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정 사진은 곧 다가 올 추운 겨울을 견딜 누나에 대한 배려로 털목도리를 두른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이해는 하나, 잘못된 선택이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15년 전 제가 겪은 일입니다.
도저히 제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서 터졌습니다.
불행은 쌍으로 온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것도 믿게 됐습니다.
화병[우울증]:의사가 홧병이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어떤 것이 제일 화가 납니까?]
의사의 첫번 째 질문에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분노가 발산 되듯이 입에서 말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약 40분을 의사는 묵묵히 경청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항우울제를 조제 해 주었습니다.
살아 가면서 머리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가장 큰 고통은 [정체성의 혼란] 이었습니다.
내게 일어 난 사건 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절대 고독]이었지요.
상대방에서,아니면 내스스로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 지게 됩니다.
그렇게 많이 오던 전화가 뚝 끓겼고, 두 아들과 나 뿐인 것같았습니다.
힘든 일을 겪은 후유증은 남편과 몇 년동안 별거하게 했고 다시 결합했을 때 지나간 과거의 상처가 진실된 화합에 방해가 됐습니다.
머리 속은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 그냥 좀 괜찮다가 [죽고 싶다]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는을 뜨면 가슴이 철석 내려 앉으며 ,갑자기 밀려 오는 불안감이 온몸에 휩싸이며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서 이불까지 젖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자식들이 책임감으로 다가 오고 [자기 최면]을 계속 걸으면 평범한 일상의 모습 같이 됩니다.
마음 한구퉁이에는 불안이 자리 한 채로.
사람들은 내가 늘 밝고 명랑한 줄 알았습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주로 내가 화난 문제에 대해서 계속 혼자 떠들고 나서 항 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 받고 끝났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한 달을 다니면 깨닫게 됩니다.
화가 나서 마구 떠들고 나면 오히려 가슴 속을 가로 질러서 횡한 바람이 스쳐 지나 가는 것을.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만나는 데 내 문제를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 들이겠는가!
깨닫게 됩니다.
그후 부터는 전화로 약 조제를 부탁을 하고 , [가슴 두근두근]하는 것을 견디다 보면 점점 강도가 약하게 되지요.
물론 두 아들들과 시댁, 친정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었기에 극복이 가능했지요.
몸을 바쁘게 하고 즐거운 내용의 책과 영화와 코메디 프로를 보게 됐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모든 문제는 평화로워 졌고 아이들은 남들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로 바르게 컸습니다.
[고통이 오면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말해 준 큰 시누이 형님.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시아버님, 많은 말 하지 않고 [언니]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우리 아이들에게 용돈을 많이 준 막내 시누이.친정의 동생들.....
내게 고통을 준 사람들은 스스로 그 댓가를 치루게 되더군요.
최진실님의 절대 고독과 지나치게 굴곡이 많았던 생활이 극단으로 생각을 치닫게 했나 봅니다.
절친한 친구들은 모두 일로 바쁘고 늘 함께한 코디에게 마음을 쏟았나 봅니다.
조금만 견디면 다 지나 갈 것을....너무 안타깝습니다.
어제밤 [고 최진실 추모 특집]을 계속 내보내는 m-net연예와이드를 보며 계속 울었습니다.
[진실아! 왜 그런 선택을 했니?] 소리내서 말하며 울었습니다.
그녀의 절대 고독이 이해 되서 입니다.
평범한 서민도 이혼을 하면 힘든 일일 텐데.....32 kg의 새털 같은 몸으로 너무 큰짐을 졌었습니다.
서점에 널려 있는 여성 잡지의 표지에(10월호) 전 남편의 인터뷰 기사가 있어서 읽어 봤습니다.
그냥 있지 왜 인터뷰를 했을까?
최진실이 스캔들이 있는 것도 재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러나 최진실님의 죽음은 악풀을 다는 그 사람들의 눈과 입과 글과 삐뚤어져 있는 마음에 수갑을 채우는 법을 만들게 했습니다.
죽어서도 외로운 최진실님!
다니던 교회의 공원묘지의 첫번 째 수해자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모두 다 잊고 편히 잠들었습니다.
최진실이라는 [국민배우]는 우리 나라 영화사에 큰 이름을 남긴채.....
박신양씨와 함께 찍은 [편지]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그 영화속의 맑고 밝은 모습으로 기억 될 겁니다.
저는 지금 스스로도 가끔 이해 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가 왔습니다.
철이 나서부터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57세
이제 인생의 마지막 절기 입구에 서 있습니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일생동안 희,노,애,락의 양이 있는 것같습니다.
아까운 사람!
최진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