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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백만원 송금 했어요.

모과 2009. 1. 22. 16:23

추석 상여금이 나오면 엄마 좀 많이 드릴게요.

했던  큰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백만원 송금 했어요]

상여금을 받을 때마다 큰 돈을 송금하는 아들에게 늘 미안한 에미다.

 

이사를 한지 두달이 다 돼도 발목이 완쾌 되지 않아서 직장에 못가는 엄마를 생각해서 큰 돈을 보냈다.

어제 막내 아들은 졸업 전에 입사한 회사에서 받은 급여를 수습 기간 동안 모두 엄마에게 드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엄마 몸을 제발 건강하게 치료를 하라고 했다.

정직원 발령을 받으면 매달 50만원씩 20개월을 친척에게 빚을 갚겠다고 했다.

형이 그 동안 집에 많이 도움을 주었으니 나머지는 막내가 갚겠다고 했다.

그러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빌린 빚은 거의 다 갚게 된다.

 

사업 실패로 빚을 많이져서 최저 생활비만 남기고 빚 갚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제적인 고통을 모르고 살았던 나는 40대를 치열하게, 가난하게 그리고 운명과 싸우며 두 아들을 키워야 했다.

여성으로서 나를 의식하고 나의 [자아 실현]따위를 생각 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런 일이었다.

 

남편은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 와서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될 서점을 위해서 5개월 째 쉬는 날 없이 수고를 한다.

그동안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보답하려는지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보다 더 잘하고 있다.

밤 11시에 서점을 마치고 시내에 있는 막내 아들의 회사로 데리러 간다.

대중 교통이 끝난 시간이어서 택시를 타고 와야 하는데 남편이 데리러 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보다 아빠하고 더 많은 대화를 하며 [부자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갑자기 낭떨어지 밑으로 굴러서 떨어진 것 같은 고난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두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까지]를 목표로 앞만 보고 살아 왔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경제적인 고난은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왔다.

견뎌야 하는데 ...방법은 늘 최선이었고 힘들었고 ,때로는 머리에 마비가 올 것 같이 막막했었다.

그러나 살아졌다.

수없이 죽고싶다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그것은 너무나 비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내까지 취업이 되고 먹고 사는데는 걱정이 없어지니까  긴장했던 몸이 맥이 풀려서 계속 아팠던 것이다.

엄마의 자리.

아들들에게 에미는 늘 안스럽고 걱정이 되고 고맙고 돌봐야 하는 존재로 변했다.

이제 아프지 말아야 할텐데...

 

핸드폰이 울려서 받으니 큰 아들이었다.

[엄마! 주무셨어요? 백만원 송금했어요. 체크카드 있지요? 엄마! 주무세요]

구정 전날 고속 버스를 타고 오겠다고 하며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끓었다.

 

나는 그제야   아까 보낸 문자를 보았다.

이사하고 처음 내려 오는 것이다.

아들도 몸이 과로로 매주 한의 원에 다녔고 년말이라서 회사일이 바쁘니 명절에 내려 오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세번 전화를 하는 아들.

마음속에 엄마를 담아두고 씩씩한 엄마 40% 여린엄마 20% , 성실한엄마 20% 아픈 엄마 20%로 생각하고 때에 따라서 엄마를 대하는 아들.

 

나의 노후는 이제 나를 위한 것도 있겠지만 ,두아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회사 다니느라 힘든 아이들에게 아파서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이번 명절에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게 된다.

즐겁고 복된 대화를 많이 해야지.

함께 큰집에 가서 할아버지를 뵙고 행복을 선물해 드려야 한다.

10여년이 넘는 기간을 우리 가족 때문에 걱정을 드렸기 때문이다.

아들들아!

고맙다.

 

고난을 결사적으로 극복하고 나니 ,세월이 흘렀고 이제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다.

묵묵히 고난을 견뎌 준 우리 가족 모두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