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의 중3 때 담임은 윤리주임이었다.
부 반장이었던 아들 덕분에 한 중학교에서 어머니 한 명을 선정하는" 상담 자원봉사 교사" 내가 선택됐다. 전직 교사였거나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 중에 1명을 각 학교에서 선정해서 부산시 교육청에서 2주간 교육을 시켰다.
교육이 끝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중, 고등 학교에 가서 집단 상담을 하는 일을 했다. 1993년인 그때에는 부산의 제일 잘 사는 동네라는 곳이고 8학군이라고 하는곳 인데도 한 반에 4년제 대학을 나온 어머니가 2~3명 정도였다.
교육 내용은 상담 이론과 실습, 집단 토론 등이었다. 공무원 교육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기억이 눈을 천으로 가리고 한 사람이 손을 잡아주고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오는 실습이었다.
눈이 암흑이 된 상태에서 맹인의 마음이 되서 걸으면서 그 갑갑함이 전해 왔다. 참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다.
부산시의 각 중학교에서 한 명씩 온 어머니들이라서 내노라 하는 집안의 사모님들도 많았다.
개인이 하는 종합 병원장, 교수 부인, 큰 사업체의 사장 부인 등 주로 학교 육성회 회 간부인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큰 아들의 담임이 내게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우리 학교는 배운 어머니,부자 어머니들이 다른 학교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에 꼭 필요한 분이 OO 어머니 라고 생각해서 추천했습니다"
교육 마지막날 교육소감을 발표하는 좌담회를 하는데 어느 세련된 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저는 이 교육을 통해서 제가 더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반성도 많이 했어요.전교 1등 하는 아들이 3등으로 떨어지고 다음에도 또 전교 3등을 했을 때 아들에게 난 너를 포기 한다고 말했어요. 오늘 집에 가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겠어요"
나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자식에게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는 엄마를 눈앞에서 보는게 신기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가족 때문에 더 생기는 원인을 알게 됐다.
교육이 끝나고 부산시 교육청에서 주는 " 자원 상담 교사 " 위촉장을 받았다
2년간 남 중 과 여자 상업고등학교에서 주1회 씩 집단 상담을 했다.
그 후에 집 안에 큰 일들이 갑자기 생겨서 나만 더 이상 못 나갔다.
* 마음이 서로 통했을 때의 감동을 보여준 김자옥 교감선생님과 이현경 선생님
교육이 끝나구 사하구 OO에 있는 OO남중에 4명이 배치 됐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의 평범한 동네가 됐지만 그 당시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사상 공단에서 비교적 가까워서 공장이나 일용직 노동자가 많이 사는 곳에 위치한 중학교였다.
중2의 한 교실에 두 명의 상담 자원교사가 들어가서 쪽지를 나눠 준다.
칠판에 질문을 적어 주고 답하게 해서는 질문지를 도로 받는다.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알게 하는 집단 상담이었다.
1, 나의 자랑 거리는 무엇인가?
2. 내가 제일 바라고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3. 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일까?
무기명으로 써서 내면 앞자리 사람이 비슷한 의견을 분류해서 상담교사에게 준다.
결과를 보고 놀랐다. 제일 소망하는 것이 방 두 칸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제일 많았다. 그 동네는 방한 칸에 부엌이 달린 집에서 사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의 자랑 거리 중에서 방 두 칸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쓴 아이도 있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자기와 늘 함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의 생각을 알게 되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 갔을 때 호기심으로 쳐다 보는 학생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다. 앉은 자세 부터 다른 아이들하고 달랐다.
그 반의 문제아가 대부분이었다. 눈에 반항기를 보이고 있다. 어느 학생이 유독 반항기가 있어서 담임에게 그 학생에게 물어 봤다.
" 제가 담임이지만 참 근형(가명)에게는 해줄 말이 없어요. 월세 단칸방에 살고 있는데 엄마는 가출을 했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예요. 반에서 3,4등을 하고 있는데 근형이보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말을 하면서도 참 가슴이 공허해요. 학교를 마치고 음식점에서 배달을 하고 있어요. 고등 학교는 가지 않을 거랍니다. 자기가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이예요. 근형이 같은 학생을 보면 담임으로서 참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등록금도 많이 밀렸어요. 우리 학교에는 그런 학생이 좀 많아요"
그 후 공공 임대 아파트가 많이 생겼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근형이 같은 경우에 도리가 없었다. 학생들은 거칠어서 복도의 벽에 있는 쓰레기 통 문짝을 다 없애 버렸다. 10여년이 흐르고 중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 됐다.
사실 우리 나라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야 한다.
다른 것보다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남이나 부자 동네 학생들은 등록금을 계속 받아야 한다. 부모 잘 만나서 초년에 편하게 사는 학생들이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엄청난 불이익을 보며 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니면 강남의 ,혹은 부자 학부모에게 어려운 지역의 학생 1명의 등록금을 주는 자매 결연을 맺어 주었으면 좋겠다. 학생이 졸업을 할 때만 만나든지, 아니면 익명으로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들이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두 명 정도 등록금을 면제 해주었다.
남학생들이니까 담임이 나오라면 우르르 나간다고 했다.
이과 반 56명정도에서 7명 정도가 편모 슬하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별은 주로 암이나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다. 아니면 이혼 가정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학군이 좋지 않아서 좀 사는 집 학생들은 다니지 않고 동래구로 다니는 곳에 위치한 고등 학교를 다녔다.
지금 아들들이 33세 30세가 되고 보니 어렸을 때를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렵게 살았던 것이 산 교육이 된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주변에 어려운 친구들과 친구가 되서 그 친구들의 가정 형편을 자세히 알게 되고 따뜻한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게 됐다.
세상에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모들도 있다는 것을 이웃을 통해서 또는 학교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영구임대 아파트와 분양아파트, 고급아파트, 13평부터 55평까지 골고루 섞여있는 6000세대의 동네에서 살았던 15년은 우리 식구들이 터널의 시작과 끝을 통과한 고난의 시기 이기도 하다.
고달펐지만 극복하고 나니 그 세월이 참 고맙다. 두 아들의 마음을 단단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감사를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준 고마운 세월임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