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OO 일보 주최 전국 미술대회가 해양대학교에서 있네. OO이 참가 시키지?"
남편이 신문을 보다 내게 말했다.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 되는 큰 대회인데 입상이 가능 하겠어요? 미술 학원을 계속 다닌 것도 아닌데"
" 떨어 지면 어때서 . 떨어져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OO이가 너무 상을 많이 받아 오는데 ,이번 경우에 떨어지는 경험도 하게 해 봐야지. 남의 입장도 되 보는 중요한 경험이야."
큰 아들이 초등 학교 5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남편의 제의가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미쳐 생각을 못했던 일이다.
지금도 부산 영도의 태종대 가까이에 있는 해양 대학교 운동장에서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어수선한 운동장에서 바닷 바람을 맞고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전국의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실시한 미술대회였다. 큰 아들은 물론 떨어졌다.
"세상에는 너보다 미술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은 한가지 이상 씩 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한다.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를 인정해야 한다"
결과가 발표되고 남편이 아들에게 해준 말이다.
* 28세의 나와 큰아들은 8개월이 됐을 때: 생후 6개월부터 대전에서 큰엄마가 키워주었다. 사정이 있어서 한달 만에 간 엄마 얼굴을 잊어 버려서 울고 안오겠다고 한참 울던 아이를 겨우 달래서 안고 찍었던 사진 ,아들 표정이 편하지가 않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는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때 학교나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었다.
미리 시험 날짜를 알려 주고 본 시험은 올 백이나 전 과목에서 2~3개 틀렸다.
예고 하지 않고 갑자기 본 시험은 전 과목에서 7개 정도 틀리는 학생이었다.
그것은 매일 꾸준히 예습 ,복습을 했고 일 주일에 한번씩 배운 범위 만큼 자습서와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내가 지나가면 동네 아줌마들이 여러번 받은 질문이 있다.
" OO엄마는 집에서 애를 얼마나 잡길래 공부를 그리 잘하냐?"
초등 학교 3학년 담임은 50세의 주부 교사였다.
" 내가 교직 30년 경험에 이런 학생은 처음 봤습니다. 차분하게 뭐든지 잘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선생님들은 듣고 있는 내가 미안 할 정도로 극찬들을 해주었다.
심지어 고1담임은 " 학교 지시(가슴에 리본을 달라든가 하는 일)를 전교생이 안 지킨다고 해도 OO는 지킬 학생이다"고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전 과목 에 두각을 나타냈다.
6년간 예습,복습을 게을리 한 적이 없고 ,일기지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꾸준한 예습, 복습은 성실성과 끈기를 몸에 배게 한다고 생각했다.
6살 때 유아원을 보냈고 ,7살에 미술학원을 일년 간 보내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피아노는 아들이 좋아해서 6살부터 6학년까지 다녔다.체르니 30번과 40번을 다 배웠다.
피아노 선생님은 전공을 시키라고 말했으나 경제력과 성공 가능성을 분석해 보니 공부 쪽이 더 나을 것같아서 포기 했다.
서예도 6개월, 한문 6개월 배웠다 4학년 때는 대학에 출강나가는 교수님께서 하는 미술학원에서 6개월간 미술을 배웠다. 누구나 다 가는 속셈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내가 전과와 문제지를 가지고 직접 공부를 시켰더니 예 체능 학원을 꾸준히 다닐 수 있었다.
학기 중에는 피아노 학원에만 가고 ,방학 때 미술이나 다른 과목을 하나 더 다녔다.
그랬더니 아들이 충분히 놀 수도 있고 독서를 많이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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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들: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내가 아들의 공부를 돌봐준 것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니 12월 생인 아들은 모든 면에서 뒤졌기 때문이었다.숙제를 해가면 별 도장을 늘 하나 받아 왔다.나는 그냥 확인 도장인 줄 알았다.
어느날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다가 같은 반 엄마인 미용실 원장에게 제일 잘하는 학생은 별을 5개 받아 온다고 들었다.그리고 아파트에 소문이 나게 글씨를 잘쓰는 학생이 우리 동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얼굴만 아는 그 엄마를 찾아 가서 그 집 아들의 노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른보다 더 글씨를 잘 쓴 것이다. 그 엄마는 지우개를 들고 있다가 글자를 성의 없게 쓰면 바로 지우개로 지운다고 했다. 그 집 아들의 노트는 별 도장이 모두 5개씩 찍혀 있었다.
그 엄마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 후 우리 아들도 글을 잘 쓰게 됐고 별도 5개 받아오고 ..나중에 고2 때는 글씨를 잘쓴다고 담임선생님이 생활 기록부에 대신 글을 쓰게 할 정도가 됐다. 지금은 생활 기록부를 모두 컴퓨터 처리를 하고 있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6년을 상이란 상은 모두 받고 다녔다.
나는 공부는 철저한 습관이며 재능이기도 하다고 믿고 있다.
남편을 닮아서 아들은 암기에 능하다 .나는 암기를 못하는 대신에 수학과 과학을 잘했다.
고등학교 아니 대학교 졸업까지 암기에 능한 사람은 유리 하다.
남편은 우려를 했지만 아들이 중1부터 집안의 풍랑이 거칠게 밀려와서 그냥 상위권 학생으로 머물렀다.그것도 초등학교 학습이 기본이 되서 그 정도라도 유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못하고 중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다.
아들은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대학입시 실패도 인생의 가장 큰 좌절이어서 아들을 겸손하게 했다.
자기보다 실력있는 학생들이 전국에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체험을 한 재수 기간이다.
재수를 통해서 소망하던 대학에 입학한 아들은 대학 때 무섭게 공부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던 것도, 대학 실패도 그 때는 막막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20여년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가족을 단단히 결속시킨 역할을 해주었다.
고난이 다가 왔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가족이 해체 되거나 성숙한 가족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에게 자랑거리가 있다면 성실과 끈기와 정직이라고 생각한다.
** 제 글은 자나온 세월의 기록입니다. 아들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가끔 있는데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지요. 자녀 교육은 30년 정도 지나야 결과가 나옵니다.우리 아들 둘이 다 30살이 넘어서 성공과 실패를 다 경험했습니다. 자녀가 총명해도 ,건강을 잃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거나 .꾸준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제 글이 3,40대 주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