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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공부의 신"의 김수로 같은 은사가 있다.

모과 2010. 1. 6. 15:46

김수로와 유승호가 출연한다니 무조건 드라마를 봤다.

김수로는 "울학교 이티'에서 좋은 영화인데 흥행에 실패한 한을 풀기나 할듯 연기를 실감나게 잘했다.

 

 소위 학군 나쁜 곳의  하위권 인문계 학교의 문제  학생들을 국내 최고의 천하 대학교에 입학 시키는 프로젝트라고 말 할 수 있다.

드라마 속의  학생 주인공인 5명은 모두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다.

병문(병이 든 학교라고 생각이 된다)   고등학교 법인 청산 문제로 선임된 병문고등학교 출신의 변호사 김수로는  달동네의 주민들을  철거로 부터 보호 하기 위해서 특별반을 모집한다. 5명정원으로 국내 최고 대학인 천하대학에 입학을 시킨다는 것이다.  김수로(강석호 역) 여시 촉주족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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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실제  일본 만화가 원작이기도 하기까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김수로가 그 프로젝트를 극적으로 훌륭하게 성공 할 것을 믿고 있다.왜냐하면 내게도 "공부의 신"  속의 김수로 같은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복잡한 가정 환경때문에 매일 부부 싸움을 하는 부모님 때문에 공부를 아예 안한 적이 있었다.

일차 고등학교에 낙방하고 떨어진 아이들만 가는 2차 고등학교에  입학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필기 고사가 끝나고 체력장  시험을 보러 갔다.

감독을 하는 교사에게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 선생님  이학교에서는 명문 여대를 몇 명 입학을 하나요?"

 

"글쎄  재작년까지는 1차로  학생들을 뽑았는데 작년부터 2차로 뽑으니 모르겠구나. 올 해 졸업생은 에는 아마 한명 들어 갔나.   예체능 빼고 "

아주 똥통 학교구나(그당시에는 그렇게 말들을 자주했다)! 생각이 들면서 공부가 더 하기 싫었다.  내가 나온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서는 200명이나 입학을 한다. 신입생 2,000명중에 1/10이 그 여고 출신들이었다.

 

 나는 입학식 다음날 부터 지각을 해서 교감선생님과 운동장 30바퀴를 뛰고 고등학교 생활를 시작했다.

드라마 "공부의 신"과 다른 점은 교사들이 매우 실력있었고 대부분 명문대학교 사범대학교를 졸업한 분들이었다. 특히 교장 선생님은 독립 유공자셨던 여자 이사장님의 장남으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 엘리트였다.

 

 

나는 무조건 공부가 하기 싫었다.

숙제는 물론 안해 갔다. 안해 갔으면  친구 것을 베끼기라도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다가 복도에 쫒겨 나가서 벌을 서기를 밥 먹듯이 했다.

특히 독어는 제일 싫은 과목이었다.

독어 담당 선생님은 서울 대학교 독어교육과를 나온 여선생님인데 나를 복도에 나가서 벌서게 하고는 반애들에게 치명적인 말을 했다.

 

" 만약 우리 반에 저런 학생이 있으면 퇴학을 시켰을 것이다"

나는 그때 정말 공부도 하기 싫었고 학교도 다니기 싫었다.

그런데 그 독어 교사는 단 한번도 나를 상담하지는 않았고 벌만 세웠다고 기억된다. 당연히 한번 임시에 실패를 한애들이 공부를 안하는 애들이 많았고 실력도 중학교 때 친구들과 많이 차이가 났다. 

 

우리 반 담임은 서울 시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우리를 가르치던  영어 교사가 우리 반 담임이 됐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나온분인데 4.19때 데모를 하다  폐에 총을 맞아서 수술을 했다고 소문이 들렸다. 선생님은 늘 한쪽 어꺠가 내려온 상태로 찌르러진 자세를 하고 있었다.

너무 순한 분이어서 영어 시간에는 아이들이 정말 시끄럽게 떠들었다.

 

선생님은 담임이 되자 학생들을 한명씩 불러서 면담을 했다.

내 차례가 오자  생활기록부에서 나의 중학교때 성적과  I Q를 보신 선생님은 내게 간곡히 말씀을 했다.

"네 머리로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면 평균 97까지 나올수가 있다. 성희야! 선생님과 공부 열심히 하기로 약속하자"  

 

나는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출을 하고 난 후 갈 데가 없었다. 분명히 나쁜쪽으로 풀릴 것같아서 가출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설상 가상으로 중간고사를 독감으로  전과목 모두 못봤다.

늘 달고 다니던 감기의 원인은 37세나 되서 "기관지 확장증"으로 판정받고 오른 쪽 폐를 절단하게 된다.

교장선생님의 엄명으로  시험을 안보면 모두 O점 처리를 했다.

그러나 마나  겁도 없이 시간이 지났고 기말고사가 다가 왔다.

선생님은 나를 다시 불었다.

"선생님이 전과목 담당 교사를 다 찾아 다니며 너는 내가 책임을 진다고 말하겠다. 너는 이제 부터 선생님과 약속을 하자 공부를 열시히 한다고 .."

그러나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일년동안 너무 공부를 안해서 뭐 부터 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매일 방과 후에 나를  불렀다.  지치시지도 않는지 계속 같은 말로 타이르셨다. 나는  선생님의 정성에 감동해서 굳은 결심을 하고 약속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

 

"공부의 신" 2회에서 유승호(황백현 역)가 김수로 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나는 나의 고1때의 담임을 생각했다.

 

나는  살면서 가끔 기말고사를 볼때 감독으로 들어 온 담임 선생님이 내곁에서 내가 수학문제 풀던 것을 들여다 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선생님이 부족한 제자에 대한 사랑이었다.

다행히 고1 수학은 "공통수학'이라는 과목으로 중학교 과정의 심화 학습이었다.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느라고 나는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고1말을 전교 꼴등 수준으로  고2에 진급을 했다.

첫번째 시험은 반에서 20등을 했다 64명 중에서 였다. 다음 시험은 5등을 했다.

 

 나는 70학번으로 명문  E여대에  입학을 했다.

우리 동기 생들 360명중에 45명이 입학을 했다.

예체능을 빼고 필기시험만으로는  18명이 합격을 했다.

그때는 남녀공학에는 여대생들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공부의 신'을 보면서 교사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직업이라고 다시 느꼈다. 사람을 변화 시킬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교사가 자기 책임을 다하고 애정을 다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학생들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

 

교육이 혼탁한 우리 사회에 "공부의 신"은 꼭 필요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