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블러그의 영화 평에 댓글 중에서 [남편을 찾아서 전쟁터로 간 이야기]가 T V 프로그램 [진실 & 거짖]에 나온 실제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 영화의 배경이 1971년도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나도 순이같이 할 수 있다.
* 헤픈 여자만 보던 정진영(정만) 에게 순이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감을 느꼈겠고 남편에 대한 집념을 보고, 인간에 대한 아니 여자에 대한 경이로운 믿음의 발견이었을 것이다
**70년대 대유행 했던 [맞춤 남방 패숀] 전국의 젊은 남,녀 젊은 이들이 색색 가지의 남방셔츠를 맞춰입고(기성복이 아직 유행전이었다) 청바지와 함께 입고 거리를 몰려 다녔다..
미니스커트와 장발도,생맥주와 통키타도 .....경찰이 장발 단속으로 긴머리의 남자들을 경찰서로 잡아 가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도 쟀던 정말 전설 같은 시절이다.
* 이순간 이남자에게 남 녀 간의 사랑의 크기가 얼만큼 느껴 질까?
그것도 자기를 버리고 간 여대생에 대한 애정쯤이야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함 속에서 느껴지는 허망함이 아닐런지.
여자 때문에 베트남까지 오게 된 자신에 대한 자학도 많이 했지 않을까?
전쟁속에서 절대 고독과 고립의 공포를 느낀 상길은 순이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갑고 안도 감을 느꼈을 까?
남편을 찾아서 전쟁터로 간 순이에게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 [정조]는 이미 순결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고 남편의 목숨과 바꾸는 것이니 우리 시대의 여성들은 공감 할 수 있다.
**나이 50에 이런 맑고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남자가 몇 명이 될까?
이준익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리 하찮은 인간에게도 가능성을 주는 휴머니즘에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 인간에 대한 믿음, 끝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에 기대를 걸게 하는 감독이기 전에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해서인지 화면이 예술적이고 아름다워서 관객으로 하여금 볼거리를 배가 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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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하는 날 [님은 먼 곳에]를 보러 갈 때는 영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이준익 감독, 정진영, 수애,엄태웅 출연 정도 였다.
그 후 영화 평을 모두 보면서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1. 1970년대 는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시대였다.
여자가 취업을 할 때 [결혼을 하면 사직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취업을 했고,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도 여자는 입장료을 받지 않던 시절이었다.
남녀 공학을 갈 실력이 되도 부모의 반대로 여자 대학에 진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에 바로 결혼을 하는 것이 제일 성공한 여성 같이 취급을 받았었다.
현모 양처가 제일 좋은 것이기에 대학의 가정학과가 높은 점수를 기록하던 때 이었고, 남대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녔으며, 제대한 복학 생들은 군복에 까맣게 물을 들여서 입고 워커를 신고 다니기도 했었다.
모두 돈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가난한 연인들은 서점에서 만나서 덕수궁 돌담길이나, 중앙청에서 경복궁을 돌아서 데이트를 했다.
남자가 가난해도 사랑을 하면 결혼을 했고 , 특히 복학생과 사귀는 여자는 거의 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다행히 소를 팔아서 유학 보낸 아들들은 졸업과 동시에 거의 다 취업이 됐다.
시골 출신의 가난한 장남은 마음 착한 고졸 여성과 결혼들을 많이 했고 ,시골의 동생들을 하나 씩 불러다 공부를 시켰다.
2. 사랑하지 않더라도 순결을 주면 결혼을 해야 했고, 결혼 후에 이혼은 여자에겐 회생 불가능의 약점이 되던 시대였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더 이상 얻을 수 없을 때, 통금을 넘긴다던가, 남이섬등에 가서 차를 놓치는 수법으로 밤을 지새는 방법으로 결혼을 많이 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여자를 나쁜 방법으로 농락하는 남성들은 드물었다.
3. 지방에서는 많은 누나와 여동생들이 남자 형제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공장에 다니던 시대였다.
부산의 신발 공장, 대구의 방직 공장, 구로 공단, 동대문 시장의 옷 만드는 공장, 안양의 공단, ....
공장에서 3교대를 하며 번 돈으로 남 형제의 학비를 대주었다.
이 시대의 T V는 영화 와는 또 다른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였다.
패티김과 현미와 윤복희 ...그중에 단연 최고의 인기는 김추자였다.
오죽하면 김추자의 손 놀림이 북한의 간첩에게 보내는 지령이라는 루머까지 있었겠는가?
남대생들이 웃으며 김추자가 T V 화면에 나오면 모든 [동작 그만]을 했던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든 채 동작 그만이라고 했다) 시절이었다.
지금의 이효리 보다 단연 인기가 많았다.
그 때는 단지 김추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섹시 가수가.....
이효리는 비슷한 이미지의 가수가 많다. 채연, 서인영, ....아이돌 그룹까지...
이준익 감독은 71년도에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월남 파병]을 갔다 온 사람들도 많이 본 세대였다.
연애를 하면 [까진 여자] 취급을 받던 시절 ,나 역시 중매 결혼을 했고 ,한 번 결혼을 하면 죽을 때까지 검은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산다는 약속 대로 30년을 살아 왔다.
지금 세대들의 사랑의 깊이가 어떠 한 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는 부모에 대한 , 자식에 대한 , 남편과 시댁에 대한 정이 연민이 됐던 사랑이 됐던 상대방이 (주로 남자가) 일시적인 배반을 했다 하더라도 더 많은 가족들과의 관계와 약속이랄까 신의랄까,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며 의리로 생각 한다.
주로 어머니들이 남편과 맞바람은 치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편과 가족을 돌봐 왔다고 생각한다.
[님은 먼곳]에는 월남전에 파병한 수십만의 우리 시대 (1945년생 이후) 의 이야기다.
2006년 타개한 박영한의 [머나 먼 쏭바강]은 작가 자신이 월남 전에 참전 했던 자전적 기록 소설이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시 에 있는 [전쟁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사진 속에는 우리나라 해병대의 모습도 있었다.
상길 같이 온전한 몸으로 돌아 온 군인도 있지만 상이 군인이돼서 돌아 온 사람도 많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에 발병하는 고엽제 문제등 전쟁이 남긴 상처의 후유증은 엄청났다.
[님은 먼곳]에서 순이는 남편을 찾았지만 그후에 감당해야 할 고통이 눈에 보인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길이 맨정신으로 살아 갈 것이냐가 문제이다.
[님은 먼곳]에는 물론 재미도 있다.
수애는 청순하기도 했고, 정숙하기도 했고, 섹시하기도 해서 여성 관객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70년대의 대스타 정윤희와 수애를 많이 비교하는 데 ,정윤희에게 있는게 수애에게 다 있다.
그러나 정윤희에게 없는 점을 수애가 가지고 있다.
노래를 잘 부른다. 지적이고 우아하다. 다소곳하고 순종적이나 고집이 있어 보인다.
수애는 정윤희를 뛰어 넘는 여배우가 아닌 배우가 될 것이다.
이준익 감독이 말한대로 수애는 순이가 아닌 인간 순이를 연기한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15세 이상의 사람들은 [님은 먼 곳]에를 꼭 보기를 권유한다.
단체 관람도 권유한다.
지금 15세 이상 40세 미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대부분 할 수 있는 데는 여러분 부모 세대들의 말없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애가 부른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늦기 전에],[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수지큐],...여러분들이 좋아 하는 [동방신기][슈퍼쥬니어],[SS501][소녀시대],[원더 걸즈] 이상 인기 있던 노래이다.