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근 10개월을 집에 쉬었다.
발목 아킬레스건 염증으로 물리치료를 이틀에 한 번 받았다.
병원에 안가는 날에는 동네 목욕탕에 자주 갔다.
이 지역 본토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 친하게 지내며 친목계도 하고 철따라 식품도 공동구매를 하면서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초란, 마늘, 매실, 새우젓, 복숭아, 양파, 딸기쨈,포도등을 생산자가 목욕탕 입구에 갖다 놓으면 싼 가격에 구입해 갔다.
보험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도 자주 왔다.
이곳 사람들은 나를 52~53세로 봤다.
58세라고 하면 모두 깜짝 놀랐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는 깍듯이 대한다.
반면에 나보다 아래 사람이 반말을 한다거나 버릇없이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을 몰랐다는데도 이유가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주며 "언니"라고 불러주었다.
그리고 친근한 말투로 반말을 했다.
나는 서울에서 성장한 사람으로 어린 사람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얼음물도 권유하며 반말로 정겹게 말하는 아줌마들을 보며 그들의 모임에 합류시켜 주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일찍가면 "오늘은 일찍 왔네" 했고 늦게 가면 "언니! 이제 오세요" 했다.
우리 동네 목욕탕에는 작은 황토방이 있는데 바닥에는 돗자리를 깔아 놓았다.
작은 이불들과 목침이 비치 돼 있다.
아이스박스에는 얼음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마음대로 사용 할 수가 있다.
45세 이상 70세 미만의 여성들이 오전 10시경에 와서 오후 4~5시 까지 놀다 간다.
"노인 대학"에 가기 전의 아주머니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동네 목욕탕이 하고 있었다.
황토방에서 이불을 덮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땀이 많이 나면 탕속에 들어 가서 샤워기로 찬물을 뿌리고 나온다.
몇 번 그러다 힘이 들면 평상 위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삶은 계란을 사먹는다.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서 반신욕을 하면서 수다를 떤다.
마지막으로 사우나에 들어 가서 땀을 푹 빼고 집으로 간다.
입욕권 10장에 35,000원이니 하루에 3,500원으로 시원하게 놀고 가는 것이다.
가족이 부부뿐이거나 모두 늦게 들어 오기 때문에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폐절제 수술을 했기 때문에 목욕을 1시간 반 이상하면 몸이 더 피곤하다.
잠시 그들 속에 있다가 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음료수를 파는 이모가 나를 보면 인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을 때여서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50세 정도 되는 아줌마들 몇 명이 내가 사우나에 들어 가면 슬그머니 나가는 것을 느꼈다.
황토방에 여러 명이 누워 있는데 내기 뭐라고 하자 알지도 못하는50세 정도 아줌마가 톡하고 쏘고 돌아 누었다.
"언니가 모르는 게 뭐 있겠어"
나는 그 아줌마와 한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속으로 한참 생각을 해 봤다.
이 아줌마들이 분명히 나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고 말들을 많이 했으니까 저러는구나. 나를 잘난 척하는 아줌마로 보는 구나.
그러고 참 이상한 아줌마들도 있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목욕을 가니 음료수 파는 이모와 목욕 관리사 둘이서 뭘 먹고 있었다.
습관처럼 들어 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둘이 다 먹느라고 대답이 없었다.
목욕관리사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모는 왜 나보고 인사를 안해요?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이 내게 왜 그래요 섭섭해요."
내가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었다.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이유를 말하는데 기가 막혀서 죽는줄 알았다.
" 내가 왜 언니에게 인사를 안했냐면 언니가 우리 셋이서 수다나 떨고 잠만 자빠져 잔다고 했다고 해서"
" 뭐라구요? 내가 참 남편 고향에 아주 살려구 왔는데 이건 뭐 이런 경우가 있어? 그렇게 말한 아줌마들 누구예요.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남편을 소환해야 돼. 자기 마누라가 그러구 다니는 것을 알아야 한다구. 도대체 어떤 년들이야"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음료수를 파는 이모와 때밀이 이모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요즘 목욕탕에서는 여성복도 팔아서 한 주에 한번 서울에 가서 물건을 해온다.
때미는 이모들은 내가 60년 가까이 목욕을 다녀도 저런 사람들을 못 봤다.
하루에 7~10명정도 때를 밀어도 한결같이 정성껏 경락 맛사지까지 해준다.
물리 치료가 끝나고 나는 한 주에 한 번 때미는 이모들에게 몸을 맡긴다.
일 주일 동안 몸이 가볍고 물리 치료의 효과가 있었다.
주변에서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목욕을 갔을 때 그들은 거의 대부분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 내가 말한 그이모들에게는 개인적으로 말할테니 오늘 여기서 끝내기로 해요"
음료수 파는 이모가 나를 진정 시켰다.
그러니까 몇달 전에 토요일에 사우나에서 이런 저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 목욕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는 사람들이였다.
내가 이곳 목욕탕의 풍속도가 신기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1. 목욕을 오면서 보석이 크게 달린 목걸이를 하고 오는 사람이 많다.
다른 곳에서는 하던 목걸이도 잃어 버릴까봐 집에 두고들 온다.
2. 아침 10시부터 오후 5~6시 까지 하루종일 놀면서 ,밥도 시켜 먹고 ,맥주도 먹고 하는 풍경이 재미있다.( 언제부턴가 탈의실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됐다)
그러나 90살 까지 살건데 너무 길지 않을까?
3. 공공 장소에서 너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공통의 화제가 적어서 그렇다
그런 내용으로 말했었다.
그랬더니 옆에 앉은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이 언니도 그러는데"
내 앞에 있던 53세 됐다던 아줌마가 멋적게 웃었었다.
아 ! 그 말이 와전 되서 그렇게 됐구나!
나는 다음 날 황토방의 왕 언니에게 음료수를 사다 주며 부탁을 했다.
"제가 이곳에 이사와서 모두 반겨주고 반말을 해서 나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주는 줄 알았어요. 언니가 제일 나이가 많으니까 잘 지도 부탁드려요."
하며 그 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 나이가 들면 그져 젊은 사람들에 맞춰 줘야 혀. 그져 그러려니 하고 지내야 하는 겨"
65세의 최고참 언니에게 말하면 다 해결이 되게 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 행사 때문에 약 10일 목욕을 못 갔다.
오래간만에 목욕을 가니 음료수 파는 언니부터 반색을 하며 반겼다.
:언니 ! 그동안 왜 안왔어요?"
"충대에 가서 책 파는라고 못 왔지. 집에 오면 7시가 넘으니까 올 수가 없잖아요"
이제 나는 우리 동네 목욕탕의 팀원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인사를 하며 다니고 있다.
서로 생각 할 수 있는 시간도 됐다고 믿는다.
그래도,정 많고 인심좋은 우리 동네 목욕탕이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