는 것만이라도 고맙다고 쓰려구요"

모든 아저씨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한 때 제일 소질이 없는 요리 쪽에 취업해서 한달 다닌 적이 있다.

사업으로 인한 빚도 갚고 큰아들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힘들게 들어 간 회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들을 믿었고 대신 마트안의 튀김집에 취직을 했었다. 다행히 아들이 두달만에 재취업되었다.

나이는 제일 많았고 일은 제일 못해서 오만 구박은 다 받았다.잊지못할 기억이다.

나는 튀김이라고는 그 직장에서 처음으로 튀겼을 것이다.

 

 

 * 공중에서 시멘트잔해를 털어내는 아줌마와 아저씨들 : 열심히 몰두하고 있다.

 

 

* *점심식사후 스치로폼위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아저씨: 벗어논 신발이 애잔하게 마음속으로 다가 온다.

 * 멀리 지붕위에서 구부리고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인다.

 * 허공 위의 두 아버지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 공중에서 서로 비켜 가는 두 아버지의 모습

 

 * 이 아버지의 가족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까? 

 * 공사현장에서 고철을 줍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O kg에 900원을 준다고 했다.

* 요즘 빈박스와 고철,빈명을 줍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조손 가정이 많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최소 생활과 적은 돈이지만 규칙적인 급여에 만족하고 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가끔  돼지고기나 신김치에 싸먹는 생활에 행복을 느끼고 산다.

몸이 건강하고 가족들이 다 일을 하고 있고 서로 사랑하니 더 바랄게 없다.

 남편이 사업을하는 것마다 실패를 하고 고생만 직사하게 하고 빚만 잔득졌지만 다 극복하고 작은 집에서 사는 이평화로움이 좋다.

봄날의 꽃들은 피어나는데  나혼자 우울해서 겨울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의 봄날은 이제 부터 일 수도 있다..

 그간의 고통과 악연은  우리 부부에게 서로 소중하게 느끼게 하는 학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근 60년을 살았고 부부가 함께 한 시간이 33년이다.

 우리가 앞으로 같이 살 날들이 20년은 될까?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날들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올해 부터라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남편에게 좀더 다정하게 살갑게 대해주어야겠다.오랫동안 인생 자체에 화가 나 있어서 나의 말투도 자주 화가 난 사람같다고 아들들이 말해준다.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

 

나는 요즘 출근하는 남편에게 갑자기 볼에 뽀뽀를 해준다. 잘다녀오라고 웃으며 !

 

우리 친정에서는 늘 하는 말이 있다.

"영천 김천은 겁적하다"( 신의주 사투리로 엉뚱하고  비위살이  좋다는뜻)고 ..나는 영천 김씨고 돌아 가신 큰어머니는 늘 우리를 "영천 김천"이라고 불렀다.^^

내년 2월 남편의 환갑날에 10kg 다이어트해서  예쁜  옷을 입고 노래를 불러서 기쁘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