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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하고 싶은게 많단다.

모과 2009. 1. 19. 13:21

아들들아!

20살 때 학교 앞 미용실에서 본 여성동아에서 40세의 박원서씨가 당선자라는 기사를 본 후 엄마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글짓기를 해서 상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하고 전공도 과학이라서 마음 속으로만 꿈을 키우고 있었지.

대학 졸업 전에  결핵성 늑막염으로 결혼도 취직도 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됐을 때,

나는 매일 저녁 해질 무렵이면 동네 뒷산에 올라 가서 지는 해를 바라 보며  인간의 본능적인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일년을 결핵약만 먹으며 누워 있으니 별별 우울한 생각과 무기력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긍정적인 것에 몰두 하면서 이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야지]..곰곰히 생각을 한 후 생각이 난 것이 [장편소설]을 써 보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문예창작을 배우지 않었으니 그냥 내 생각대로 썼다.

 

그당시 일간신문을 광고면까지 샅샅이 보곤 했는데 광고면에 난 한 줄의 기사[교사 구함,경기도]를 보고 평택행 고속버스를 타고 찾아 간 학교에 취업이 됐다.

교사가 많이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쉽게 취업이 됐다.

 

학교 앞에 하숙을 정하고 퇴근하면 글을 계속 썼었지.

그다음 해 동아 일보로 소설 쓴 것을 우편으로 보냈다.

[한번 해보는 거야 ]하면서

 

당선작은 아니었지만 본선에 오른 8편에 있었다.

김주영,강신재,그리고 또 한명이 심사위원이었다.

심사평은 [서술은 명석하나 구성이 약하다]였었지.

 

그 다음 해인 1978년 2월에 결혼을 하고 학교도 안양으로 옮겼다.

그해 12월에 큰애를 낳고 소설은 나의 마음의 꿈으로 묻어 두었다.

막내를 임신하고 아빠가 부산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갔다.

그후 13년을 전업 주부로 살면서 복직하려고 했으나 사회가 달라져서 교사가 남아 도는 거야.

32세였던 엄마는 자기 갈등의 고통을 심하게 겪은 후 마음을 확실히 정했단다.

[나보다 똑똑하게 두 아들을 키우자]

그후에 아빠가 갑자기 교수 재임용에 탈락이 되고 살길이 갑자기 막막해 졌다.

아빠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공부만 해 왔던 사람인데, 자신있다고했다.

 전재산이었던  21평 아파트를 팔고 전세금을 제하니 3,500만원이 남았다.

아빠는 그돈으로 3,500만원의 34평 아파트로 전세를 가자고 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본능적으로 느낀 엄마는 미분양된 영구임대 아파트 13평을 3순위로 신청해서 입주를 했다.

남은 돈으로 그동네 제일 좋은 아파트 상가에 [책대여점]을 개업했지. 그 때가 큰애가 고1이었고 막내는 중 1 이었지.1994년 12월 말 .

그후부타 12년을 장사를 하면서 아침 11시 부터 밤 12시 30분까지 일했고, 12년동안 단 3일을 쉬었지.

일요일에 12시 부터 5시 까지 알바를 쓴 것은  큰애가 취직되고 부터였다.

12년동안 남의 글들을 수없이 읽었고 ,책방을 찾는 아이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알아 내서 대중 문화 중에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책방에 혼자 앉아 있으니 드라마, 뮤직, 예능 프로를 자주 보게 되고 신문도 옆 상점의 것 까지 모아서 하루에 5~7개를 읽곤 했다.

 

나는 이때 그냥 아이들이 좋고 고마워서 그들을 이해 하려고 눈높이를 맞추었는데 ,그것은 훗날 내게 큰 보너스를 가져다 주었지.

 

근 10년 이상을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던 아빠가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서점의 영남권 관리자로 취직이 된 후 엄마의 생활도 바뀌었다.

아빠는 참 성실하게 거의 쉬는 날이 없이 일을 했다.

대형마트안의 대형서점의 첫출발을 한 회사는 전국에 약 30개의 서점이 있었고 서적코너도 60개이상 가지고 있는 갑자기 성장이 된 중소기업이며 출판사였다.

이회사에서 전국의 유명 국,사립대학교에서 [대학생을 위한 책바자회]를 했는데 직원이 부족해서 엄마가  임시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마침, 책대여점이 사양길이어서 정리를 한 직후였다.

 

전국의 12개대학의 순례가 시작 되었다.

책방을 하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배운 말투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하면서 기록적인 매출을 냈다.

그 학교를 떠나는 날이면 내가 머물던 학교의 장점을 또렷하게 기억을 했다가 글로 써서 약 30명의 학생과 교수에게 마지막 날에 주고 왔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 눈 앞에 나타났다.

엄마의 블러그의 글들을 다 읽고 엄마가 내는 매출을 보고 본사의 사장님이 부산의 대형마트에 새로생기는  120평의 서점에 55세의 나를 점장 발령을 내주었다.

그곳에서 17개월을 일하면서 컴퓨터 실력도 늘었고 블러그에 글도 많이 쓰게 됐다.

 

작년 9월중순에  아빠가 꿈에도 오고 싶었던 고향에서 서점을 하게 됐다.

아빠 형제들중에서 어렵게 사는 3형제가 법인으로 만들고 할아버지가 법인 이름을 [영재서림]이라고 지어 주셨다.  서점 간판은 본사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프렌차이즈 서점이란다.

고모가 대표이고 아빠가 점장,작은 아빠가 과장 ,엄마는 알바로......다른 직원 3명과 함께.일하게 됐다.

 

이제서야  나를 돌아 볼 시간이 왔는데 58세인 낯선 할매가 서있네.

내앞에 나타나는 운명과 싸우기도 하고 가슴을 벌벌 떨면서 기도하는 때도 있었다.

 

이제 막내까지 취업을 하고 나니 엄마의 인생을 살고 싶다.

사람의 사회적 수명을 70으로 본다면 엄마에게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동안 배우고 싶어하던 것을 하나씩 배우겠다.

 

1.첫번째로 성당에 가서 상담을 하고 교리 공부를 신청하고 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가족이 다 성당에 가도록 하고 싶다.

 

2.두번째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할 것이다.

*그동안 탈락을 했던 [논픽션]에 다시 응모할 것이다.

*신춘문예에 도전을 할 것이다.

 

3.다음에는 [논술교사]자격증을 딸 것이다.

*미래의 손주에게 좋은 교육을 하기위해서다.

*영어 회화를 배우고 싶다.

* 재봉을 배우고 싶다. 가족의 셔츠나 바지를 만들어 주고 싶다.

 

4.*요양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좋게 사용 할 수 있을 것같구나.

 

5. 서점에는 구정을 지나고 2월 초부터 나가서 일을 해야겠다.

*자식에게 도움받는 쓸쓸한 노후가 되지 않도록 정년이 없는 직장이어서 좋다.

 

 

엄마는 너희들 외할머니가 엄마 나이 25세, 할머니가 45세에 갑자기 돌아 가셔서 45세를 넘길 때 무척 힘이들었다.

70살까지 12년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인생에 단 한편 장편소설을 쓰기위한 준비 기간으로 살겠다.

70살 이후부터는 성당에서 하는 봉사를 따라 다니면서 엄마가 할수 있는 봉사를 하다 때가 되면 죽고 싶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아빠는 장수 집안이라서 그럴 가능성이 더 많겠지.그러면 아빠는 시골집에서 아빠 형제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 될 것이다.

만약 아빠가 먼저 가신다면 엄마는 서울에 있는 이모와 살게 될 것이다.

이모나,나나 서로 친구이며 자매이며 서로 돕고 살게 돼있으니까.

 

아들들아!

엄마는 생활이 어려워서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모두 엄마의 취향과는 다르게 살았다.

엄마가 사치하지 않고 책만 좋아하고 ,음식 솜씨도 없지만 ,취향이 싼 것만 좋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해서, 아니 더 나아가서는 너희들에 대한 집착을 5%만 가지고 살기 위해서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하고 살겠다.

그것이 너희들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너희들이 집이 어려워도 가난을 못느끼고 자랐다고 해주었지.

엄마에게 고맙다고.....엄마가 돈이 없으면 비싼 음식 먹지 않고 비싼 옷 입지 않고 책만 좋아 한 것이 그 비결이었던  것 같구나.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매일 돈이 없다고 징징 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마음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이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 약속한 날에  갚았지, 돈이 없다고 징징 대지는 않았던 것 같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늘 내 꿈을 언젠가는 실현 할 것을 생각하고 살았다.

마음속에 꿈을 키우고 있는 사람은 나이 들었어도 마음은 늘 푸르단다.

집중 할 질 좋은 취미를 가진 마음은 항상 부자인 사람이니까.

 

아들들아!

이제는 너희들이 엄마의 꿈을 실현 시킬수 있게 도와 줄 때인 것 같구나.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는 일은 엄마가 행복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 엄마도 결혼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생각해 드리지 못하고 살았다.

너희들도 살기 바쁘고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서 부모 생각을 늘 할수 없을 거야.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너희들과 상부상조하면서 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