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남편에게 나는 어떤 아내일까?

모과 2009. 3. 31. 11:04

살면서 한번쯤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심도 깊게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느껴야 하는 하는 때가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생에 대해서 파고 들면 우울증과 자기 파괴만 있을 뿐이다.

인생은 그저 주어진 날 들을 살면 된다. 따지지 말고 .

 

1. 초등학교 어린이가 자기 어머니가 제일 예쁘지 않다고 말하면 철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가 제일 예쁘지는  않다고 했다.

 

       * 큰 아들 유치원 졸업식에서 시어머니가 혼수에 넣어주신 한복감으로 해 입은 한복과 두루마기.

이 때 만해도 나의 인생에는 봄날만 있을 줄 알았다.

 

  *큰 아들 초등학교  1학년,막내 아들 5살 때 , 이 때는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다.

 

2. 17살 때는 부모와 자식의 힘이 평행을 이룬다고 한다.

 

힘도 ,지식도 비슷했다가 18세 부터는 자식이 힘도 지식도 많아 지기 시작한다.

부모는 배운 것을 급속도로 잊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 물론 계속 책을 읽고 문화 생활을 하는 부모는 좀 다르겠지만 자식과의 30년이상 차이나는 세대 차이는 극복에 한계가 있다.

이 때 심정적으로 자식을 독립시키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3. 대학을 가며 집을 떠나고 ,군에 갔다 오고 ,취업을 하니 일주일에 두 세 번 혹은 한번을 전화 통화로 만난다..

나는 그냥 믿어 줄 뿐이다.

자식이지만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도 모르고 , 뭘 먹고 입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아들에게 전화가 오면 할 말은 두 가지 뿐이다.

" 밥은 먹었니?"

" 직장에서 힘들 게 하는 사람은 없니?"

이제 자식에게  에미는  걱정의 대상이 됐다.

" 엄마! 건강을 위해서 살 빼세요. 운동을 꾸준히 하세요"

 큰 애는 막내 아들에게 엄마의 체중관리를  살펴보고 관리해  주라고 전화를 했다.

두 아들이 다 새벽 6시 반에 출근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 온다.

 

4. 힘들수록 단순하게 살아라.

 

막내는 대기업에서 하는 소형마트에 다니고 있다.

계속되는 오픈으로  본사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전문대졸 사원을 공채로 채용하고 있다.

[잡코리아]에 공고를 내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는 사람들도 많다.

부산에서 4년제 대학 [유통관리학과]를 작년에 졸업한 막내 친구도 아들이 정보를 줘서 함께 취업이 됐다.

한 번에 100명 가량 채용하는데 한달안에 20명이 그만 둔다.

마트의 모든 업무는 매출 향상에 있다.

신입 사원은 마트의 시스템을 배우며 매장관리,판매, 고객응대,알바파트타이머의 관리,재고 관리를 배우고 있다..

새벽 7시 까지가서 물건을 받아 내리고 매장에 깔고 ,낮에는 팔고 ,재고 조사하고 ..모두 매출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일이 많아서 늘 4~5시간을 더 일하고 온다.

일을 하면서 힘도 들고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고, 내가 이일을 평생 해야 하는가? 회의가 많이 생긴다고 했다.

 

"단순하게 생각해라. 네친구들 같이 증권회사에 가서 고객을 일대 일로 대해서 설득을 하고 금융 상품을 파는 일은 더 싫다며.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돈을 주며 배워야 하는 것 뿐이다"

 

" 그래서 말없이 다니고 있잖아. 하지만 힘든다고 말도 못해요? 엄마가 말하는 것하고 현장은 다르다구요. 엄마! 밥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하며  컴퓨터에 앉는다.

 

막내 말이 맞는다. 시대가 변해서 내가 하는 말이 현실과 다를 수도 있겠지.

나도 마트안의 서점에서 2년가량 근무한지가 얼마 안되서 느낀점을 말했는데 졸업후 바로 취업이 되고 연봉도 괜찮은 편이지만 막노동같은 일을 되풀이하니 회의가 당연히 생기겠지.

 

나는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으며 막내아들을 마음에서 좀 더 내려 놓았다.

너도 이제 나의 마음 속에서 놓아 주어야겠구나.

그냥 믿어주고 바라만 봐야겠구나.

 

5. 부부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다.

 

며칠 전 할머니 제사에 가니 시댁 형제들도 모두 50이 넘었고 큰동서는 65세인데 아픈 몸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전만 붙이게 해 놓고 기다렸다.

결혼 생활을 한 세월이 17년에서 40년이 가까운 사람들이다.

둘 째 형님이  주어진 숙제들을 거의 다 풀어서 지금이 제일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 날로 다시 돌아 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부부생활을 30년을 넘게 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은 남편의 소중함이다.

 

자식은 이미 내가 관여 할 수 없게 어른이 됐고 내가 의지 할 것은 남편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혈육에게 말로, 돈으로 상처 받을 때 더욱 남편이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며,미워하며, 증오 할 때도 있었고, 안됐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미워 할 때 같이 미워하고 내가 증오 할 때 남편도 그리 했을 것이다.

나는  늘 내 입장에서만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호소 했었다.

남편을 원망도 많이 했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 와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니 비로소 깨달았다.

[남편에게 나는 어떤 아내였을까?]

 

성실하고 잘 참고 가정을 지킨 것은 고맙지만 너무 억척스럽게만  보인 적도 많았을 것이다.

신혼 초에는 상냥하고 곱고 착했던 아내의 모습이 여러 번의 큰 수술로 약해지고 살도 많이 찌고 성인병으로  약간은 중성의 씩씩하기만 아내가 돼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무  아픈 시간이 많은 아내가 큰 수술을  할 때마다 안타까워서 운적이 두 번이나 된다.

건강한 아내였다면 더 좋은 음식, 더 깨끗한 집안에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

 

남편이 아니면 누가  60이 다 된 나에게 [여자다움]을 기대하고 사랑해주겠는가?

 

이왕에 하는 고생 좀 더 참고 할 것 남편에게 너무 많이 짜증을 하고 화를 낸 것을 반성한다.

이제 내가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생체적인 수명 30년을 함께 할 소중한 사람이다.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일하는 남편을 위해서 나도 건강하고 좀더 다정하게 대해줘야 겠다.

시댁에서 농담으로 남편에게 [설처가]라고 했다.

아내 앞에서 설설 기는 남편이라는 말이다.ㅎㅎ

그런데 남편만이 아니고 시댁 형제의 내력이다.

조용하고 자애로운 애처가라고 할 수가 있다.

 

남편도 다시 태어나면 나와 결혼을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그만큼 나도 남편도 인생길이 고달펐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삭히며 참고 살았다. 자기가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짜증을 낼 남편이라도 있었지만 남편은 혼자 외롭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앞으로  남편에게 잘해서 이세상을 떠날 때 쯤이면 서로 잘 만났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하게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