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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년], 서울에서 길을 잃다.

모과 2009. 8. 20. 15:18

1981년 2월까지 서울에 살았다.

그 때는 강남이 생기기 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강남에는 극동 아파트가 외롭게 서 있었고 말죽 거리에는 은마아파트가 새로 생겼었다.

서울에서  자랐으며 초, 중, 고, 대학교를 서울에서 나왔으니 나는 서울 여자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에는 명동과 무교동과 신촌이 대학생들의 주 무대였다.

명동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었고  그 사람 사이를 요리 조리 잘 피해 다녔다.

그랬던 내가 부산을 거쳐서 대전으로 이사를 하면서 30여년이 지나는 동안에 [서울 촌년]이 돼 버렸다.

 

가끔 서울에 갔지만 동생집에 있다가 내려오는 정도였다.

이번에는 석촌에 사는 시고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서 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했다.

 

동생 집인  휘경동 아파트에서  장안 4동 주민 센타 까지 걸어가서 2015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 [사가정역]에서 내려서  지하철로 석촌까지 가야했다.

표를 팔던 직원은 다 사라지고 [1회용 발매 교통카드 충전기]가 있었다.

[석촌]까지 찍어야 하는데 그만 환승역인 [건대역 ]을 찍었다.

그런데 차비 1000원에 보증금 500원이라고 뜨고 합계 1,500원이었다.

[보증금]이 도대체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승객이 그냥 도망 갈 까봐 보증금을 500원 만들어 논 것 같았다.

        

 2000원을 내고 500원을 거스러 받았다.

도착해서  오른 쪽 에 있는 기계 에서 [보증금 환급]을 500원 받았다.

 

[건대역]에서 환승을 해서 2호선을 타고 [잠실] 에서 다시 환승해서 8호선을 타고 [석촌]에서 내려야 한다.

 

 지하철 8호선 환승역인 잠실의 [갈아 타는 곳]은 걸어서 버스 한 정거장은 됐다.

 

 8호선을 타러 계속 가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

 서울은 너무 사람이 많다. 오전 11시였는데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 사람들이 행동이 빠르고 똑똑한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석촌역]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삑 소리가 나며 길이 막혔다.

어디서에서인가 직원이 나타나서 100원을 더 내라고 하며 카드에 100원을 충전 시켜주었다.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주는 기계에 카드를 넣으니 500원이 나왔다.

와! 출,퇴근 시간에는 상당히 복잡하겠다.

서울 사람들은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로 대부분  통과 하겠지만.

 

 석촌에 도착하니 안산에서 너무 일찍 도착한 시누이 형님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ㅎㅎㅎ.

 

석촌초등학교 앞에 있는 시고모님댁에서 점심을 먹고  집 근처에 있는 [백제 유적지]를 구경하고 돌아 오는데 문제가 생겼다.

 

 서울을 가는 데 마다 사람으로 넘쳐 났다. 지하도에서 사람들 때문에 멀미가 나려고 했다.

 

 

[잠실역]까지 시누이 형님과 함께 와서 각자 헤어졌다.

다시 잠실-건대역-사가정 역에서 내렸다.

보증금 500원을 기계에서 돌려 받았다.

사가정에서 2015번을 타고 가는데 가도가도 [면목동 OO] 이라는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면목동이 굉장히 넓은 것 같았다.

이상해서 기사님께 물어 보니까 반대 쪽에서 버스를 탄 것이다.

내려서 반대 편에서 다시 2015번을 타고 앉아있는데 시누이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자다가 부평을 지나서 내렸다고 .서로 한바탕 웃었다.

 

나는 심각한 길치다.

여러 번 간 길도 마치 처음 가보는 길 같다.

동생한테도 전화가 왔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이상했다며....^^

 

나는 다시 서울에 살고 싶지 않다.

도대체 환승 하는 곳이 왜 그리 길고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물가도 집 값도 비싸다.

그저 ~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이 딱 내게 맞는 옷같은 도시이다.

조용하고 여유있고 평화로운 곳이다.

 

서울 깍쟁이가 30년 동안 지방에 살면서 완전 촌년이 됐다.

그러나 매력적인 촌년이라고 생각한다.

넉넉한 마음과 좀 부족한 기억력과  그러나 총명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는 노년이 좋겠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해지려고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가족과 나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곳은 꼭 서울이 아이어도 좋지 아니한가!

나는  모든 것에 여유가 많은 대전에서 계속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