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 아저씨가 큰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은 큰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였다.(이정보 할아버지인데 이북사투리로 점보라고 불려지게 됐다.:가명임)
짐도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새 그냥 살게 되었다.
가축병원 안 쪽으로 방이 하나 있는데 주인이 버린 강아지 세 마리가 큰아버지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고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개를 좋아 하지 않는 점보아저씨는 2월의 추운 날씨에 가축 병원안의 가죽 쇼파에서 주무셨다.
전기 화로를 켜놓고 지내시며 고생하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에게 돌아 갔다.
큰 아버지는 갑자기 타살 된 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아서 소주를 한 병 사다가 반병이나 한병을 마시고 좀 주무시다 깨어나면 다시 편의점으로 가서 소주를 사오시곤 했다.
큰집에는 자녀가 없었고 서울에 사는 형제는 여동생뿐인데 백화점 식품부에 근무를 했다. 동생이 직장에 가 있는 동안에 큰아버지 혼자 계신게 걱정이 되었다.
큰 상처를 받은 큰아버지께 점보아저씨가 와 계시는 것이 좋겠다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점보아저씨도 6.25때 월남해서 육군이 되었고 큰아버지와는 군대에서 만난 친구였다.
나이는 큰 아버지보다 한 살 아래인 86세 였다.(2년전에)
점보아저씨는 보훈처에서 연금을 받고 있는 국가 유공자였다.
그 해 미지급 되었던 남은 보훈 퇴직금을 370만원을 받게 됐다.
손주가 유명 대학교에 합격해서 등록금으로 주기로 아내와 약속을 했었다.
보훈 가족들이 모이는 노인정 같은 곳이 있는데 돈을 지급받고 늘 그렇듯이 노인정에 들렸다.
그 곳에서 안면이 있던 70세가 넘은 할머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그 돈을 모두 빌려 주었다. 급하다며 며칠만 쓰고 주겠다는 것이다.
그 꽃뱀 할머니의 남편도 전사한 국가 유공자여서 그 노인정에 나오곤 했다.
그 며칠이 몇 달이 됬고 급기야 집에 있는 할머니까지 알게 되었다.
젊어서도 여자를 좋아해서 자주 바람을 피었고 술이 취하면 할머니를 때리고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는 점보아저씨는 늙게 되자 집에서 대접을 밪지 못하게 되었다.
|
* 사진 출처: 다음 카페: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의 모습.
점보아저씨 가족들은 몰래 이사를 가버렸다.
큰 아버지 집에서 겨울 털신을 신고 86세의 노환이 든 몸을 이끌고 보훈 노인정으로 돈을 빌려 준 할머니를 찾아 다녔다.
할머니는 한번에 10만원씩 몇 번 주고 노인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부천 어디에 산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가서 며칠 함께 살아 봤지만 취사를 할 수 없게 된 허름한 집에서 오래 살 수가 없었다.
노환이 와서 걷는 것도 힘이 들었고 대변이 급하면 바지에다 그만 실수를 해서 여동생이 세탁기로 빨아서 말려 드린 적이 몇 번 있었다.
돈도 없으면서 여동생에게 고맙다고 2,3만원을 쥐어 준적이 있었다.
동생은 그 돈으로 아저씨의 속옷과 겉옷을 돈을 더 보태서 사드렸다.
한번은 노인정에 갔다 오다가 길을 잃어 버려서 경찰이 점보아저씨의 지갑을 보고 가축병원으로 연락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서울에 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관내 경찰서에 가서 사연을 신고했다.
가족이 몰래 이사를 간 것은 할 수가 없는 일이고 가족들이 가출 신고가 없는 이상 찾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여동생이 점보아저씨 집의 전화 번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화를 계속 받지 않다가 계속했더니 받았다.
할머니가 직접 받았다.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만약 여기 계시다 돌아 가시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 아닙니까?"
내가 항의 하듯이 물었다.
" 거기서 있다가 죽더라도 원망 하지 않을게요.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하지요. 아무도 원망 안해요"
" 아저씨께서 자꾸 길을 잃어 버리는데 길에서 돌아 가시면 자식들 직장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따님은 교사이고 아드님은 국군 장교라면서요. 모시고 가시지요. 불도 제대로 들어 오지 않는 가축 병원 쇼파에서 주무셔서 몸이 너무 나빠지신 것 같습니다."
큰 아버지는 친구가 안돼 보일 때는 틀니도 해주기도 했지만 점보아저씨가 큰 아버지에게 자꾸 돈을 달라고 해서 두 분이 자주 다투었다.
점보아저씨네 자녀들이 회의를 해서 할머니하고 고향이 가까운 파주의 변두리동네에 작은 빌라를 얻어 주었다.
북에 아내와 자녀를 두고 내려 온 아저씨는 술만 먹으면 가족을 찾아서 가겠다고 지금의 할머니에게 말하곤 했다.
여동생과 큰 아버지가 찾아 가보니 빌라를 깨끗이 청소해 놓고 두 분이 살고 계셨다고 했다.한번은 가축병원을 간다고 나갔는데 돌아 오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엉뚱하게 살고 계신 동네의 반대편으로 걸어 가셨다 경찰의 보호로 돌아 오셨다고 했다.
노환과 치매가 왔다 갔다 하셨다.
파주에서 서너 달을 살고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동생과 큰아버지가 가서 본게 마지막이었다.
장수 사회라서 노인인구가 많은 것을 느낄수 있을 정도로 낮에 노인들이 많이 다닌다.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집집마다 노환으로, 치매로 아픈 어르신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며느리들도 모두 환갑이 지났는데 시부모들이 편찮으시니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가족도 노인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이제야 말로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인 복지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 점보 아저씨가 돌아 가신지 벌써 2년이 지났다.
큰아버지가 가축병원을 그만 둔 것도 그 때 쯤이었다.
돌아 가신 분이지만 가명으로 했고 살다 가신 곳도 파주가 아니고 다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