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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는 가족인가? 남인가?

모과 2010. 1. 20. 16:51

결혼 33년차인 내 생각은 이렇다

동서가  서로 자매라고 생각하는 집은 화목한 집이다.

동서끼리 남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집은 무늬만 가족이지 속으로는 서서히 콩가루 집안이 되고 있다.

 

동서가 여러 명있는  경우 이렇게 판별된다.

전체 가족들이 모두 모일 때만 오는 동서는 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명절, 제사, 생신, 경조사등에만 참석을 하고 만났을 때는 아주 다정하게 말한다.그외에는 시댁에 오는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은 동서끼리도 사적인 전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동서들의 특징은 대체로 잘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자기 가족만 챙기는 특징이있다. 파출부를 고용하고 있어서 집안은 늘 정결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시집 식구들보다 친정 식구들이 더 자주 왕래를 한다.

시댁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동서끼리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전화를 주고 받는다. 간단한 반찬이라도 서로 자주 모여 먹는다.

자기보다 윗 동서의 말은   잘 듣고 예우를 해준다. 시댁에서 서열이 없이 대하면 질서가 깨진다.  모일 때마다 상대방이 서열이 나보다 높은가 낮은가를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른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수저를 들지 않는것은 기본이다.

30명 가량 모인 곳에서 자기 자식 먼저 먹이려고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본 예절을 못배운 사람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요즘엔 음식이 먹고 늘 남는데 어른 애를 구별하는 교육을 하는 교육은 밥 먹을 때가 제일 좋다.

 

 동서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댁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는  가능하면 다 참석을 한다.시부모님에게도  진심으로 대하고 좀 특별한 음식을 먹었으면 다음에 부모님께 사다 드리거나  모시고 가서 대접을 한다.

자주 못가면 안부 전화를 자주 한다.

조카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조언을 해준다. 조카들이 승진을 하거나  학교에 합격을 하면 진심으로 축하 해 준다.

어려운  형제의 자녀가 진학을 하면 서로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준다.

 

 

 다른 집의 조카가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거나 취업을 해도 축하해 주지 않는 동서는 남과 같다. 자기 아이들이 부족해서 남의 집 아이들을 축하해 주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평범하지도 못한 자기 자식은 끝없이 자랑을 하는 경우가 허다 하다.가난한 형제의  자녀인 조카들에게 등록금을 내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살아 오면서 마음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다 너무 멀어진 경우이다.

돈 쳐들여 정성껏 키운 우리 아이들보다 사교육하나 변변히 못한 조카들이 공부를 잘하고 취업도 잘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서 축하를 못해 준다는 어느 아줌마 말이 정말일까?

 

 

 

요즘 들은 말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착한 남자가 나쁜 여자와 결혼을 하면 그 남자마저 나빠진다. 그러나 나쁜남자가 착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  남자가 착해진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예요" 라는 멘트의 광고가 대박을 친 것같다.

 이글에서 여기서 동서는 남자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집에나 동서끼리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적까지 같은 곳으로 옮겨서 같은 부모의 형제들의 아내로 만났다. 그렇다면 심정적으로 가족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본인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뜻으로 서로 권유하고 의논해서  한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어야 하는 공동의 목적이 있다. 남으로 생각하고 되는대로 말을 내밷으면 도대체 무엇이 좋겠는가?  자식들이 보고 있는데 ....바르게 살아 가야 할 것이다.

 

나의 친구들이나 동네 아줌마들이나 아무 장소에서나 쉽게 시집 식구나 동서 ,시어머니의 흉을 잘 본다. 그것은 아직 시집 식구를 남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이다.

친정 어머니나 친정 동생을 공공 장소에서 흉을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은 그들은 자기의 핏줄이며 가족이니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다.

 

나는 아들 둘이 이다음에 서로 돕고 위로 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며느리들로 인해서 형제가  시집의 공식적인 일에만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시댁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있는 힘을 보태고 살고있다. 내 아들들이 보고 배우라고 노력을 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