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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근무하는 아들이 사온 미국산 쇠고기

모과 2008. 12. 30. 15:49

매일 밤 12시가 되야 집에 오는 막내 아들이 미국산 소고기 구이용 팩을 두 개나 사가지고  왔다.

같은 시간에 서점에서 퇴근하는 아빠와 매일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에 있었던 일을  서로 말한다.

오늘은 소주 세 병과 상추,마늘,깻잎을 사와서 깨끗이 씻더니 술상을 봐가지고 왔다.

*(우리 집은 샐프서비스가 많다. 남편과 아들들은  먹은 후 설걷이도 해 놓는다. 요즘 내가 발목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은 결심으로 다이어트를 해야하기 때문에 함께 먹지 않은지 며칠이 됐다.

미국산이라니까 전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미국산 수입 갈비살 구이용] 이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광우병!!] 소리가 크게 들려서 막내에게 말했다.

" 모두 안먹는다고 촛불 집회도 했는데 왜 그 소고기를 사왔냐?"

" 마트에서 파니까 믿고 먹어야지. 엄마 ! 내가 안먹으면서 남에게 팔 수 있어요?"

" 당신은 정부와 대통령 에 대해서 불만이 많으면서 왜 그걸 먹어요?"

" M B 가 믿으라니까 한번 먹어 보는 거지."

남편이 고기 한점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아들에게 한 잔 따라 주었다.

" 이이구, 또 30년 후에 머리속이 구멍이.." 말하고 있는데 남편이 째려 보는 것 같아서 말하다 말고 그만 두었다.

 

" 제일 위험한게 뼈인데 이건 갈비살이네. M B 가 먹어도 된다니까...그런데 이것 너무 싸구나. g에 얼마야?'

남편은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이 사와서 먹고 있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둘이서 두 팩의 고기를 다 구워서 먹었다.

남편은 한나라당을 신임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으며  막내가 직장이야기를 했다.

" 엄마! 나랑 같이 입사한 애는 결국 그만  두었어요. 사람 잘 못 만나면 힘든가 봐요. 바로 위의 상사가 한 살 윈데 힘들게 했나  봐요."

막내 아들은 새로 오픈하는 마트로 발령이 나서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30분에 출근을 하고 퇴근은 밤 12시나 새벽 1시가 돼서 하곤 했다.

너무 바빠서 점심 한끼 먹고 어쩌다 보니 저녁도 못 먹고 퇴근을 몇 번 했었다.

 

내가 점장님께 식사하고 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부족한 점이 많은데 많은 지도 부탁드린다고 하라고 권유했다.

네가 사회에서 처음 만난 상사가 점장님인데 그 분 눈에 네가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워야 그 직장에서 성공 할 수있다고 남편도 말하였다.

그리고 만약 대졸 공채 사원이 너 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오더라도  대접하며 잘 지내라고 했다.

역시 점이 너무 바빠서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점장은  다음 날  밥도 사주고 퇴근 할 때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이 먼데 왠만하면 차를 한대 사지 그러냐?" 점장이 묻는 말에 막내가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 집이 차를 살 형편이 안됩니다. 집도 월세고 빚도 빨리 합심해서 갚아야 해요."

'자네는 대졸 공채 최종 면접까지 봤는데 전문대졸 채용으로 입사해서 힘들지 안겠어?

'제가 대졸 면접에서 스팩좋은 아이들과 면접을 본 것으로 만족합니다.제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거든요. 저보다 똑똑한 애들도 많이 떨어졌는데요.저는 모든 유통회사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다른 데 갈 데도 없어요. 저는  회사에  끝까지 열심히 다닐 거예요."

'그래. 대졸 입사한 사람들은 이직율이 좀 높아. 대학원 간다,유학간다 며 많이 그만 두지."

막내의 솔직함과 친근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한다.

나는 막내 아들에게 말해 주었다.

한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몇 개월 안에 업무를 다 마스터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워야한다. 회사에 간 순간 모든일이 업무라고 말해주었다.

 

 

지방 국립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인 아들의 친구들도 대부분 취업이 됐습니다.

동양종금, 유한양행, 현대자동차 인사과,동부화재, 삼성카드,.우리 막내는 4년간 장학금을 한번도 못 받았습니다.

같이 다닌 친구, 후배들은 모두 장학생들이었지요.

취업이 힘들다고 해도 살펴 보면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 하나는 찾을 수 있습니다.

남편의 고향에 돌아 와서 막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을 생각하고 2001년도 대전의 국립대학으로 유학 보낸 것은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지방 국립대학교.

 자기만 잘 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지방 대학생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